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봄, ‘너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by 낮달2018 2024. 2. 29.
728x90

봄꽃과의 만남, 1년 만이지만, 더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것 같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겨울을 견뎌낸 꽃눈의 단단한 외피를 벌리고 노란 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2.21.)
▲ 전날 내린 비로 가지 아랫부분에 매달린 물방울. 물기를 머금은 꽃망울이 처절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1년 열두 달을 사계절로 나누면, 봄은 3·4·5월, 여름은 6·7·8월, 가을은 9·10·11월, 겨울은 12·1·2월이다. 이 단순한 구분은 일단은 합리적이고, 실제 날씨와도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올 입춘은 지난 2월 4일, 설날 전이었다. 24절기는 태음태양력에 맞춘 것으로, 실제 계절의 추이와 함께 간다.

 

오래 기다려온 봄꽃, 산수유

 

설날을 전후하여 날씨가 봄날 같지는 않지만, 사실상 계절은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월 19일이 두 번째 절기인 우수(雨水)였고,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은 3월 5일이니 봄은 이제 이미 우리 곁에 슬그머니 와 있는 셈이다.

 

아파트 앞 북봉산 쪽의 담장 옆으로 산수유 몇 그루가 서 있다. 묘목도 실하지 않고, 햇볕이 제대로 드는 양지도 아니어서 개화는 시내의 따뜻한 양지와 비길 바 아니지만, 나는 거기 산수유가 피는 것으로 봄을 실감하곤 해 왔다. 올해 매일 운동 길에 나설 때마다, 거기 꽃눈의 변화를 살펴 왔다.

 

거기 꽃눈이 껍질을 벗으며 꽃잎의 일단을 드러내기 시작한 게 지난 2월 21일이다. 마침 전날 비가 와서 가지 아랫부분에 물방울이 달려 있었다. 꽃눈의 단단한 외피에 겨우내 추위를 견뎌낸 흔적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그러나 물방울과 함께 어우러진 꽃눈의 자태는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 잦은 비로 다시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 사이로 꽃망울은 나흘 전보다 좀 더 자란 듯싶다.(2.25.)
▲ 꽃눈의 단단한 외피를 벌리고 맺은 꽃망울에 어제 내린 비로 물방울이 영롱하게 매달렸다.(2.25.)

요즘 비가 잦아서 나흘 뒤(2.25.)에 찍은 사진에도 산수유 가지에 물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나흘의 시간이 단단한 외피를 벌리면서 숨어 있던 노란 꽃술이 좀 더 고개를 내밀었다. 27일에는 안의 꽃술이 더 비집고 나와 풍성한 느낌을 배가해 주었다. 같은 날에 동네 오리고깃집 앞의 명자(산당화) 꽃눈도 찍었다.

 

28일에는 2024년 새봄의 매화도 만났다. 혹시 싶어서 찾아보았으나 전자부품 공장의 매화는 아직도 꽃눈이 듬성듬성하기만 했다. 그러다 커피점 뒤편 언덕바지에 있는 매화가 생각나서 갔더니 아, 꽃눈이 한창 피어 있었고, 놀랍게도 성미 급한 놈이 두 송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르는 새 꽃을 피운 매화

 

빽빽이 꽃눈을 달고 서 있는, 꽃받침과 새 가지가 녹색으로 푸른빛이 도는 청매(靑梅) 가지의 한끝에서 핀 꽃이었다. 늘 그렇듯 그윽하고 기품 넘치는 하얀 꽃은 시방 성큼 우리 곁에 와 있는 봄을 환기해 주었다. 지난겨울의 추위는 예년과 다름없이 평이했다. 그래도 겨울을 나고 맞는 봄의 감격은 새삼스럽다.

▲ 동네 오리고깃집 화단에 총총히 꽃눈을 매달고 있는 명자나무(산당화) 가지.(2.27.)
▲ 또 며칠 사이에 외피를 뚫고 나온 꽃술이 좀 풍성해졌다.(2.27.)
▲ 어느 결엔가 북봉산 언덕바지에 매화가 피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꽃눈 사이로 성미 급한 녀석이 꽃을 피웠다.(2.28. 이하 같음.)
▲  꽃받침과 새 가지가 녹색으로 푸른빛이 도는 청매(靑梅) 한 송이가 가지 끝에 우아하고 기품 있게 피었다.
▲ 한창 다닥다닥 붙어 틔운 매화의 꽃눈.

활짝 핀 매화 송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성부(1942~2012) 시인의 시 ‘봄’의 한 구절을 중얼거렸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겨울에서 봄으로 오는 거야 해마다 거듭되는 계절의 순환일 뿐이다. 더구나 혹한이라 할 수 없는 평범한 겨울을 보내고 맞으면서, ‘이기고 돌아’왔다고 노래하는 건 ‘오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 봄

 

그러나 어느 결인가 곁에 다가온 봄을 느끼고, 그것을 느꺼워하는 마음은 예사롭지 않다. 나이 탓인가, 칠순을 코앞에 둔 세월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이른바 ‘현존의 계절’이 겨운 것이다. 12년 전에 칠순에 세상을 떠난 시인은 오는 봄을 그렇게 노래했다.

 

그의 봄에 ‘민주의 회복’ 같은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시인은 봄은 “더디게” 왔지만, “마침내 올 것”이 되어 왔고, 시인은 “눈부셔 /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봄은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 껴안아 보는”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이다. [관련 글 : 이고 민주주의]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시 ‘봄’ 중에서

▲ 북봉산 자락 들머리에서 만난 생강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검붉은 꽃눈이 윤기를 더하고 있다.
▲ 양지쪽에서 마침내 꽃을 틔우고 있는 생강나무.

언덕바지 위로 북봉산 자락이 이어졌다. 도시에 산수유면, 산에는 생강나무다. 바로 서둘러 산 들머리로 드니, 산자락에는 봄이 아직 더디다. 한참 올라가서 이제 꽃눈을 틔우고 있는 생강나무를 만났다. 검붉은 빛깔의 꽃눈이 무심한 듯한데, 양지쪽에는 서둘러 외피를 비집고 나온 노란 꽃잎이 엿보였다.

 

꽃샘추위, 민주주의는 돌아올 수 있을까

 

꽃자루가 짧고 가지에 붙은 채 둥글게 피는 생강나무꽃이 제대로 피어나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봄은 모르는 결에 기습처럼 찾아온다. 언제 피려나 했는데, 어느 날엔가 활짝 피어 낙화를 준비하는 식이다. [관련 글 : 산수유와 생강나무]

 

요즘 날씨가 눈비가 잦다. 뉴스에서는 잦은 눈비와 꽃샘추위를 ‘롤러코스터 날씨’라고 이름하고 있다. 시방 바깥은 영상 5도, 일기예보는 비를 예고하고 있다. 비가 온 뒤 곧장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삼일절 아침 서울은 영하 5도까지 떨어지고 찬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 추위가 심한 전망이란다.

 

꽃샘추위는 겨울을 완전히 대체하는 봄에 부리는 하늘의 시샘이다. 그러나 그건 시샘일 뿐, 도도한 계절의 순환을 어쩌지 못한다. 여야 정당별로 공천 소식이 시끄럽다. 저마다 민생을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민생을 새롭게 할 수 있는지는 주권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시나브로 퇴행해 온 ‘민주주의와 인권’은 새봄처럼 되돌아 올 수 있을까.

 

 

2024. 2. 29.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