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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128

그 절집 아래 ‘만 마리 물고기 떼’를 보았는가 밀양 만어사의 ‘어산불영(魚山佛影)’ 답사기 지난 주말에 만어사(萬魚寺)를 다녀왔다. 나는 일찍이 밀양 어름에 그런 절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웬 만어사? ‘만’은 무어고 ‘어’는 무어야, 물고기 만 마리라고? 난생처음 듣는 만어사를 만나게 된 것은 그러니까 전적으로 온 나라의 크고 작은 산을 밟으며 거기 깃든 절과 암자를 찾아온 부지런한 친구 덕분이다. 만어사는 삼랑진읍에서 들어가는 게 쉽다. 그러나 우리는 밀양시 쪽에서 만어산(萬魚山)을 넘었다. 좁고 가파른 임도를 따라 산을 넘는데 기분이 아슬아슬했다. 만어산은 해발 670m의 평범한 육산(肉山)이지만, 삼랑진읍 용전리의 7부 능선쯤에 자리한 만어사 덕분에 적잖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만어산 정상에서 서쪽 비탈로 내려오다가 급하게 길을 .. 2020. 3. 22.
[유럽여행-루체른]이제 ‘부자 나라’ 스위스에 ‘빈사의 사자’는 없다 [처음 만난 유럽 ⑦] 스위스의 루체른, 리기산 4년 전 퇴직을 기념하여 패키지로 유럽 여행(2016.4.16.~4.21.)을 다녀와서 5월부터 7월까지 에 그 여행기 다섯 편을 썼다. 그런데 여섯 번째 기사를 쓰려고 사진을 뒤적이며 여행의 기억을 복기하다가 나는 내 기억이 뒤죽박죽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은 시간 순서로 기록되는데도 그 기억의 앞뒤가 헛갈리면서다. 그게 로마였는지 피렌체였는지가 헛갈리는가 하면 바티칸시 박물관 등 내부를 찍은 사진은 자신도 종잡을 수 없었다. 나는 바티칸 박물관 안으로 막 들어서는 여정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인터넷의 로마 여행기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예 손을 들었다. 6편을 쓰게 된 것은 반년이 지난 이듬해 1월이었다. 시스티나 성당 안에선.. 2020. 2. 7.
화가 이중섭, 서귀포의 기억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 미술관 답사기 도시는 어떤 형식으로 예술가들을 기억하고 기릴까. 괴테나 쇼팽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을 낳은 유럽의 도시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작가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상업적이고 천박하지 않은가 싶다. 지방자치 이후 각 지자체는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예술가의 이름을 딴 각종 문화제나 예술제 등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인식한 경제적 관점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출신 예술가를 관광 상품화하여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의 이해는 눈에 보이는 기념관 등 건물을 짓고 격에 알맞지 않은 동상을 세우는 등의 사업으로 나타난다. 결국, 주변 풍경과의 조화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2020. 1. 23.
함양 상림(上林)에서 최치원을 생각한다 겨울, 2008년 1월 겨울 여행을 다녀왔다. 쉰을 전후한 중년 사내 셋이 함께했다. 목적지는 경남 함양과 산청. 일행 중 한 친구의 고향이 함양 안의다. 그는 당연히 이 여행의 길라잡이 역을 맡았고, 가장 연하의 한 친구는 그 죄(?)로 운전을 맡았다. 나이 덕에 나는 조수석에서 느긋하게 연변 풍경을 즐기면서 필요하면 사진을 찍어댈 수 있었다. 중년 3인의 겨울 나들이 첫날은 용추계곡을, 이튿날엔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을 훑은 뒤, 정여창 고택을 거쳐 함양 읍내의 상림(上林)을 찾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염두에 두었던 곳이 화림동 계곡의 정자와 함양 상림이었다. 물론 산청의 덕천서원 등 남명 조식의 유적지도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이후 나는 죽 대구에서 공부했는데 그 시기의 대구의 살인적 더위를.. 2020. 1. 2.
겨울 여행, ‘눈꽃 전차’를 만나다 아내와 함께한 겨울 여행 겨울 여행에서 눈을 만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행운이긴 하다. 그러나 자칫 그것은 여행자의 발길을 묶어 예기치 않은 여정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므로 에누리 없이 행운이라고는 못한다. 하여, 눈은 풍성하게 내리되 길이 막히지 않고 눈부신 설경을 펼쳐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가히 ‘서설(瑞雪)’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성년의 어떤 시기부턴 ‘눈’은 그리 생광스러운 배경이 아니다. 푸짐하게 내릴 때 주는 기쁨과 감동은 ‘잠깐’이지만 쌓인 눈이 얼고 다시 녹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불편’과 ‘지저분함’은 ‘오래’이기 때문이다. 큰 눈 온 다음 날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설원을 바라보며 지른 탄성은 이내 이런저런 불편 때문에 내는 짜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관련 글 : 눈, ‘설.. 2019. 12. 29.
수백 년간 연못에 ‘수장된 비석’의 정체 보물로 지정 예고된 정자, 경북 김천 방초정 이야기 인근 김천에 있다는 정자 ‘방초정(芳草亭)’의 이름을 들은 것은 7년 전, 구미로 들어와 살면서다. 안동에 살면서 웬만한 정자는 다 돌아본 터라, 선산도 어떨까 싶었는데 정작 이름난 정자가 몇 되지 않았다. 방초정은 범위를 넓히다 김천에서 확인한 정자였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도록 나는 그쪽 걸음을 통 못했다. 방초정 이름을 다시 들은 건 지난달 하순이다.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을 예고한 10건의 문화재 가운데 강릉 경포대 등과 함께 김천 방초정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방초정 소재지가 김천시 구성면임을 알았다. 구성(龜城)이라면 흑돼지로 유명한 지례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그간 지례를 두어 차례 찾으면서도 모르고 스쳐 지.. 2019. 12. 24.
