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성 감독의 <파이란>(2001)
한국 영화의 질주가 심상찮다.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일천만을 넘긴 영화가 줄을 잇는 등의 외부적 지표는 가히 ‘전성시대’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여전히 열악한 시스템이나 빈부의 양극화, 좋은 영화가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문제 따위를 일단 접어둔다면 말이다.
영화의 힘, ‘배우’의 힘
설날 연휴에 모인 아이들과 영화 이야기를 꽤 오래 나누었다. 제 나름대로는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탐탁한 부분도 있어 아이들과는 가끔씩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누곤 한다. 한국 영화의 성공 요인을 거론하다가 배우의 연기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가 본 최신 영화는 단연 <변호인>이었다.
- 송강호는 역시 걸출한 연기자던데요.
- 그렇데. 그가 대단한 배우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 <변호인>에서 연기는 압권이더군. 받쳐 준 조연들의 연기도 그렇고. 좋은 배우들 덕분에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
그렇다. 나는 곽도원과 김영애, 이성민 같은 뛰어난 조연들 덕분에 송강호가 더욱 빛났으며 그들이 영화에 리얼리티를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송강호와 팽팽한 긴장을 지긋이 끌고 간 곽도원이 없었다면, 강인한 모성을 장엄한 절제로 드러내 준 김영애가 없었다면, 무력한 지식인의 냉소를 넘어 송강호에게 손을 내미는 이성민이 없었다면 1981년 부산의 법정은 훨씬 쓸쓸하고 김이 빠졌을 것이다.
- 얼마 전 <신세계>(2013)를 봤는데 말이야. 이정재를 새롭게 발견했어. 예전에만 해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웬걸, <신세계>에선 놀라운 절제미를 보여주데. 정말 놀랐어.
- 정말이에요. 특히 송지효와 바둑을 두고 난 뒤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엄청났지요…….
- <관상>(2013)에서도 이정재의 존재감은 굉장해요.
딸애도 끼어든 대화의 끝에서 아들 녀석이 꺼낸 영화가 <파이란>(白蘭, Failan, 2001)이다. 너무 바쁘게 살던 때라 나는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게 최민식의 영화란 사실만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애는 <파이란>에서 만난 최민식의 연기를 극찬했다.
- 양아치 깡패인 최민식이 자신과 위장 결혼한 중국 여자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환데요. 꼼짝없는 삼류 건달의 모습에서 인간성을 찾아가는 불쌍한 청년 역할을 정말 제대로 연기하고 있지요. 한번 보세요.
나는 TV 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에서 꾸숑으로 분한 최민식을 기억한다. 자그마한 키 덕분에 훨씬 다부져 보이던 그 젊은이는 십여 년 뒤, 영화 <쉬리>(1999)로 우리 곁에 다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오버 액션기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쉬리>에서 그는 힘이 들어가 어깨가 뻣뻣해 보였다.
그의 연기에서 연륜과 관록을 느끼게 된 것은 <범죄와의 전쟁>(2011)과 <신세계>에서다. 역시 ‘밥그릇’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밥그릇이란 병영에서만 작동하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하기야 인간 만사 가운데 밥그릇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파이란>의 최민식, 그리고 장바이즈(張柏芝)
개학을 하루 앞둔 늦은 오후에 나는 혼자서 거실에서 <파이란>을 감상했다. 아내에게 같이 보자고 권했지만 첫 장면부터 걸쭉하게 튀어나오는 욕설에 기겁을 한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프닝에서 나는 이 영화가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단편 <러브레터>가 원작이라는 것, 장백지라는 중국 배우가 출연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물론 나는 그의 단편을 읽지 않았다. 그가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철도원>의 작가라는 것도 알지만 난 그 소설 역시 읽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본 소설이 대체로 그렇고 그렇더라는 편견이 작용했는지는 모르겠다.
10년도 지난 영환데도 세상에, 영화는 무심하게 다가와 마음의 현(絃)을 잔잔하게 흔들어 댔다. 어느 장면에선가부터 눈물이 고여 와 나는 눈물을 찍어내기 바빴다. 두 시간쯤 후에 영화가 끝났을 때 마침 걸려온 아들의 전화를 받으며 나는 치신머리없게 잠깐 흐느꼈던 것 같다.
- 그래, 지금 막 <파이란>을 다 봤다. 눈물이 나는구나…….
- 그러셨어요……. 눈물 나고말고요.
<파이란>은 상도 꽤 많이 받았다. 제39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과 심사위원 특별상, 제22회 청룡영화상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제2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등이 이 영화가 받은 수상목록이다.
‘파이란’은 여주인공인 장바이즈(張柏芝)의 이름이다. 그녀는 고아가 되어 한국에 사는 이모를 찾아오지만 이모는 이미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없다. 이 순진한 처녀는 강재(최민식) 일당의 밥이 되어 강재와 위장결혼한 뒤 술집에 팔려간다. 그러나 이미 그네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내쳐진 그녀는 동해의 한 항구도시의 세탁소에서 빨래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그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강재와 위장 결혼했지만 그 관계는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강재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빨간 머플러를 후배를 통해 그녀에게 건네주었을 뿐이다. 세탁소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 파이란은 한글을 배우고 깨치면서 만나지 못한 남편, ‘강재 씨’에게 편지를 쓴다. 그게 말하자면 원작의 제목인 ‘러브레터’다.
