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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선산 톺아보기 ㉔] 그 향교 앞 빗돌 주인은 ‘친일 부역자’가 되었다

by 낮달2018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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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읍 교리 선산향교와 일제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친일 부역자 김사철의 빗돌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선산향교는 비봉산 기슭 옥녀탄금형 명당자리에 세워졌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외면 너머에 청아루가 보인다.
▲ 선산향교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 막돌을 쌓은 기단 위에 앉힌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아한 팔작집이다.

선산향교는 읍내에서 33번 국도를 타고 동부리를 지나 접어드는 교리 산등성이에 보이는 아파트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서면 산자락 비탈에 들어선 향교는 정문과 누각인 청아루만 보일 뿐인데, 그 물매가 자못 가팔라 다소 위압적으로 보인다. 지난해 2월에 찾았을 땐 잠겨 있어서 허탕, 올해는 관리인의 배려로 돌아볼 수 있었다.

선산읍 비봉산 기슭의 선산향교

선산향교는 구미시 선산읍 비봉산 기슭에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듯하다’는 이른바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물매가 급한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여 남북 축선 위에 위계(位階)에 따라 위에서부터 대성전, 명륜당, 청아루 등이 배치되었고, 정문으로 사주문(四柱門)인 입덕문(入德門)이 남아 있다.

선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다 하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600년(선조 33)에 부사 김용이 대성전과 동무(東廡: ‘무’는 곁채, 행랑채의 뜻)와 서무(西廡)를, 1623년(인조 원년)에 부사 심륜이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남루(南樓), 교관아(敎官衙), 전사청, 주고(廚庫) 등을 각각 중건하였다.

▲ 전학후묘 형태의 선산향교의 제향 공간인 대성전이 맨 위에 있고,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앞에 있다.
▲ 대성전 앞 내삼문(경내의 신전으로 드는 문). 솟을삼문의 형태다.

대성전과 내삼문

대성전은 서울 문묘를 비롯하여 전국 향교 231곳에 설치되어 있는 공자의 위패를 봉안한 유교 건축물이다. 선산향교의 대성전에는 5성(五聖 : 공자·안자·증자·자사·맹자), 송조2현(宋朝二賢 : 정호·주희), 우리 나라 18현(설총과 최치원부터 송준길과 박세채까지 18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위계 상 맨 위, 가장 높은 곳에 배치되는 선산향교의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집이다. 입덕문, 외삼문과 함께 단청한 건물이다. 좌우 퇴칸(평면 좌우의 마지막 칸) 기단의 앞에는 4단의 계단을 각각 두었다.

내삼문(內三門:경내의 신전으로 드는 문)은 전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어칸(평면의 가운뎃칸)이 좌우 칸보다 넓으며 솟을삼문 형태다. 앞은 지형 때문에 축대를 쌓았는데 명륜당과 바투 붙어 있어 축대를 파내고 어칸 전면에 계단을 놓았다.

명륜당과 온고재, 학습재

내삼문 계단을 내려오면 바로 향교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는데, 평면은 전면 5칸을 모두 개방시키고, 가운데 3칸을 우물마루로 꾸몄으며, 양 측칸은 전면 1칸을 물려 퇴칸을 구성하여 툇마루를 놓은 후, 2통칸 온돌방을 들여 동서에 각각 온고재(溫故齋), 학습재(學習齋) 현판을 달았다.

▲ 청아루 아래서 올려다본 명륜당.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
▲ 명륜당은 가운데 3칸을 우물마루로 꾸몄으며, 툇마루를 놓은 후, 양쪽에 온돌방을 들였다. 서쪽의 학습재와 동쪽의 온고재.
▲ 명륜당 앞 마당 서쪽에 세워진 '도량고지단'. 도량동의 할머니가 전 재산을 향교에 기부한 것을 기린 비라고 한다.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앉힌 명륜당 앞 양쪽에는 마당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설치했다. 마당에 서서 올려다보는 단청하지 않은 명륜당은 단정한 선비의 기품 같은 것을 은근히 풍긴다. 마당 서쪽에는 조그만 사각형의 단과 비석이 놓여져 있는데, 비석에는 ‘道良姑之壇(도량고지단)’이라 쓰였다. 이 비는 구미 도량동에 사는 한 할머니가 전 재산을 향교에 기부한 것을 기린 것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휴식 공간이면서 재사를 겸한 청아루

한결 넓은 명륜당 앞마당 끝에 세워진 2층 누각 청아루(靑莪樓)는 전면 7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에 좌우 퇴칸 후면으로 단칸을 덧달아 확장한 ‘ㄷ’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 누각 하부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으며 상층 가운데 5칸은 우물마루로 꾸며 중층으로 하고, 좌우 퇴칸은 앞칸을 마루로, 뒤 칸을 익실(翼室:본채의 좌우 양편에 달린 방)로 온돌방을 들였다.

