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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63세 라이더,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다

by 낮달2018 2021. 4. 10.

▲ 텐진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길. 오른쪽 길섶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중국은 그러나 낯설지는 않다.

일단 그의 파란 많은 삶에 대해선 줄이기로 한다. 적어도 60년쯤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만그만한 삶의 굴곡과 사연쯤은 장편소설 분량으로 갖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초년에 부모의 품을 떠나 완고한 양부(養父) 슬하에서 자랐다거나 그 사춘기가 만만찮았다는 건 굳이 숨길 필요가 없겠다.

 

한창때엔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당연히 그걸 까먹고 재기하겠노라고 용을 쓴 세월도 짧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스쿠버 활동을 통해 수중(水中) 사진을 오래 찍었고, 특별히 글쓰기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스쿠버 관련 잡지에 꾸준히 글을 썼다. <오마이뉴스>에도 잠깐 ‘물 이야기’를 연재했다.

 

▲ 출발을 앞두고 인천의 숙박업소에서. 투어링 용 셜리(Surly) 에 실린 짐이 장난이 아니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동해의 한적한 어촌에 살기 시작한 십여 년 전에 그는 산악자전거(MTB)에 입문했다. 타고난 체력과 승부욕이 짧은 시간 안에 그를 새파란 후배들과 같이 ‘라이딩(riding)’을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했다. 언제였을까. 그의 내부에 세계 일주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환갑·진갑 지낸 초로, 세계일주 나서다

 

세계 일주를 떠나겠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환갑, 진갑까지 지낸 초로에. 그가 세계 일주를 떠나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쳤니?’가 주로 맏누이를 비롯한 가족들의 반응이었다면, 다른 한쪽의 반응은 ‘역시 그답다’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나이에, 쥐뿔도 가진 게 없으면서도 길을 떠나겠다는 그의 만용(!)과 결단 앞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물론 거기엔 자신에겐 없는 용기와 도전 정신에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도 묘하게 섞여 있다. 아, 세계 일주? 좋지. 무심히 맞장구를 치다가도 그걸 자신의 문제로 돌이켜보면서 비로소 이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깨달아야 했다.

 

그는 다음(daum)의 블로그 <물 따라 술 따라>를 다년간 운영해 왔다. 짐작했겠지만, 물은 스쿠버 다이버로서 그가 놀던 ‘물’이고, 술은 그대로 술이다. 블로그에서 쓰는 별명이 ‘둘도사’니 물이건 술이건 ‘도사’의 수준이라는 말이렷다. 그런데 그는 뒤늦게 배운 ‘라이딩’으로 새 길을 떠난 것이다.

 

그가 오래 준비해 온 자전거 세계 일주의 준비 과정은 블로그의 ‘산악자전거’ 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전거 하나 달랑 끌고 국외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물론 그만은 아니다. 이미 다녀온 이도, 지금도 길 위에 있는 이들도 있다. 그는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동류라는 동질감은 그렇듯 끈끈한 것인가 보았다.

 

그는 떠날 때, 네이버에 새로운 블로그 하나를 개설하고 갔다. 이름은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아라>다. 부제는 ‘새하의 은륜 사이로 세상 엿보기’. 이 블로그에 따르면 새 별명 ‘새하’는 ‘동서남북’의 순우리말인 ‘새하마높’에서 빌려왔다는데, 아마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새바람’에서 한 자씩 딴 조어인 듯하다. [블로그 바로 가기]

 

▲ 그가 네이버에 개설한 새 블로그 <페달을 밟아라>(http://blog.naver.com/aqualux1994)
▲ 어디쯤일까. 카톡으로 보내온 그의 중국 자전거 여행길

나는 3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그를 배웅했고 그는 4월 1일 인천에서 배를 타고 텐진(天津)을 향해 떠났다. 그날 만났을 때 감기 기운 탓인지 좀 울적해 보였는데 4월 10일 현재, 그는 베이징을 거쳐 무사히 대륙을 건너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출발, 동남아시아를 거쳐 계속 서진(西進)할 예정이다. 그는 유럽을 경유하고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행을 마감할 작정이라고 한다. 고작 이웃 나라를 비행기로 방문한 게 고작인 나로서는 영 실감이 나지 않는 여정인데, 그에겐 그게 얼마만큼 실감 나는 계획일까.

 

“모든 게 계획일 따름이야. 기간이야 1년 6개월쯤으로 잡고 있지만,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 아닌가. 더구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를 자전거 하나로 건너가는데…….”

 

맞다. 중간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얼마이며, 오직 육체적 근력에 의지해 가는 길에 돌발 변수는 좀 많을까. 결국 우리는 그 무사 안녕을 빌 뿐, 확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가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나아갈 여정을 축복하는 수밖에.

 

그와는 어저께 카카오톡으로 처음 소식을 주고받았다. 그가 찍은 사진 몇 장을 곁들여서. 그는 아직 여유가 있는지 네이버 블로그에 여행기도 올리고 있다. 무턱대고 가는 그의 길에는 곡절도 많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도 적지 않게 만나는 듯하다.

 

그가 만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텐진 가는 배에서 만난 조선족이기도 하고, 여행 중 만난 중국 대학생 라이더이기도 하다. 더러는 중국 공안이 베푸는 호의를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몸으로 부딪치며 가는 그의 길이 무사하길, 무엇보다 절대 아프지 않길, 덜 힘들길 빌 뿐이다.

 

▲ 중국 어디에선가 만났던 대학생 라이더와 함께.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어디서건 통하는 법이다.

어제는 그의 청으로 다음 블로그에 가서 새로 만든 네이버 블로그 주소를 안내하고 왔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벌써 세 번째 여행기가 올라와 있다. 그는 아마 꾸준히 기록하고 또 기록할 것이다. 막막한 여행의 끝에 남을 게 기록뿐이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어링용 셜리(Surly) 한 대에 의지한 그의 여정을 가끔 전하게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다리 건너 전하는 내 얘기보단 직접 육성으로 들려주는 그의 여행기를 읽고 격려해 주실 수 있으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

 

바로가기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아라>

 

나완 세 살 터울이지만 그는 내 성장기에 만만찮은 영향을 미친 이다. 초등학교 이래 나는 그가 사서 읽는 책을 따라 읽었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하나씩 배웠다. 어느덧 육십 고개를 같이 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미치지 못하는 어떤 영역에 그는 여전히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 친형이다.

 

 

2015. 4. 10. 낮달

 


그는 1년 6개월을 넘겨서 무사히 돌아왔다. 중국에서 동남아로, 거기서 비행기로 터키로, 다시 유럽을 거쳐 카이로에서 출발하여 케이프타운에서 아프리카 종주를 끝냈다. 그는 오랜 자신의 여행기를 써서 다듬고 있는데 그걸 출판된 책으로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202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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