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텃밭일기 2018] ② 첫 수확과 호미, 이 땅 어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한다
지난해 6월에 쓴 텃밭 일기다. 오늘 인터넷에서 <“아마쥬가 먼디?” 아마존에서 대박난 ‘메이드 인 영주’ 호미> 기사를 읽고 ‘호미’에 관해 쓴 이 글이 생각났다. 기사는 영주의 대장간에서 전통 방식으로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경상북도 최고 장인의 호미가 아마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한다.
미국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한국산 농기구 ‘영주대장간 호미(Yongju Daejanggan ho-mi)’가 크게 이른바 ‘대박’을 냈다는 것. 국내에서 4000원가량인 이 호미는 아마존에서 14.95~25달러(1만6000원~2만8000원)로 국내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지만, ‘가드닝(gardening·원예)’ 부문 톱10에 오르며 2000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ㄱ자로 꺾어진 ‘호미’는 모종삽만 쓰던 외국인들에게는 ‘혁명적 원예용품’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30도 휘어진 날은 미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호미 쓰기 전에는 정원을 어찌 가꿨는지 의문” 등의 구매 후기가 쏟아졌다. 밭농사에 호미만큼 쓸모 있는 연장이 어디 있을까. 미국인들이 입이 딱 벌어진 건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지난 13일에 텃밭에 들러서 슬슬 돋아나기 시작한 풀을 매면서, 고추와 가지를 조금 땄다. 지난해엔 제대로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아내에게서 지청구를 당하던 호박은 올핸 품종이 달라선지 꽃 핀 줄기마다 양파만 한 호박이 달렸다. 그런데 그게 마치 말 잘 듣는 자식처럼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고추를 심을 때 욕심을 덜 부려 고랑을 널찍하게 띄웠더니 그게 도움이 되었을까. 임자 마음엔 고추가 훨씬 더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고, 병충해도 덜 꾈 듯하여 은근히 쾌재를 부른다. 새 밭엔 고추만 심었고, 묵은 밭엔 중간을 비워놓고 양쪽에 가지, 파, 상추, 배추 등속을 심었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은근히 짜임새가 있고 실팍해 보인다.
해마다 담 밑 그늘에서 자란 가지는 올해는 마당 안쪽에 심었더니 햇볕을 받으며 제대로 익어가고 있다. 사서 먹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도 우정 사다 심은 파도 제법 실하게 자랐다. 상추도 하루 다르게 자라는데 조선 배추는 벌레 먹어 이파리에 구멍이 숭숭 나 있다. 그래도 뜯어서 김치를 담갔는데 맛은 그만이었다.
몇 포기 고추에서 진딧물이 보인다며 아내가 지난해 치다 남은 식초를 희석하는 동안 나는 서둘러 듬성듬성 돋아나고 있는 고랑의 풀을 매었다. 이효리가 엉덩이에 달고 있는 걸 보고 알게 된 농업용 작업 방석을 착용하고 하는 일은 금방 끝났다. [관련 글 : 이효리의 ‘궁둥이 의자’, 혹은 ‘작업 방석’]
텃밭 농사를 지으며 우리가 늘 몸에 붙이고 쓰는 연장이 호미다. 호미는 집 옆에 지붕을 달아낸 창고에 대여섯 개가 있다. 돌아가신 장모님께서 쓰시던 게 몇 자루, 우리가 예전에 텃밭 농사 지을 때 장만한 게 또 그만큼 되는 것이다.
호미는 고된 ‘어머니의 노동’
호미는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에서 ‘사랑’으로 비유된 농기구다. ‘사모곡’은 어버이가 보여주는 사랑의 크기를 낫과 호미로 비교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는 작품이다. 하필이면 ‘베는 도구’인 낫으로 사랑을 비유한 것은 농부인 지은이가 자기 삶 주변에서 시어를 고른 탓이다.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 낫같이 잘 들 리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 없습니다.
말씀 마시오, 임이시여 /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 없습니다.