▲ 외문 쪽에서 올려다본 청아루. 청아루는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통로, 위층은 마루와 마루방, 그리고 온돌방을 들였다.
▲ 휴식과 재사의 역할을 한 청아루. '청아'는  '무성한 쑥과 같이 많은 인재를 교육함. 또는 그 인재'를 뜻한다 .
▲ 청아루의 1층. 통로로 사용되는데 중앙 계단을 통해 명륜당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 명륜당에서 바라본 청아루. 전체적으로 'ㄷ자형'인데, 5칸은 우물마루, 좌우 퇴칸은 앞칸을 마루로, 뒤 칸을 온돌방으로 꾸몄다 .

이는 동서재가 없는 대신 이 마루방과 온돌방이 재사(齋舍)의 역할을 겸하게 한 것이다. 동서 익실의 앞칸 대들보 상부에는 각각 ‘輔仁齋(보인재)’와 ‘文會齋(문회재)’ 현판을 걸어두었다. 건물 전면 어칸 상층 전면에 ‘靑莪樓’ 현판을 걸었다. ‘청아(菁莪)’는 ‘무성한 쑥과 같이 많은 인재를 교육함. 또는 그 인재’를 뜻한다. 건물 후면(명륜당 마당)에 용도가 불분명한 석물이 남아 있는데, 연화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석등(石燈)의 흔적으로 추정한다.

입덕문과 그 앞 빗돌 2기

청아루 어칸 아래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다시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에 붉은 칠을 한 외문(外門) 입덕문(入德門)이다. 문 너머 선산 읍내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 단칸 규모의 맞배집인데, 문 앞으로도 가파른 물매에 긴 계단을 나 있다.

▲ 청아루에서 내려다본 선산향교의 외문인 입덕문. 문 너머로 선산 시가지가 보인다.
▲ 입덕문 아래에 나란히 서 있는 비석. 왼쪽이 부사 김병우의 불망비, 오른쪽은 친일부역자 김사철의 '교중유혜비'다.

일제의 작위와 은사금 받은 친일부역자의 빗돌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 반민족행위자 김사철(1847~1935)

외문 앞 언덕바지에 높이가 다른 두 개의 빗돌이 서 있다. 낮은 왼쪽 빗돌은 ‘김후병우영세불망비(金侯炳愚永世不忘碑)’고 나머지 빗돌은 ‘행부사김후사철교중유혜비(行府使金侯思轍校中遺惠碑)’다. 불망비는 1868년에 세운 부사 김병우의 영세불망비고, 김사철의 비는 그가 ‘향교에 끼친 은혜’를 기린 비다.

1892년에 지역 사림은 선산 부사 김사철(金思轍, 1847~1935)이 선산향교를 중건하는 등 선정을 베풀자 이 비를 세웠다. 그런데 김사철은 일제의 작위와 함께 현 화폐가치로 5억 원에 이르는 은사금을 받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인물로, <친일 인명사전> ‘매국 수작’ 분야에도 등재되었다.

1910년 한일합병 직후 「조선귀족령」에 의거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 귀족 남작의 작위와 함께 2만5천 원의 은사공채를 받았다. 1912년 8월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자로서 한일관계에 특히 공적이 현저한 자’로 인정되어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35년 2월 17일 사망할 때까지 조선 귀족의 작위가 유지되었으며, 사망 직후 일본 정부에 의해 특지로써 위 1급이 추승되어 종 3위에 서위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사철’ 중에서

선산의 금오서원 읍청루 오른쪽 담장 아래 안내판 옆에도 ‘부백김공사철송공비(府伯金公思轍頌功碑)’가 있다. 1891년 금오서원이 퇴락한 것을 보고 서원을 중수하는 일을 시행하고 전토를 마련해 주어 선산 사림이 서원 앞에 송덕비를 세운 것이다. [관련 글 : 서원과 향교 앞 송덕비의 목민관, ‘조선 귀족이 되다]

공교롭게도 선산향교뿐 아니라 금오서원 앞에도 이 친일 부역자를 기린 비가 서 있는 것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기 이전에 세운 빗돌이기는 하나, 이 오래된 전통 교육기관의 앞에 선 빗돌 앞에서 입맛이 쓰다. 사람들은 무심히 빗돌을 스쳐 갈 뿐이겠지만, 그런 내용을 알려 주는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우는 게 마땅한 일일 듯싶다. 수백 년 전통의 향교와 서원 앞을 반민족행위자의 빗돌이 무심히 서 있음은 충효를 가르친 교육시설의 이름이 부끄러운 일 아닌가 말이다.

 

2023. 2. 1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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