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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봄을 기다리며

by 낮달2018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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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말, 봄을 기다리며

▲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봄은 멀다 . 2009년 3월, 낙동강.

내일로 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난다. 방학식 다음 날부터 24일간의 강행군이다. 하루에 다섯 시간. 오전 8시 10분에 시작되는 수업은 오후 1시 10분에 끝난다. 온순해 학교의 방침을 잘 따르는 아이들은 그래도 비교적 성실하게 학교에 나왔다.

 

양말을 껴 신게 한 추위

 

올겨울 추위는 정말 매웠다. 기온이 영상인 날이 며칠 되지 않았고 눈도 여러 번 내렸다. 최신식의 시스템 난방장치가 가동되었지만, 교실은 추웠다. 이미 5, 6년이 넘은 낡은 시설이어서 난방장치가 제 기능을 잃었는가. 따뜻한 바람이 나와야 하는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바람 앞에서 아이들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곤 했다.

 

추운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교무실도 썰렁하긴 매일반이다. 나는 그간 빼놓지 않고 내복을 입었고, 아침에는 양말을 두 켤레나 껴 신어야 했다. 발가락이 나오는 실내화를 신고 있으면 발이 시렸기 때문이다. 빈 시간에는 무릎에다 담요를 걸치고 있기도 했다. 하여간, 양말을 두 켤레나 신는 것은 난생처음이다.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느끼는 것은 실제 추위뿐 아니라 나이 탓일지도 모르겠다.

 

▲ 이 종이를 채울 수나 있을까.

예년과 달리 수업도 부담스러웠다. 하루에 세 시간쯤은 가볍게 하겠는데, 네 시간이 넘으면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혹사해도 끄떡없던 목이 슬슬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제는 내리 다섯 시간 수업이었다. 첫 시간부터 잔뜩 긴장해 목소리를 조절해야 했다. 그러나 마지막 시간에는 목에 가벼운 통증을 느꼈다.

 

어쨌든 내일모레면 이런 부담에서 벗어난다 싶으니 살 것 같다. 다음 주에 설을 쇠고 나면 개학이다. 그러나 11일에 종업식을 치르고 나면 2010학년도도 마감이다. 나머지 보름 남짓한 시간은 새 학년도를 준비하는 충전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

 

작별 준비, 그리고 봄

 

아이들과의 작별을 준비한다. 새 학년도에는 담임을 맡지 않을 작정이니 지금 아이들이 내가 담임으로 만나는 마지막 아이들이다. 예년처럼 짧은 인사말 대신 편지를 쓰려고 일부러 한지 편지지를 두 묶음 사 놓았다. 단 몇 마디라도 아이들 모두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마음이 달라서 그런가. 이번 아이들은 유난히 나를 잘 따랐다. 순박하다고 해야 하나. 녀석들은 내가 은근히 보여주는 마음을 역시 은근하게 받아들이고 기꺼워했다. 우리 반뿐이 아니다. 학년 전체가 대체로 교사들을 신뢰하고 마음으로 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작별이 좀 아쉽고 그렇다.

 

오랜 벗들과 함께 바다 밖으로 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어그러졌다. 대신 설을 쇠고 함께 서해 쪽으로 2, 3일쯤 돌기로 했다. 피붙이처럼 편하고 익숙한 벗들이어서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어쩐지 자꾸 기다려진다. 역시 나이가 짚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안동댐 부근. 2008년 3월

봄이 오고 있을 터인데, 아직 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선 지난 한 달간 영상 기온이 단 44분뿐이었다고 뉴스는 전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겨울은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설을 쇠고 나면 정말 ‘신춘(新春)’이 오기는 할까.

 

습관처럼 아파트 화단을 살피며 다니지만 봄은 ‘아직’이다. 그러나 봄은 온다. 영하 십몇 도의 한파를 뚫고 봄은 지금 언 땅과 물 아래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을 터이니. 구태여 맞으러 가지 않아도 저절로 올 봄을 그리며 바람 부는 창 너머를 물끄러미 건네다 본다.

 

 

2011. 1.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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