호미는 낫만큼 예리(銳利)하지 않은 연모, 그러니까 아버지의 사랑인 셈이다. 그러나 종자를 심고 논밭의 풀을 제거하거나 흙을 북돋워 줄 때 쓰는 농기구인 호미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더 가까운 연장이다.
논밭을 매는 일에 남녀 구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남자는 힘쓰는 일, 삽이나 괭이로 땅을 파고 쟁기질이나 써레질 따위를 전담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호미로 밭을 매는 일은 여자에게 맡겨진다. 밭매는 일이 땅을 파거나 쟁기질, 써레질보다 수월하다고만 할 순 없다. 땡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쪼그려 앉아 사래 긴 밭을 오가야 하는 이 무한 반복의 노동은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자란 내 친구들도 고개를 홰홰 저을 만큼 괴로운 것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한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대중가요 ‘칠갑산’(1989)의 노랫말엔 밭매기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베적삼을 흠뻑 적실 만큼 땀은 쏟아지고, 그 고단한 일과 삶의 괴로움으로 ‘포기마다 눈물 심’는 아낙네가 바로 우리 어머니가 아니시던가.
베적삼을 흠뻑 적신 ‘어머니의 노동’
어머니(여성)의 노동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밭일은 밭일대로 하면서 끼니를 지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들일을 끝내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밥을 지어야 하고, 쌓인 빨랫감을 주물러 널어야 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씻고 들어와 저녁상을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다.
농촌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여성들에게 지워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실감한다. 낮은 낮대로 농업노동에 시달리고, 일이 끝나면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가사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노동은 남성 노동을 보조하는 부수적 노동으로 이해되기 일쑤다.
‘2016년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가 인구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아서 성비가 95.9라고 한다. 여성 농민들은 육체적으로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는, 규정된 근무시간도 없는 농업노동에 종사하며 다양한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아내와 같이 텃밭에 가서도 힘쓰는 일만 마치면 나는 방에 들어와 누워서 쉬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내는 나머지 일을 마무리하느라 밭과 밭 사이를 부산하게 오간다. 아내의 일은 상추를 솎고, 고춧잎을 뒤집어서 병충해가 생기지 않았는지 따위를 확인하기도 하는 등 건성인 내 노동과 결이 다른 것이다.
나는 뜰에 걸터앉아 호미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쇠로 만든 호미는 날의 형태가 역삼각형이다. 위는 넓적하고 아랫부분은 뾰족하다. 그 날카로운 날 부분이 땅을 일구는데, 한끝에서 목이 휘어 꼬부라져서 넘어간 슴베(칼, 호미, 낫 따위에서,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한 부분)에 둥근 나무토막을 박아 자루로 삼는다.
자루는 날렵하여 손에 가볍게 잡힌다. 가볍지만 엔간한 땅은 쉽게 파낼 수 있는 호미는 아진도 밭농사에는 요긴하게 쓰인다. 제초제가 등장하고 작물 재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김매기는 거의 사라졌다. 밭농사 김매기도 땅에 비닐 필름을 깔고 그 위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이른바 멀칭 농법이 보급되면서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호미를 바라보면서 이 조그만 연장으로 장모님이 지어낸 농사를 생각했다. 우리가 봄부터 가으내까지 얻어먹은 온갖 채소와 작물들이 이 연장의 날 끝에서 나왔으리라.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께서 젊어서부터 온몸으로 감당해 낸 노동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께서 눈물로 심었던 밭고랑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따낸 열매를 뜰 위에 모으니 올 농사의 첫 수확이다. 고추 조금, 가지 몇 개, 호박은 아직 어려 한 개…. 그러나 몇 안 되는 수확물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푸근하고 넉넉하다. 아내가 열매들을 천으로 된 가방에 넣으면서 며칠 있다 호박 따러 와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애호박으로 먹으려면 너무 크기 전에 따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려나, 언제든지 옵시다, 까짓것. 이 아이들 소꿉장난 같은 텃밭 농사로 우리가 얻는 기쁨과 만족감을 어찌 기름값으로 환산하겠느냐 말이다.
2018. 6.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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