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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128

[유럽여행-피렌체]미켈란젤로를 키운 가문, 실로 대단했다 [처음 만난 유럽③] 르네상스 발원지, 꽃의 도시 피렌체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1280×848) 볼 수 있음. 나흘째 일정은 피렌체(Firenze)에서 시작되었다. 아르노강가에 닿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나는 무심하게 강 저쪽의 이어진 버드나무 숲과 야트막한 언덕 주변 마을의 붉은 지붕을 건너다보았다. 여기가 플로렌스란 말이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한 바퀴 둘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피렌체에 닿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은 내게 낯설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 이 도시를 ‘플로렌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수익 시인의 연작시 한 편 때문이었다. ‘우울한 샹송’의 서정시인은 이탈리아 북부의 오래된 도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여, 잃어버린다는 일은 / 결코 슬픈.. 2019. 4. 29.
[유럽여행-파리]개선문 거리에 이제 ‘망명자’는 떠나고 [처음 만난 유럽 ②]혁명의 광장 콩코드와 프랑스의 영욕, 개선문 *사진은 클릭하여 큰 사이즈(1280픽셀)로 볼 수 있음. 우리는 ‘구경’을 유난히 좋아한다. 구경 중에는 으뜸이 불구경이라느니, 쌈 구경이 그에 못지않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할 만큼 말이다. 거기엔 이해 관계없이 구경거리로만 그걸 즐길 수 있다면 당사자의 심정은 상관없다는 심술이 은근하다. 가벼운 나들이나 여행도 구경이라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금강산도 디즈니랜드도 유럽도 구경의 대상이고 ‘나’는 그 구경의 주체이니 이 고유어가 포괄하는 의미는 꽤 너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견학’이니 ‘감상(鑑賞)’이니 ‘체험’이니 하는 한자어는 서양식 근대 교육이 도입되면서 들어온 낱말이다. ‘구경’이 앞의 한자어들과 다른 점은 대.. 2019. 4. 28.
[유럽여행-파리] “흉측하게…” 죽다 살아난 파리 에펠탑 [처음 만난 유럽 ①]에펠탑과 센강, ‘구라파’에서의 첫 밤 퇴직을 기념해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 가운데 불과 세 나라를 찾았을 뿐인데 뭉뚱그려 유럽이라고 말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럽이 대륙의 이름이고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라는 경제공동체여서가 아니라 수만 리 저쪽에 존재하는 ‘낯섦’을 우리는 그렇게 줄여서 이해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유럽(europe)을 굳이 ‘구라파(歐羅巴)’라 쓸 필요가 없는 시대다. 요즘 아이들에겐 ‘음차(音借)’ 또는 ‘음역(音譯)’으로 유럽을 그렇게 표기한 시대가 있었다는 얘기도 사족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코 쓰는 ‘서구(西歐)’와 ‘구미(歐美)’의 ‘구(歐)’가 바로 ‘구라파’라고 하면 아이들도 머리를 주억거린.. 2019. 4. 26.
산청 단속사(斷俗寺) 옛터에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斷俗寺址)를 찾아 대체로 ‘절터’는 허무하다. 사진은 가끔 마술을 부린다. 전각도 없이 탑만 우두커니 선 절터 풍경도 사진으로 보면 그 울림이 심상찮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몸소 만나는 절터의 풍경은 ‘아니올시다’이기 십상이다. 그나마 절터가 제대로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 전각이 서 있을 자리에 민가가 들어와 있는 광경은 마치 빈객들이 돌아간 잔칫집처럼 썰렁한 것이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있는 단속사지(斷俗寺址)도 다르지 않다. 나는 우선 그 이름에 끌렸다. ‘속(俗)을 끊는다’는 절 이름이 갖는 울림은 좀 색다르다. ‘속리(俗籬)’가 ‘세속과 떨어짐’이 아니듯, ‘단속’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왕과 왕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 2019. 4. 10.
우정과 연대 - 변산, 2010년 겨울 겨울의 막바지, 벗들과 함께 ‘변산(邊山)’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1989년 전교조 사태 때, 경북 성주와 칠곡 지역에서 같이 해직되어 도내의 해직 동지들로부터 ‘3장(張) 1박(朴)’으로 불린 벗들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는 ‘2장 1박’만이 함께했다. 3장 가운데 하나, 장성녕은 함께하지 못했다. 명도 짧았던 친구, 그는 2008년 2월 10일,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잘 가게, 친구] 1988년에 만났으니 해직 4년 반을 포함,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22년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한다는 그 세월은 초등학교 6학년짜리 늦둥이를 남겨두고 쉰넷의 가장을 데려간 것만으로도 모질고 모질었다. 고향 거창에다 그의 유골을 뿌리고 돌아오던 날, 소주를 마시며 부렸던 건주정이 어제처.. 2019. 3. 13.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② 군산(群山) 겉핥기 생애 첫 전북 군산 기행 군산(群山)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선양동(善陽洞)’밖에 없다. 군 복무 시절에 같은 중대의 부사관 가운데 군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자기 고향이 ‘군산’, 그것도 ‘착할 선자, 볕 양자’ 선양동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만 해도 호남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한 때라 나는 무심코 흘려듣고 말았지만 그 어감이 ‘선유(仙遊)’라고 할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산, 일제 쌀 수탈의 전초기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군산의 각종 정보를 살펴보면 군산은 단순히 하고많은 지방도시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군산은 1899년 부산, 원산, 인천, 목포, 진남포, 마산에 이어 강제 개항된 이후 일제의 쌀 수탈 전초기지, 곧 미곡 반출항으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 2018. 12. 19.
순천만 갈대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습지 갈대 군락지와 어린이 생태해설자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이전 기사] 지친 마음 어루만져주듯... 반짝이던 황매산 ‘억새 물결’ 황매산 억새를 만나고 나서 순천만 습지의 갈대를 만났다. 불과 닷새 뒤인 지난 7일 일이다. 그러나 두 만남 사이에는 어떤 인과 관계도 없다. 황매산을 찾은 건 억새를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순천만에는 여수 가는 길에 잠깐 들렀을 뿐이다. 순천만에 가는 것이 모두 갈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은가. 억새와 갈대는 같으면서도 다른 식물이다. 같은 볏과의 한해살이풀이지만 억새와 갈대는 자생지역과 색깔, 키 등이 서로 다르다. 억새는 주로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냇가나 습지, 물가에 무리를 .. 2018. 11. 28.
지친 마음 어루만져주듯... 반짝이던 황매산 ‘억새 물결’ 억새군락지 아래까지 차로 오를 수 있는 합천 황매산을 찾다 ‘억새’라 하면 우리 가족은 저마다 할 말이 많다. 그건 2013년 11월 초, 아무 준비도 없이 오른 영남 알프스 간월재의 ‘억새 하늘길’에서부터 비롯한다. 한 시간이면 닿는다 싶어, 동네 뒷산에 가는 모양새로 어정어정 오르다가 된통 욕을 본 곳이 간월재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1박2일’도 반한 한국의 알프스? 가보면 누구든 반한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도 그윽하였다. 지금도 딸애는 간월재 허리를 치닫는 억새 하늘길의 감동을 되뇌곤 할 정도니까 말이다. 이듬해에도 우리는 다시 억새를 찾아 나섰다. 비교적 가까운 경주의 무장봉 억새군락지를 올랐는데 철이 조금 일렀다. 은빛 억새 물결을 만나지 못한 대신, 우리는 넉넉하게 챙겨간 음식을 즐길.. 2018.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