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톺아보기 ㉒] 옥성면 농소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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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성면 농소리는 구미시 북부에 상주시와 접경하고 있는 한적한 동네다. 마을이 개척된 것은 조선 초기, ‘선산고을 제일은 농소리 어울목’이라는 옛말이 있었는데 이는 자연 수로의 수질이 좋아 농사가 잘되었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농장이 있다 해서 ‘농소(農所)’ 하였다.
사찰 경내에 자라던 거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농소2리 마을 어귀에 1970년에 천연기념물(제225호)로 지정된 해묵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골 바윗골 절터 양지’라고 부르는 뒷산 골짜기는 돌담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점으로 보아 한때 절이나 장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니 이 은행나무는 그 사찰 경내에서 자라던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 은행나무는 400여 년 전 이 마을에 살던 엄씨가 심었다고 전하는데, 나무의 크기로 보아 나이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본다. 나무의 높이는 약 25m, 가지의 길이는 동쪽으로 약 10m, 남쪽으로 약 11m, 북쪽으로 약 8m이다. 지상 3m 높이에서 가지가 3개로 갈라져 비슷한 높이로 자랐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 당산목(堂山木)으로 신성시하여 보호하며, 음력 10월 10일에 동제를 지내오고 있다.
흔히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래할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본다. 은행나무를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 까닭은 단풍이 곱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만들어서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의 ‘행단(杏壇)’을 상징하는 나무여서 서원 앞에도 많이 심는다.
단풍이 절정일 때 찾기가 쉽잖다
농소리 은행나무를 처음 찾은 게 2019년이다. 단풍의 절정을 지레짐작하여 11월 중순을 넘겨 찾았으나, 이미 나뭇잎은 깨끗하게 지고 없었다. 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인 노란 은행잎이 그 무성했던 여름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잎은 벗었으나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은 나무의 모습은 만만치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전선이 열십자로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아무리 렌즈를 들이대도 전선과 길가의 전봇대를 피할 화각이 나오지 않았다. 명승을 찾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공중에 어지러이 지나가는 전선 때문에 욕이 절로 나올 때가 많은데, 농소리의 은행나무도 다르지 않았다.
올 11월 중순에 인동의 동락서원을 찾았다가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인 걸 보고 나흘 후에 농소리를 찾았을 땐 은행나무 단풍은 2할쯤이 남아 있었다. 은행잎의 단풍은 개체차가 심하다. 같이 심은 나무인데도 노랗게 익고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어떤 녀석은 상기도 푸른 잎을 천연스레 달고 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뒤져봐도 단풍이 최고조에 이른 농소리 은행나무 이미지는 찾기 어려웠다. 뒷날, 작정하고 다시 찾아 제대로 된 농소리의 가을을 한 장 찍을 기회가 있기나 할까. 대신 꼭 11년 전인 2011년, 안동 광흥사(廣興寺) 일주문 뒤의 은행나무 단풍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로 한다.
2022. 12.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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