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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사진] 의성 화전리, 산수유 꽃그늘이 지키는 마을

by 낮달2018 2019.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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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다시 화전리 숲실마을을 찾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산수유 마을은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이다. 마을 주변이 모두 산수유로 덮여 있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숲실마을. 초라하고 낡은 지붕 사이로 산수유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의성 산수유 축제’(43일까지)에 다녀왔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웃 블로거의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나는 내가 언제든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새로 시작되는 주일의 첫날에 길을 떠났던 것이다.

 

'평일 나들이'의 소회

 

지난 월요일(3. 21.) 날씨는 화창했다. 기침이 낫지 않아 찬바람을 피해야 하는 아내 대신 나는 인근에 사는 친구 미나리에게 길동무를 청했다. 도중에 의성 탑리에 들렀다가 친구 세한도도 일행이 되었다. 남들은 노곤한 오후 수업에 여념이 없을 시간에 우리 세 퇴직자는 좀 심드렁한 모습으로 사곡면 화전리에 닿았다. 심드렁하다고 말한 것은 모두에게 화전리는 여러 번 드나든 동네였기 때문이다.

 

평일 나들이를 하면 한산할 거라는 예측은 늘 빗나가기 쉽다. 정작 거기엔 주말이 아닌 이상 어디선가 일을 하고 있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천연덕스럽게 모여서 나들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이 빗나가면서 상하는 마음에 은근히 일어나는 열패감이 있다.

 

참 팔자 좋은 놈들 많구먼. 어쩌면 일 안 해도 되는 치들이 저렇게 많나. 젠장…….”

 

안다. 나는 팔자 좋은 사람으로 평일 나들이객들을 뭉뚱그렸지만 사실 그들이나 내 삶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일철을 앞두고 바람을 쐬러 온 농민들도 있고, 휴가받은 자식들을 따라온 노부모도 있다. 전업주부들은 평일을 가릴 일이 없다. 아직 공부하는 젊은이들이야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 3월의 마지막 월요일, 의성 골짜기로 산수유 구경을 온 나들이객을 외국의 유명 휴양지로 골프 여행을 떠나는 이들과 견줄 수 없지 않은가.

 

평일인데도 화전리 인근 도로변은 세워둔 승용차 줄이 이어졌다. 차를 임시주차장에 세우고 셔틀버스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건 그나마 평일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빈 길가에 차를 대고 우린 어슬렁어슬렁 숲실마을로 들어갔다.

▲ 마을의 고샅길. 골목 양쪽의 산수유가 마치 터널 같았다. 이 꽃그늘에서 나들이객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 오래된 나무는 삼백 년을 넘는다는 숲실마을의 산수유는 이런 고목이 꽤 많았다.
▲ 마을의 고샅길. 골목 양쪽의 산수유가 마치 터널 같았다. 이 꽃그늘에서 나들이객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모두 여러 번 다녀간 동네다. 알뜰히 들여다볼 일이 없다는 뜻이다. 두 친구는 앞서고 나는 사진을 찍느라 자꾸 처졌다. 마을 어귀에서 산수유 전시관이 있는 마을 끝까지 가는 데 삼십 분이 좋이 걸렸다.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들어가고 나오는 나들이객들로 길은 엔간히 붐비고 있었다.

 

네 번째 찾은 숲실마을

 

산수유는 마을로 드는 길과 시내 주변에 빽빽이 늘어섰고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에 퍼부어 놓은 듯했다. 나는 화전리에 네 번째 길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한 해씩 걸러 세 번을 찾았지만 2012년에 안동을 떠나고는 처음이다.

 

첫길엔 <오마이뉴스> 기사(<순박한 맨 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를 썼고 그다음 두 번은 블로그에 방문기(<20093, 의성 산수유 마을>, <‘순박한 맨 얼굴’, 화전리도 변했다>)를 올렸다. 그런데 찾을 때마다 날짜가 절정기 못 미치거나 넘긴 때여서 내가 만났던 산수유는 얼마간 아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여겨서 그런가. 올 산수유는 유난히 깨끗하고 고왔다. 현지에 사는 세한도가 따뜻하고 고른 날씨 덕분이라고 했다. 산수유 노란빛이 온 동네를 아련하게 채색하고 있었다. 산수유 행렬 옆으로는 마늘밭이 펼쳐졌는데 그 청록과 노랑의 대비가 산뜻했다.

 

마을 끝 산수유 전시관 앞의 행사장에서 두 친구는 식당에 들어가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기로 하고 나는 내처 올라 산 중턱에 세운 전망대에 들렀다. 거기서 내려다뵈는 마을은 화사한 산수유 꽃빛 때문에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듯한 행사장 식당에서 6천 원짜리 파전으로 벗들은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내려오는 길엔 전기로 움직이는 산수유 꽃마차를 탔다. 편도 2천 원에 부리는 호사치곤 괜찮았다. 시장기를 느끼고 마을 어귀의 식당에 들어갔는데 거긴 전문 상인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우리는 15천 원짜리 도토리묵과 고추전, 5천 원짜리 산수유 술 한 병을 비우면서 거참, 입맛을 다셨다.

 

마을에선 이보다 훨씬 큰 부침개 하나에 6천 원이었는데…….”

거긴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데고, 여긴 보아하니 축제 따라다니는 장사꾼이 하는 데야.

아무리, 두 배쯤이라면 모르겠는데.…….

이 가게 연다고 군에 임대료까지 냈을걸. 비싼 술 한번 먹는 게야.

 

2011년에 화전리를 찾았을 때 나는 '변하긴 했지만 서투른 분칠은 아니다'며 마을을 두둔했다. 그리고 5, 올해는 어떤가. 마을 어귀까지 축제 전문 상인들이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마을은 동네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간단없는 상업화 바람에 그만하면 선방한 것이라 봐주어도 좋겠다.

 

어쨌든 산수유 마을이 떠들썩한 장사꾼들의 소란으로 가득 차지 않은 것도 산수유 덕이다. 화사한 그 꽃그늘이 사람들을 은근히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우리는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는 숲실마을을 떠났다.

 

 

2016. 3.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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