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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34

그 ‘맥주공장’은 광주로 가지 않았다 “구미의 ‘맥주 공장’이 광주로 갔다”는 ‘낭설’은 믿고 싶은 이에겐 ‘진실’이 된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떤 행사의 뒤 끝에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구미 경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인구 변동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예사롭지 않은데 공단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 끝에 ‘오비맥주 구미공장’이 화제에 올랐다. - 오비맥주 구미공장은 DJ정부 때 광주로 옮겨갔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광주공장에서 맥주를 생산하려니까 수질이 좋지 않아서 생산을 못 했다는 거예요. 거의 만화지요. - 처음 듣는 얘깁니다. 그런데 가정집도 아니고, 큰 공장을 옮기면서 사전조사도 안 하고 옮겨갔다니 이해가 안 되네요. 물을 원료로 하는 맥주공장이 옮기면서.. 2018. 12. 23.
목수 아버지의 추억 공구에 대한 집착 … ‘목수 아버지’의 피 요즘 나는 펜치나 드라이버, 망치와 톱 같은 공구들에 묘한 집착을 느낄 때가 많다. 얼마 전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녹슬어 뻑뻑해진 소형 펜치를 후배의 충고대로 식용유를 이용해 정성들여 녹을 닦아내 제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연모, 그리고 인간 보이지 않는 부위 깊숙이 녹이 슬어 거의 사용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몇 방울의 식용유를 먹고 붉은 녹물을 조금씩 토해내더니 곧 새것일 때의 기능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가끔씩 무료해지는 시간마다 연필꽂이에 꽂아둔 그 놈을 꺼내 만지작거리면서 연모를 처음 만들어 쓰던 때의 선사시대의 인간을 생각하곤 한다. 그보다는 더 오래 전 일로, 집에서 쓰던 망치의 자루가 부러져 .. 2018. 12. 21.
손방 문학도의 샤워수전 교체기 ‘똥손’ 국어교사의 DIY 도전기 학창시절부터 수학, 과학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타고난 ‘문과 체질’이다. 대학도 수학 시험을 치지 않는 학교를 골라서 갔다. 이처럼 자기 체질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우린 자신도 모르게 그 체질을 강화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행여 있을 수도 있는 ‘이과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한다. 문과 체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학이나 과학 같은 교과에 질색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계나 연모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낮고 그 운용에도 무디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적어도 나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게 이과적 흥미 따위는 결코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문과’ 체질의 한계 고교 시절부터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었다. 시작.. 2018. 12. 21.
60년 넘게 일본 정부와 싸운 92세 ‘BC급 전범’ 이학래 [서평] 이학래 선생 회고록 1948년에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에게 교수형, 나머지 18명에게는 종신형과 유기금고형이 선고됐다. 이로써 ‘평화에 대한 죄’의 용의자인 A급 전범에 대한 단죄가 끝났지만 ‘전쟁 범죄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규정한 포츠담선언에 따른 이 재판은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았다(관련 글 : 1948년 오늘-도쿄재판, 일본 전범 7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다). 태평양전쟁의 최대 책임자였던 일왕 히로히토(裕仁)를 비롯해 적지 않은 전쟁범죄자들이 처벌을 비켜 갔기 때문이었다. 맥아더의 참모였던 연합군 최고사령부 찰스 윌로비(Charles A. Willoughby) 장군이 ‘역사상 최악의 위선’이라고 한 언급은 그런 상황을 에둘러 짚은 것.. 2018. 12. 21.
2006년 금강산, 그리고 2018년 서울 평창 동계올림픽을 축하하는 북측 예술단이 두 차례의 공연을 마치고 지난 11일에 북으로 돌아갔다. ‘평창’을 굳이 ‘평양’으로 읽고 싶어 하는 극우단체들이 공연을 따라다니며 반대 집회를 벌였지만 이들은 공연을 관람한 시민들로부터 따뜻한 환영과 함께 큰 박수도 받았다. 삼지연관현악단이 불러준 우리 대중가요 강릉의 첫 공연은 공중파의 녹화 중계로 볼 수 있었지만 서울 공연은 따로 중계가 없었던 것 같다. 대신 인터넷 유튜브에는 중계방송 대신 길고 짧은 동영상이 여러 편 올라와 있었다. 나는 그 중 ‘삼지연 관현악단이 부른 남한 가요 종합 모음’이라는 26분짜리 동영상을 내려받았다. 나는 깊숙이 의자에 몸을 파묻고 컴퓨터 모니터로 북한 예술단 공연을 시청했다. 나는 왁스가 불렀다는 ‘여정’이란 노래를 북한 여.. 2018. 12. 20.
남과 북의 두 ‘여정’, 혹은 사랑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김옥주가 부른 ‘여정’ 남과 북의 두 ‘여정’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남쪽을 찾은 북측 예술단 서울 공연(2018.2.11.) 이야기는 그들이 돌아가고 난 2월 말께에 한 차례 했다. 나는 그들이 부르는 이남 노래를 들으며 12년 전, 금강산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고, 그 아련한 기억의 울림에 한동안 젖기도 했다. [관련 글 : 2006년 금강산, 그리고 2018년 서울] 거기서 북한 가수 김옥주가 부른 ‘여정’에 대한 느낌도 짤막하게 밝혔었다. 김옥주의 노래를 듣기 전에 나는 남쪽 가수 가운데 왁스라는 이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의 얼굴은 물론, 그의 노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정’의 곡조에 끌렸겠지만, 사실은 애절하고 다소 신파조인 가사에 더 끌렸던 것 같다.. 2018. 12. 20.
