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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⑤ 청명(淸明), 난만한 꽃의 향연, ‘한식’도 이어진다

by 낮달2018 202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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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70년대엔 식목이 연례행사였다. 1962년 식목일 기념 식목 행사 모습 ⓒ 국가기록원

45일(2024년은 4월 4일)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청명이다. 청명은 보통 한식과 겹치거나(6년에 한 번씩) 하루 전이 되기도 하는데 올해는 다음날(2024년엔 4월 5일)이 한식이다. 속담으로 청명에 죽으나 한식(寒食)에 죽으나 매일반이라 한 것은 이를 이르는 말이다. 올 청명은 식목일과 겹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 봄 일을 시작한다. 이 무렵에 논밭 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 것은 논농사를 짓기 위한 준비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므로 필요한 일손을 구하는 데 신경을 쓰기도 해야 한다.

 

음력 삼월은 모춘(暮春), 늦봄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1786~1855)가 쓴 장편 월령체 가사 <농가월령가>는 달과 절후(節候)에 따른 농가의 일과 풍속을 노래했다. <농가월령가> 3월령에서는 3월의 절기와 논농사 및 밭농사의 파종, 과일나무 접붙이기, 장 담그기 등을 노래하고 있다.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머지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

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개울가 밭에 기장 조요산 밭에 콩팥이로다.

들깨 모종 일찍 뿌리고 삼 농사도 오리라좋은 씨 가리어서 품종을 바꾸시오.

보리밭 갈아 놓고 못논을 만들어 두소들 농사 하는 틈에 채소 농사 아니할까.

 

 청명 무렵에는 삘기라 부르는 띠[()]의 어린 순이 돋는데 이는 허기에 시달리던 시골아이들의 심심찮은 군것질거리가 되었다. 경북 남부지방에서는 이를 삐삐라 불렀다. 먹어 배부른 음식도 아니었고, 별맛도 없는 풀잎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기를 쓰고 그것을 찾으러 다니곤 했었다.

 

<동국세시기> 청명 조()에는 대궐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주는데, 이것은 중국의 주나라 이래 당나라, 송나라에서도 행하여지던 예로부터의 제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이를 한식날에 기록하고 있으니 기실 청명은 별 관계가 없다.

 

45일 식목일 어름이니, 청명 무렵은 바야흐로 온갖 봄꽃들이 다투어 피는 시기다. 이미 매화는 지고 살구꽃, 명자꽃도 시들어가고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무렴, 이 무렵의 단연 대세는 벚꽃이다. 진해 군항제 같은 벚꽃 축제가 북진하기 시작하는 때니까.

 

구미에도 벚꽃은 흐드러졌다. 금오산으로 오르는 금오천 주변에는 지난 주말, 구미시민 반의반쯤은 모였다 싶을 만큼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벚꽃은 한적한 곳에도 풍성하게 피었다. 지산동 샛강생태공원에서 만난 벚꽃은 물과 어우러져 새로운 정취를 더해 주었다. 사과꽃은 이제 봉오리가 벙글기 시작했다. [관련 글 :구미 지산동 샛강의 벚꽃 행렬’, ‘소문내지 말라고요?]

▲ 명자꽃. 바다에는 해당화, 산에는 산당화. 산당화로도 불리는 명자꽃도 이미 활짝 피어 시들기 시작했다.
▲ 살구꽃. 나는 매화보다는 살구꽃이 훨씬 마음에 든다. 살구꽃은 올해 예년보다 빨리 지는 듯하다.
▲ 구미 지산동 샛강생태공원. 물과 어우러진 벚 행렬은 정취를 더해 주었다.
▲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핀 복사꽃. 강한 향기로 벌을 유인하고 있다.

 

한식의 인연

 

한식은 말 그대로 찬밥이다. 이 무렵엔 바람이 심하여 불이 나기 쉬우므로 에는 불을 쓰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 한식은 매년 봄 나라에서 새 불[신화(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일정 기간 묵은 불[구화(舊火)]을 금하던 고대의 종교적 예속(禮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한식은 개자추(介子推)의 전설에서 유래한 날이다. 개자추는 중국 진나라 문공(文公)이 국난을 당해 방랑할 때 굶주려 죽을 지경이 되자 제 넓적다리 살을 구워 먹여 주군을 살린 이다. 뒤에 문공이 왕위에 올라 개자추의 은덕을 갚으려 했으나 그는 면산(綿山)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고,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고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 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고.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 한식이라고 하는데, 이날 비가 오면 그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한식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과일··식혜· ·국수··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성묘도 빠지지 않는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잎 난다. 우로 느껴 슬퍼함을 술 과일로 펴오리라.

