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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방 문학도의 샤워수전 교체기

by 낮달2018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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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손’ 국어교사의 DIY 도전기

▲ 샤워 수전(수도꼭지)

학창시절부터 수학, 과학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아온 나는 타고난 문과 체질이다. 대학도 수학 시험을 치지 않는 학교를 골라서 갔다. 이처럼 자기 체질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우린 자신도 모르게 그 체질을 강화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행여 있을 수도 있는 이과적 특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한다.

 

문과 체질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학이나 과학 같은 교과에 질색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계나 연모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두드러지게 낮고 그 운용에도 무디다는 사실을 포함한다. 적어도 나는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게 이과적 흥미 따위는 결코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문과’ 체질의 한계

 

고교 시절부터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었다. 시작이 어려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원동기를 돌리고 공중에 걸린 굴대(샤프트)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피댓줄을 거는 일에 익숙해졌다. 가끔씩 부품을 갈면서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도 능숙하지는 않지만 대충 처리해 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선택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과제였으니 그걸 이과적 흥미나 특성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듯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아비가 되면서 내 일상이 반드시 문과적 특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걸 나는 시나브로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가장으로서 내 삶은 아내와 아이들의 그것까지 일정하게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 내 장비 가운데 가장 고가인 충전 드릴. 독일제다

삶은 때로 우리 자신을 낯선 경험으로 밀어낸다. 그럴 경우 우리에게 별다른 선택권이 주어져 있지 않다. 최초로 가장인 내게 주어진 과제는 전기를 만지는 작업이었다. 플러그를 끼운 적당한 길이의 콘센트를 만들고 새 공간에 백열등을 달아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읍내의 전기재료 가게에서 적당량의 재료를 샀다. 전선과 플러그, 콘센트, 절연테이프, 백열등과 소켓, 스위치 따위를 사 가지고 돌아오면서 나는 얼마간 흥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사실이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적당한 길이로 자른 전선 양쪽에다 플러그와 콘센트를 연결하는 작업은 간단히 끝났다. 문제는 부엌 옆의 새 공간에다 백열등을 달고 여기서 스위치를 빼는 일이었다. 나는 중고교 때 <기술>이나 <공업> 교과서의 전기영역에서 배운 이미 희미해진 전기 관련 지식을 머릿속에서 불러내야 했다.

 

일상은 문과적 특성으로 규정될 수 없다

 

나는 백지에다 그때 배웠던, 스위치를 포함한 전기 배선도를 엉성하게 그렸다. 핵심은 부엌에서 빼낸 전선의 한 줄을 스위치를 거쳐서 백열등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감전의 위험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먼저 두꺼비집을 내려놓았다. 배선도를 따라 진행하는 작업은 그리 매끄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 사각 스위치

작업을 끝내고 다시 전원을 넣고 입구 기둥에 고정한 사각의 템블러 스위치(중학교 때 기술교사는 이걸 덴뿌라 스위치라고 말하곤 했다.)를 젖히자 어둑했던 공간이 하얗게 밝아오던 순간의 감격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게 내 전기 작업 입문 공사였던 셈인데, 나는 가족을 끌고 셋방살이를 계속하면서 이런 작업을 꽤 많이 했다.

 

 교단에 나가 학교와 지역을 옮겨 다니며 나는 하나씩 공구(工具)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망치부터 드라이버, 펜치, 니퍼, 롱노우즈 프라이어 따위의 주로 전기를 만지는 데 쓰는 공구가 먼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프라이어, 몽키 스패너 등의 일반 공구로까지 확대되었다. 목공 공구까지 관심을 넓힌 것은 목수이셨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때문이었다. [관련 글 : 목수 아버지의 추억 ]

 

