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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

쑥, 혹은 한 시절의 그리움

by 낮달2018 201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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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을 뜯어 쑥국을 끓이다

▲ 쑥은 우리 건국신화에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나물이다.

처가에 다녀오면서 장모님께서 뜯어 놓으신 쑥을 좀 얻어왔다. 여든이 가까워져 오는 노구를 이끌고 들을 다니셨을 노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그나마 여기보단 남쪽이어서 쑥 뜯기도 수월했으리라 하는 게 위안이다.

 

식탁에 오른 쑥국, 한 시대의 애환

 

쑥국을 끓여 먹자고 주문했더니 아내는 이튿날 아침에 냉큼 국을 끓여냈다. 아직 여린 쑥 향이 아련하다. 아이들에겐 낯선 향기지만 쑥이나 미나리, 쑥갓 같은 나물이나 채소의 향기는 우리네 세대에겐 한 시대를 환기해 주는 추억이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는 향신료 따위의 향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채소나 나물이 가진 은은한 향기는 다르다. 한때 나는 가죽나무 향이나 쑥갓의 짙은 향에 쉬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그런 경계는 없어져 버렸다. 더 볼 것 없이 모두 세월의 힘이다. 시간이란 인간의 미각의 모난 부분을 시나브로 무화해 버리는지 모른다.

 

내게는 들에서 나는 나물 따위를 굶주림과 연결해 기억할 만한 추억이 없다. 손위 동기들과는 달리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은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해졌던 탓이다. 당연히 이른바 구황(救荒) 식물에 대한 쓰린 기억도 없는 편이다.

 

쑥은 내 유년의 들판에 지천으로 널렸던 풀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지혈을 위한 응급약으로 썼다. 놀다가 다쳐서 피가 흐르면 누군가가 쑥을 뜯어와 그걸 돌에다 찧어 상처에다 쳐 매곤 했던 것이다. 가끔씩 집에서 어린 쑥잎으로 국을 끓이긴 했지만, 그저 입만 다시는 거로 스쳐 지나가곤 했다. 쑥떡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쑥은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인데, 우리 건국신화에 등장할 만큼 그 이용의 역사가 오래 되었다. 쑥은 마늘과 함께 곰을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 말하자면 쑥은 수성(獸性)’을 제거하는 주술성을 갖춘 식물인 것이다.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때에 환웅이 신령한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쉽사리 사람의 형체가 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먹었다. 곰은 스무하루 동안 기()를 하여 여자의 몸이 되고 범은 기를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은 혼인할 자리가 없었으므로 매양 신단수 아래서 어린애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화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리상호 옮김, 까치, 2006)에서

▲ 어머닌 봄에 되면 늘 봄나물을 띁어오셔서 냉이나 씀바귀, 달래와 돌미나리를 저녁상에 올리곤 하셨다.

쑥은 한편으로 말려서 뜸을 뜨는 데 쓰고, 부시를 치는 데 불똥이 박혀서 불이 붙도록 부싯돌에 대는 물건인 부싯깃으로도 이용되었다. 어릴 적에는 불붙인 쑥뜸을 등이나 배에다 얹어 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그걸 즐기던 어른들의 모습이 늘 신기하기만 했다.

 

쑥은 맛만이 아니라, 그게 떠올려 주는 추억으로 다가온다. 쑥을 볼 때마다 아내와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한다. 살아생전에 옛 고향 집에 함께 살 때, 가세가 기울어 몹시 어렵던 때였다. 어머니는 봄이 되면 늘 들에 나가서 봄나물을 뜯어 오셨고, 우리 집 저녁상에는 늘 냉이나 씀바귀, 돌나물과 달래, 그리고 돌미나리가 풍성하게 얹히곤 했다.

▲ 경상도에서 가시개사랭이로 불리는 씀바귀류의 나물

 장모님께서 주신 봄나물은 쑥만이 아니라 경상도에서 가시개사랭이라고 부르는 씀바귀류의 나물도 끼어 있다. 정확히 어떤 이름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노란 꽃이 피는 씀바귀 종류라는 건 확실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봐도 경상도식 이름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 오늘 아침상에 오른 쑥국

씀바귀와 같은 쓴맛이 나는 나물과 친숙해지는 과정도 비슷하다. 역시 세월의 힘이 세다. 첫입에 쏘는 듯 다가오는 쓴맛은 두 번 세 번 씹는 과정에서 침과 어우러지면서 무언가 금방 삼켜 버릴 수 없는 아쉬움으로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바삐 끓인 쑥국을 곁들인 밥상 앞에 앉아 첫술을 뜬다. 입안에 들기도 전에 풍겨오는 쑥 향이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의 낡은 고향 집, 나지막한 대청마루에 앉아 뜯어 온 나물을 다듬던 어머니의 실루엣을 떠올려 준다.

 

콩가루를 묻히고 국물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구수한 냄새와 맛이 입안에 가득한데, 문득 알싸하게 다가오는 서러움은 또 무엇인가. 국에 든 쑥을 천천히 씹으며 나는 다시 어머니가 뜯어 오신 돌미나리 무침 맛을 기억해 내고 가난했던 한 시절을 그리워한다.

 

 

2008. 3.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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