낡은 절집 가득한 온기와 정담(情談) 전남 순천 조계산 선암사 기행 전남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는 애당초 우리의 여행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리암 다음의 목적지로 선암사를 넣은 것은 제대로 마음속에 새길 능력도 변변찮으면서 명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 과욕 때문이다. 지도를 여러 번 살펴보는 과정에서 보길도로 가는 길목에 순천 조계산이 있었고, 승보사찰 송광사 너머 산자락에 깃든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를 발견한 것이다. 송광사는 두어 차례 들렀으나 선암사는 초행이다. 노승과 동자승이 등장하는 뒷간 광고로 널리 알려진 이 절집을 나는 작가 조정래의 출생지로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나는 조정래보다는 그의 부친을 먼저 알았다. 70년대에 고등학교에 다닌 이라면 국어 교과서에 실린 다음 노래를 기억할 수도 있겠다. 나도 푯.. 2019. 11. 22.
문화재등록 거부한 ‘겁 없는’ 촌부들, 누구야? 경북 군위 한밤마을 주민들의 돌담길 보전하는 방법 지방자치가 자릴 잡으면서 지자체들의 관광자원 개발은 바야흐로 백화제방 시대를 맞은 감이 있다. 지자체들은 빤한 재정을 도울 ‘백기사’로 관광 수입을 겨냥한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비슷한 포맷의 축제가 겹치는 것이나, 관광객을 끌 만한 ‘거리’만 있으면 기를 쓰고 관련 스토리텔링에 골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문화재등록’을 거부한 한밤마을 사람들 그런 상황에서 집집이 오래된 돌담으로 둘러싸인 유서 깊은 마을이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다면 뉴스가 될 만하지 않은가. 그것도 마을 주민들이 투표로 부결시킨 것이라면 이들의 뜻과 의지는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관’이 권하는 일을 깨끗이 물리친 이 ‘민’이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 사람.. 2019. 11. 21.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난생처음 본 내장산 단풍터널… ‘가을의 본좌’는 단풍부터 다르다 가을이 ‘단풍의 계절’이라는 걸 모르는 이야 없지만, 단풍을 제대로 즐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단풍을 보겠다고 길을 떠나도 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 걸음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 일쑤다. 한 열흘쯤 늦추거나 당기면 맞아떨어지겠지만, 그게 말처럼 수월치 않은 것이다. 가을 단풍의 본좌 그간 단풍 이야기를 두어 차례 기사로 썼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와 대구 팔공산 단풍길의 단풍(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이다. 도리사 단풍은 핏빛이라는 기억을 돌이키려 두어 차례, 팔공산 단풍길은 꽤 여러 해에 걸쳐 찾았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나.. 2019. 11. 17.
대관령 ‘양떼목장’에 없는 것 [2박 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⑤ 대관령 양떼목장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속초에서 출발하여 대관령마루길에 있는 대관령 양떼목장에 닿은 것은 해가 서편으로 한 뼘쯤 기운 시각이었다. 원래 평창군 도암면이었던 이 지역 이름이 대관령면이 된 것은 2007년이다. 낯선 도암이라는 이름 대신 널리 알려진 대관령으로 바꾼 것이다. 강원 영월군 서면이 ‘한반도면’, 강원 영월군 하동면이 ‘김삿갓면’, 경북 고령군 고령읍이 ‘대가야읍’으로 바뀌는 등 지명을 지역 특색을 살리는 이름으로 바꾼 예 가운데 하나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도나 각 시·군 등 지방자치단체의 명칭과는 달리 지자체 소속 읍면동의 명칭은 자체 조례 개정만으로 변경할 수 있어서 이루.. 2019. 11. 6.
케이블카와 권금성, 다시 만난 설악 [2박 3일 강원도 회갑여행] ④ 설악산 권금성과 영랑호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주문진에서 점심을 먹고 설악동 어귀에 닿은 것은 오후 두 시께였다. ‘국립공원 설악산’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아마 주변이 오래된 기억과 달리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지답게 너무 잘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학여행, ‘일탈과 통과제의의 시간’ 1997년에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인솔하고 온 이래 20여 년 만에 찾은 설악이었다. 그때 고교 수학여행은 설악산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제주도뿐 아니라 나라 밖으로 나가는 학교도 드물지 않아졌다. 어쨌든 예전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살림살이가 나아진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 2019. 11. 5.
바다 역 정동진과 강릉항 커피 기행 [2박 3일 강원도 회갑 여행] ③ 정동진(正東津)과 강릉항 커피 거리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경포대를 떠나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정동진에 닿았을 때는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리조트의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대자 거대한 배 모양의 건축물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멋있는데! 진짜 배유?” “설마, 거죽만 배 모양이겠지. 내부는 몽땅 객실일 게고.” 이 리조트에 묵기로 한 것은 방송고 학생의 권유 때문이었다. 나보다 서너 살이 많은 그 학생은 객실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지만, 숙박료가 비싸지 않다며 이 리조트를 내게 추천했다. 평소 같았으면 모텔에서 묵는 비용의 몇 배나 드는 데를.. 2019.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