그녀는 세탁소 여주인(김지영 분)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친절’에 감사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강재를 꼽는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과 결혼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툴지만 단정한 필적으로 편지를 써서 그것을 우체통에 넣는다. 자전거에 세탁물 광주리를 싣고 바닷가 마을을 달리는 그녀의 목에는 남편이 준 유일한 징표, 빨간 머플러가 단정하게 매어져 있다.
자신의 병이 너무 깊어진 것을 깨달은 파이란은 주소 하나만 들고 인천으로 강재를 찾아온다. 강재가 생활하는 비디오점 앞에서 가게 안의 강재를 훔쳐보다가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다듬는다. 그 순간에 경찰차가 멎고 달려든 사복경찰들에게 강재는 잡혀간다.
파이란의 사랑, 건달의 회한
강재에게 그녀는 부재의 존재다. 그는 단지 먼빛으로 그녀를 흘낏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부음을 받고 장례를 치르러 후배 경수(공형진 분)와 함께 길을 떠나면서부터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증명사진 속의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거북해지고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여자의 죽음 앞에서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개처럼 살아온 형편없는 건달의 삶 앞에 ‘인간’이, ‘관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건달 강재는 그 혼란스런 감정을 서툰 건주정과 싸움질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배 한 척 앞세우고 귀향하기 위해 친구의 죄를 뒤집어쓰기로 한 건달에게 그녀의 사랑과 죽음은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인자 오나, 야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인자사 와. 사람이 어떻게 기럴 수 있는기야. 세탁소 여주인의 울음 섞인 타박을 묵묵히 받아넘기는 강재의 모습은 꼼짝없이 탕자로 돌아온 ‘남편’이다.
그는 그녀의 유골상자를 들고 바다에 나가 여주인이 전해준 그 여자의 마지막 편지를 읽는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주검을 거두러 온 강재에게 쓰는 그녀의 러브레터다. 긴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깡마르고 고집스러운 표정의 그 여자는 아름답다. 그녀는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자신의 남편, 그 ‘친절한 사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고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다 말고 양아치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그 오열은 낯설지도 민망하지도 않다. 양아치, 날건달 이강재가 비로소 자신의 가슴 깊숙이 숨어 있던 자신의 ‘인간성’, 그 진실을 만나는 순간인 까닭이다.
사랑은 눈빛 한 번,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도, 손길 한번 스치지 않아도, 갈급한 육체의 교접 하나 없어도 자라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 속에서 무르익고 꽃을 피우는 진실하고 위대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파이란의 외로우면서도 따뜻한 사랑을 통해 비로소 군산 촌놈으로 돌아온 이강재는 후배 경수가 찍어놓은 ‘파이란 봄바다’라는 비디오를 보다가 조직에 의해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파이란은 수줍게 웃으면서 맑은 목소리로 노래 부른다.
장바이즈는 2000년대 중반 지저분한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파이란>을 통해서 그녀를 처음 만났지만 그 스캔들 탓에 파이란의 이미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실의 배우보다 영화 속의 인물이 자아내는 울림이 더 압도적이었던 까닭이다.
포털 ‘다음’의 영화 리뷰를 살펴보면 짤막하면서도 강렬한 감상이 넘친다. ‘10년째 최고의 영화’, ‘7년째 헤어나지 못하는 영화’ 따위의 제목에는 무명 관객들의 짭짤한 눈물이 배어 있다. 영화의 무엇이 사람들을 울릴까. 엇갈린 사랑이 왜 그들의 마음에 아픔과 슬픔으로 다가갈까.
두 남녀의 ‘관계’와 파이란의 ‘사랑’, 이강재의 회한을 통해서 환기되는 ‘인간과 진실’은 우리들 무명의 삶속에서도 여전히 갈급한 무엇이다. 우리는 어쩌면 영화를 통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가 시방 잃어가고 있는 인간과 진실의 일단 앞에서 아프게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민식은, 그리고 장바이즈는 좋은 배우다. 좋은 배우를 통해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좋은 영화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그것 앞에 세상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낱 광대들의 이야기가 이 세기의 위대한 전설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들을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이 개봉되었으나 외압 탓으로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이 개봉관을 축소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지역의 복합상영관인 메가박스에서 정시에 이 영화를 개봉했다. 삼성전자 후문에 있는 메가박스 강동점에서의 개봉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삼성의 권력 앞에 사람들은 저마다 스스로를 검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삼성이 가진 힘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양심과 진실, 영혼의 문제까지를 누르지는 못한다. 지난해 동안 영화관을 찾은 2억의 관객, 그들의 힘으로 우리 사회의 이 빗나간 자본의 위력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다.
2014. 2.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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