 공구를 마련하고 즐거이 이런 작업에 동참하면서 나는 내 핏속에 이런 노동과 친화적인 유전자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 나이 들면서 가족 친지들로부터 선친과 화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내 모습에는 일찍이 목수로 나무를 다루셨고 잘 드는 솜씨로 집안일을 척척 해내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일정하게 겹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선친처럼 능숙하지는 않으나 나는 이러한 집안일을 즐거이 해 내는 편이다. 공작에 열중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을 하다가 순서가 뒤바뀐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내 솜씨의 한계를 확인하면서 일을 어설프게 마무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내 봉사와 노동을 기꺼워한다. 내가 봉사를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가족들의 격려와 호응 때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 동안 하나둘 모은 공구들은 커다란 공구함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비록 값싼 중국제가 많지만 전동 드릴은 물론 충전 드릴을 마련했고, 소켓렌치세트에서부터 육각렌치세트까지 갖추었다. 필요가 갖가지 연장을 갖추게 했다. 나는 싸구려지만 전기인두도, 나무에다 스테플을 박는 장치인 건태커도 갖고 있는 것이다.

 

▲ 전선피복제거기

가장 자주 만지는 게 전기지만 오랫동안 나는 전통적인 방법, 즉 니퍼를 이용하여 전선의 피복을 벗겨왔다. 그러다가 흔히 스트리퍼라고도 부르는 대만제 전선피복제거기를 마련한 게 지난해다. 고작 일만 몇 천 원을 들였는데 나는 예의 물건이 얼마나 생광스런 공구인가를 단박에 알아챘다. 한번 힘주어 집어주는 것만으로 피복이 아주 간단하게 제거되는 물건의 메커니즘은 가히 감동이었다.

 

내킨 김에 두어 달 전에 나는 세 개의 방에 걸려 있던 등을 교체했다. 이 점등관이 달린 구형의 형광등은 불이 들어오려면 뜸을 들여야 했는데다가 침침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삼파장 램프를 끼운 신형의 등기구로 간단히 전등을 바꾸어냈다. 스위치를 누르면 이내 선명하게 불이 들어오는 등을 바라보며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아주 기분 좋게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아내가 안방 욕실의 샤워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온도조절기가 달려 있는 좀 투박한 모양의 샤워기였는데 안이 막혔는지 온수가 나오지 않는 거였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수도 쪽은 아직 내가 시도해 보지 않은 영역인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수전(水栓) 교체를 검색해 보았다. 부지런한 누리꾼들이 올려놓은 수전 교체기를 거듭 읽으면서 나는 은근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투지를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글 두어 편을 여러 번에 걸쳐 꼼꼼하게 읽으면서 유념해야 할 부분을 기억해 두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저가의 샤워기 수도꼭지 세트를 구입해 퇴근하자마자 작업을 개시했다. 먼저 현관 밖의 수도계량기의 꼭지를 잠근 다음 몽키 스패너로 헌 샤워기 수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해체는 순조로웠다. 본체 해체를 마친 뒤, 벽에 바투 붙은 편심을 손쉽게 제거해 내면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 몽키 스패너

만만치 않아 보였던 작업들이 뜻밖에 매우 수월하게 진행되었던 까닭이다. 묵은 수전의 편심을 제거하고 나자 벽면에는 배관의 구멍만 빛났다. 나는 용기백배, 새 수전에 딸린 좀 작다 싶은 편심을 벽면의 배관에다 끼우고 천천히 죄었다. 나는 편심의 방향을 일직선으로 가지런히 한 다음, 새로 산 수도꼭지를 거기 물리고자 했다.

 

 그런데, 어렵쇼! 나는 무언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새 수전에 딸린 왜소한 크기의 편심은 일직선으로 펴도 수도꼭지에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모자라는 길이는 고작 5mm1cm에 불과했다. 나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나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바쁘게 일어나 차를 끌고 인근 철물점을 찾았다. 나는 내 작업 상황을 설명하고 내 것보다 규격이 큰 편심을 구했지만, 철물점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요즘 편심, 크기는 거의 비슷비슷해요. 글쎄, 좀 비싼 수전은 어떨지 모르지만…….