배우의 힘, 최민식의 <파이란> 송해성 감독의 (2001) 한국 영화의 질주가 심상찮다.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일천만을 넘긴 영화가 줄을 잇는 등의 외부적 지표는 가히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여전히 열악한 시스템이나 빈부의 양극화, 좋은 영화가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문제 따위를 일단 접어둔다면 말이다. 영화의 힘, ‘배우’의 힘 설날 연휴에 모인 아이들과 영화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었다. 제 나름대로는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탐탁한 부분도 있어 아이들과는 가끔씩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누곤 한다. 한국 영화의 성공 요인을 거론하다가 배우의 연기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가 본 최신 영화는 단연 이었다. - 송강호는 역시 걸출한 연기자던데요. - 그렇데. 그가 대단한 배우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 에서 연기는 압권.. 2018. 12. 20.
그 어머니의……, 영화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원제 Incendies)(2010) 어제 오후에 영화 (원제 Incendies)을 보았다. ‘예술영화 대박 낸 힘’이라는 기사를 보고 ‘아니, 그럼’하고 찾아보니 영화는 지역의 예술영화 전용관 ‘중앙시네마’에서 일주일 전부터 상영하고 있었다. 방학의 마지막 날이었다. 쉬고 있던 아내를 채근하여 우리는 서둘러 영화관으로 갔다. 144석 극장에서 다섯 명이 본 예술영화 기사는 이 130분짜리 영화가 17일 오전까지 관객 4만8천여 명을 모았다고 전한다. 예술영화의 흥행기준이라는 ‘1만 관객’을 벌써 4배나 넘긴 것이다. 독립·예술영화 중심 상영관에서만 틀던 CGV가 관객의 반응이 좋자 일반 상영관 4개(서울 목동, 일산, 대전, 대구)를 더 확보하는 이례적 결정을 한 것은 결국 이.. 2018. 12. 20.
“친일파는 죽어서도 이런 풍경을 누리는구나” [친일문학 기행] 이무영 문학비, 채만식·서정주·이원수 문학관을 찾아 블로그에 ‘친일문학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이다. (관련 글 : 친일문학 이야기) 일반에 널리 알려진 문인 중심으로 이광수부터 최정희까지 19명을 이태에 걸쳐 다루고 한동안 쉬었다. 2016년 여름에 한국문인협회가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을 때 다시 글을 이어갔다. (관련 글 : 춘원과 육당의 문학상 제정? 뜬금없고 생뚱맞다) 이듬해,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에도 ‘기억 투쟁’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것은 한 출판사가 2016년 12월에 이 두 사람을 기리는 상을 제정하여 시상까지 한 게 뒤늦게 드러나면서다. 한쪽에선 식민지 역사 청산을 부르짖는데 다른 한편에선 역사적.. 2018. 12. 19.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② 군산(群山) 겉핥기 생애 첫 전북 군산 기행 군산(群山)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선양동(善陽洞)’밖에 없다. 군 복무 시절에 같은 중대의 부사관 가운데 군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자기 고향이 ‘군산’, 그것도 ‘착할 선자, 볕 양자’ 선양동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호남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때라 나는 무심코 흘려듣고 말았지만 그 어감이 ‘선유(仙遊)’라고 할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산, 일제 쌀 수탈의 전초기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군산의 각종 정보를 살펴보면 군산은 단순히 하고많은 지방도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군산은 1899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강제 개항된 이후 일제의 쌀 수탈 전초기지, 곧 미곡 반출항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 2018. 12. 19.
‘친일문학’ 이야기 - 글머리에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문학’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갈증 중등학교에서 서른 해 가까이 문학을 가르쳐 왔지만 정작 ‘친일 문학’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늘 판박이 식의 지식 전수에 급급하다 보니 그랬지만 기실 스스로 친일 문학에 대한 이해가 얕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친일 문학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서정주의 정도로 얼버무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춘원 이광수의 경우는 그나마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등 따위로 알려진 게 있어서 대충 주워섬기면 되었지만 막상 누가 친일문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꼽다 보면 이내 이야기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간마다.. 2018. 12. 19.
이원수, ‘고향의 봄’에서 ‘굳센 일본 병정’까지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 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이원수(李元壽, 李山元壽, 1911~1981)라는 이름이 낯선 이는 적지 않을 테지만, 동요 ‘고향의 봄’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치고 그 노래를 부르며 자라지 않은 이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법에 맞지 않는 첫 구절 ‘나의 살던 고향은’부터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를 거쳐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를 구성지게 부르면 저도 몰래 저 유소년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마련이다. 그 노랫말에 실린 것은 근대화 이전의 ‘고향’, 그 원초적 정경이기 때문이다. 이원수는 ‘고향의 봄’과 ‘겨울나무’ 같은 .. 2018.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