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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118

천생산·천생산성, 혹은 기억의 시차 구미 천생산과 천생산성을 오르다 지난 일요일 방송고 학생들과 함께 천생산(天生山)에 올랐다. 현장 체험학습, 옛날식으로 말하면 가을 소풍이다. 글쎄, 현장 체험학습이라고 하면 더 세련되어 보이고 교육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소풍(逍風)이란 이름이 훨씬 정겹다. 방송고 ‘늦깎이’들의 ‘가을 소풍’ 오전 9시 반께 천생산 중턱에 있는 주차장에 모인 학생들은 조금 들떠 있었다. 스무 살 어름의 젊은이들이든 4, 50대의 시니어들이든 깊어가는 가을에 산을 찾았으니 얼마간 들떠도 괜찮은 일일 것이었다.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시니어 그룹들은 가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레저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다. 남자들 못지않은 산행 경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4.. 2020. 10. 23.
빗돌로 남은 두 여인, ‘열녀’인가 ‘주체적 여성’인가 나라에서 정려한 구미 열녀 약가(藥哥)와 향랑(香娘)을 찾아서 코로나19로 사실상 칩거 생활을 한 지 꽤 오래됐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자체의 ‘문화·관광’ 누리집을 길라잡이 삼아 인근 문화재를 찾기 시작했다. 누리집에서 나는 시뻐 본 구미에도 국가 지정문화재인 국보가 1점, 보물이 12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 지정문화재도 유·무형 문화재와 민속자료, 문화재자료 등 모두 69점이나 되는데, 그중 흥미로운 데부터 하나씩 들러 보기로 하면서 숨통을 틔우기로 했다. 삼강정려의 열녀 약가의 ‘주체적 수신(守信)’ 처음으로 찾은 데가 문화재자료인 선산 삼강정려(三綱旌閭)다. 삼강정려는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한 마을에서 나은 충신, 효자, 열부, 세 사람을 기린 정려각(旌閭閣)이다. 내비게이션을 .. 2020. 9. 6.
[선산 톺아보기 ②]향랑의 죽음 - ‘수절’인가 ‘저항’인가 [선산 톺아보기 ②]시내 형곡동 열녀 ‘향랑’의 노래비와 무덤 향랑의 노래 ‘산유화가’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없는 책을 빌리러 형곡동의 시립 중앙도서관에 적잖이 들렀다. 도서관 주변을 빙빙 돌다가 간신히 차를 대고, 서둘러 책을 빌려 나오기 바빠서 도서관 구내를 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거기 생육신 이맹전의 유허비와 향랑(香娘, 1683~1702)의 노래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요즘 들어서다.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깐죽대지만, 우리는 정작 우리 주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도서관 건물 뒤쪽 정원에 이맹전(1392~1480) 유허비와 향랑의 노래비가 있다. 생육신 가운데 한 분인 이맹전의 유허비는 단청을 칠한 비각 안에 모셔져 있고, 향랑의 노래비는 3단으로 된 .. 2020. 9. 5.
[선산 톺아보기 ①] ‘충효’는 무엇이며, ‘열부’는 또 무엇이뇨 [선산 톺아보기 ①] 선산읍 봉한리 삼강정려(三綱旌閭) 고향 가까운 도시 구미로 옮아와 산 지 10년이 가깝다. 올 때만 해도 주말이면 작정하고 선산·구미의 골골샅샅을 더듬어 보리라는 포부가 만만했지만, 웬걸 사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다. 초기에만 해도 얼마간 움직이긴 했는데, 정작 근처에 갈 만한 데가 없다고 여기면서 나는 슬그머니 주저앉아 버렸다. 갈 만한 데가 없다고 여긴 이유는 전에 살던 안동과 달리, 이 고을에는 가볼 만한 고가도 몇 안 된다는 걸 확인하면서다. 선산(善山)은 조선 인재의 반을 영남이 내고, 그 영남 인재의 반을 낸다는 고장이다. 안동과 달리 일찍이 개화해 버린 동네여서일까. 지역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성씨도 적지 않건만, 고색창연한 종갓집도, 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고가도 .. 2020. 9. 3.
그날, 장진홍은 죽어서도 ‘독립만세’를 불러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장진홍 의사 순국 90주기 추모제 열려 지난 30일 저녁 7시 30분에 구미시 진미동 동락공원에서는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1927)의 주역 장진홍(張鎭弘, 1895~1930) 의사의 9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장진홍 의사 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에서 연 이 추모제는 탄신 120주년 추모식 및 동상 제막식(2015)과 매년 3·1절의 약식 추념식을 빼면 순국일 전야에 치러지는 추모제는 처음이다. 그는 죽어서도 재소자 1천여 명의 ‘독립만세’를 불러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로 대구지방법원과 대구복심법원의 사형선고를 받은 뒤, 고등법원 상고가 기각되어 장진홍의 사형이 확정된 것은 1930년 7월 21일이었다. 8월 1일, 예정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면 일제는.. 2020. 7. 31.