 

 샤워 수전 교체 전말기

 

결국 모든 작업은 원래대로 환원되어야 했다. 누수를 막기 위해서 나는 묵은 수전을 다시 원래대로 결합해 놓았다. 다음날, 수전을 산 가게로 전화를 넣었더니 거기서도, 방법이 없다, 반품해도 좋다, 그러나 혹시 욕실 공사하는 데 가면 적당한 길이의 편심을 구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주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찾은 학교 앞 욕실공사 전문점에서 맞춤한 편심을 발견했다. 나는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갔고 다시 예의 작업을 시작했다. 수도를 잠그고, 묵은 수전을 해체하고……, 마침내 나는 예의 편심에 새로 산 수전을 정확히 맞추어 낼 수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왼쪽으로 젖히고 열었다. 온수가 쏟아져 나왔다. 됐어!

 

처음으로 해 본 수도 작업의 성공에 나는 잔뜩 고무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사진과 함께 작업 공정을 친절하게 인터넷에 올려놓은 누리꾼들의 바지런 덕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작업의 전 과정을 복기해 보면서 내 솜씨가 생각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 벽면에 고정하는 편심

 

그날 밤을 나는 푹 잤다. 그러나 새벽에 잔뜩 예민해져 있던 내 귀는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대번에 찾아냈다. 설마……, 하고 문을 열었는데 수전의 왼쪽 편심 쪽에 물기가 배어나와 벽면이 젖어 있었고, 그게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배관에 편심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테프론 테이프를 감는 게 부족했거나 배관에 편심을 결합하면서 좀 덜 죄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일어나 다시 한번 앞서의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주의 깊게 테이프를 감고 충분하다 싶을 만큼 여러 번 편심을 꼼꼼하게 감았다.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퇴근해 귀가하자마자 나는 다시 욕실 문을 열었다. 왼쪽 편심 아래는 기대대로 뽀송뽀송했다. 그러나 혹시, 하면서 오른쪽 편심 밑을 쓰윽 문지르는데 서늘한 물기가 느껴졌다. 이번엔 오른편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내 작업 마무리가 어설펐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다시 계량기를 잠그고, 수전을 해체하고 편심에 테이프를 감고, 몽키 스패너를 이용하여 죌 수 있는 데까지 빡빡하게 죈 다음, 계량기를 다시 열었다. 한바탕 물을 쏟아낸 다음, 나는 벽면과 편심 주변의 물기를 화장지로 깨끗이 닦아냈다. 그리고, 거기 다시 물기는 고이지 않았다.

▲ 드디어 작업을 끝내다. 묵은 수도꼭지를 들어내고 새 수전으로 말끔히 교체한 것이다.

이상이 내 샤워수전 교체의 전말이다. 글쎄, 내 솜씨를 생전의 선친의 기능이나 실력에 비기는 건 어차피 무리다. 그러나 그야말로 백면서생(白面書生)’ 수준의 인문학도로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솜씨라면 용서해 줄 만하지 않은가.

 

 내 친구는 전구 하나 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집안일은 마누라에게 일임하고 산다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기술자를 불러주는 걸로 가장의 몫을 다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몸소 한 작업이 얼마만큼의 경비를 줄일 수 있었는가 하는 것보다 이런 만만찮은 작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을 대견히 여길 뿐이다.

 

 독일에서는 가장이 가정에서 배관이나 전기 공사 따위는 기본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독일식 교육의 결과겠다. 나는 생활인들이 자신의 생활 주변을 일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솜씨를 기본으로 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몽키 스패너와 남은 테프론 테이프, 여분의 부속품 따위를 공구함에다 넣는 걸로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언젠가 아주 유능한 이과 출신의 선배는 내게 문과인데도 작업을 쳐내는 감각과 솜씨가 제법이라고 말해주었다. 글쎄, 감각도 솜씨도 별로지만 앞으로 나는 내가 문과체질이라는 걸로 내 어설픈 솜씨를 변명하지는 않을 작정이라는 걸 밝혀 두기로 한다.

 

 

2014. 3. 24. 낮달

 

 

* 손방[:] 명사, 아주 할 줄 모르는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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