 

한식날 성묘하는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라 한다. 지금은 무싯날과 다르지 않지만,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여서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 금오산으로 오르는 금오천 주변의 벚꽃 행렬. 구미시민 반의반은 모여 꽃을 즐겼다. (3월 30일)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빠지면서 한식날 성묘가 쉽지 않아졌다. 그러나 다행히 오늘은 금요일이어서 사람들은 주말을 도와 성묫길에 나설 수 있겠다. 어릴 적에 해마다 식목일이면 나무 심기 부역(賦役)’에 불려 나간 기억이 생생한데, 요즘에는 식목일이라고 나무 심는 모습도 거의 보기 어렵다. [관련 글 : 금오산 벚꽃 길과 금오천 인공 물길]

 

대신 사람들은 주말을 도와 여행을 떠나거나 상춘(賞春) 길에 나설 것이다. 추위로 늦어지리라던 개화가 오히려 일러지면서 시방 곳곳에 꽃소식이 흐드러졌다. 동네 곳곳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벚꽃 물결 속을 거니는 사람들의 어쨌든 행복해 보인다. 봄은 이제 그야말로 난만(爛漫), 그 자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3월령(三月令)

 

삼월은 늦봄이니 청명 곡우 절기로다.

봄날이 따뜻해져 만물이 생동하니

온갖 꽃 피어나고 새소리 갖가지라.

대청 앞 쌍제비는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에 범나비는 분주히 날고 기니

벌레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홉다.

한식날 성묘하니 백양나무 새잎 난다.

우로 느껴 슬퍼함을 술 과일로 펴오리라.

농부의 힘 드는 일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잘 차려 때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집안 식구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두터운 인심 곡식을 아낄쏘냐.

물꼬를 깊이 치고 도랑 밟아 물을 막고

한편에 모판하고 그 나머지 삶이 하니

날마다 두세 번씩 부지런히 살펴보소.

약한 싹 세워낼 때 어린아이 보호하듯

농사 가운데 논농사를 아무렇게나 못하리라.

개울가 밭에 기장 조요 산 밭에 콩팥이로다.

들깨 모종 일찍 뿌리고 삼 농사도 오리라.

좋은 씨 가리어서 품종을 바꾸시오.

보리밭 갈아 놓고 못논을 만들어 두소.

들 농사 하는 틈에 채소 농사 아니할까.

울 밑에 호박이요 처맛가에 박 심으고

담 근처에 동과 심어 막대 세워 올려 보세.

무 배추 아욱 상치 고추가지 파 마늘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빈 땅 없이 심어 놓고

갯버들 베어다가 개바자 둘러막아

닭 개를 막아 주면 자연히 잘 자라리.

오이밭은 따로 하여 거름을 많이 하소.

시골집 여름 반찬 이밖에 또 있는가.

뽕 눈을 살펴보니 누에 날 때 되었구나.

어와 부녀들아 누에치기에 온 힘 쏟으소.

잠실을 깨끗이 하고 모든 도구 준비하니

다래끼 칼 도마며 채광주리 달발이라.

각별히 조심하여 내음새 없이 하소.

한식 앞뒤 삼사일에 과일나무 접하나니

단행 이행 울릉도며 문배 참배 능금 사과

엇접 피접 도마접에 행차접이 잘 사느니

청다래 정릉매는 늙은 그루터기에 접을 붙여

농사를 마친 뒤에 분에 올려 들여놓고

눈바람 추운 날씨 봄빛을 홀로 보니

실용은 아니지만 고고한 취미로다.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앞산에 비가 개니 살진 나물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랏 어아리를

일부는 엮어 달고 일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잎 쓸고 앉아 병술을 즐길 때에

아내가 준비한 일품 안주 이것이로구나

 

  - 정학유

  

 

2019. 4. 5. 낮달

 

 

[()]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봄 절기

입춘, 봄이 멀지 않았다

우수(雨水), ‘봄바람새싹으로 깨어나는 봄

경칩 - , 우썩우썩 깨어나다

춘분, 태양은 적도 위를 바로 비추고

곡우(穀雨), 봄비는 촉촉이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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