기어코 ‘박정희 우표’ 발행할 모양입니다 시민사회단체, 독재자 미화 우려해 발행 중지 요구 기어코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올 9월에 ‘박정희 100년 기념 우표’를 발행할 모양이다. 지난해 4월, ‘박정희 100년 사업’에 골몰해 온 구미시는 우정사업본부에 이 우표의 발행을 요청했고, 우정사업본부는 5월에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의 발행을 결정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오는 30일까지 우표 디자인 도안을 마무리하고, 7월 10일 인쇄 발주를 거쳐 9월 15일 ‘박정희 100년 기념 우표’ 총 60만 장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구미YMCA, 구미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지부, 어린이도서연구회 구미지회, 전교조 구미지회, 참교육학부모회 구미지회 등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아래 시민단체)들은 14일, 연명으로 우정사업본부에 ‘박정희 기념 우표’의 .. 2020. 6. 20.
‘박정희 고향’ 구미에서 첫 민주당 시장 탄생 ‘보수의 본산’ 구미는 왜 민주당 시장을 선택했을까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참패했다. 그것은 전국적 상황이지만 유일하게 참패를 면하면서 보수의 ‘성지’임을 거듭 확인한 동네가 대구·경북이다. 대구 시장과 경북도지사에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하면서 기초단체장도 대부분 석권한 것이다. 부산·울산·경남이 뒤집히고 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이 선전한다는 뉴스가 이어지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파란’에 대한 기대가 부풀긴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사나’였다. 교육감도 보수 후보가 당선했는데, 대구는 단일화에 실패한 두 진보 후보가 당분간 시민들의 원성과 매를 감수해야 할 듯하다. 경북은 안동, 김천, 울진, 봉화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 2020. 6. 15.
이팝나무, ‘가로수’의 진화 구미시의 이팝나무 가로수 ‘가로수’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린 시절 고향의 신작로 길 양옆에 나란히 서 있던 버드나무다. 그것은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에 나오는 ‘차도 양쪽에 대빗자루를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앙상한 포플러’였다. 여름이면 이 버드나무는 무성해진 가지에 매미의 합창을 끼고 살았다. 일제 강점기 때 심은 게 분명한 버드나무 가로수는 지금은 흔적도 없다. 길은 더 넓어졌고, 단단하게 포장되었으며 선명한 교통표지판과 가로등 따위가 가로수를 대신하고 있다. 시골길에서 가로수가 사라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가로수, 연봉 6천 원으로 세운 ‘도심의 녹색 댐’ 농작물에 그늘을 지운다, 가로수 때문에 교통사고의 피해가 치명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미운털이.. 2020. 5. 13.
경북 김천 빗내농악의 한판 풍물굿 김천시 개령면 광천2리의 ‘빗내농악’ 어제는 처음으로 정월 대보름 행사에 나가보았다. 올해는 달맞이 행사와 함께 ‘2009 경북민속문화의 해’ 선포 행사가 같이 열렸다. 그래서인지 오전부터 낙동강 둔치의 탈춤마당에서 베풀어진 행사는 좀 떠들썩했다. 바람이 제법 찼다. 그래도 행사장 곳곳엔 크고 작은 사진기를 둘러멘 구경꾼들로 넘쳐났다. 행사장에 도착한 건 오후 5시께. 탈출공연장 앞쪽에서 농악대 공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행사장 스크린에 소개된 이름은 ‘빗내농악’. 빗내? 글쎄, 어느 지역의 농악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이부터 6·70대의 노인들까지 두루 섞인 농악대가 연주하는 곡은 풍성하고 흥겨웠다. 우리 음악은 구경꾼들을 구경꾼으로 머물게 하지 않는다. 체면 때문.. 2020. 3. 31.
금오산 봄 나들이 난만한 봄, 첫 봄 나들이로 찾은 금오산 구미에 옮아오고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가족은 금오산(976m)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주말마다 이런저런 일이 생겨 짬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릎이 시원찮아서 무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고, 어차피 근처를 떠날 일도 없을 터,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산책을 겸해서 채미정(菜薇亭)을 둘러보았고 가을에도 잠깐 들러 금오지 주변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먼빛으로 늘 바라보았던 산이지만 나는 아직 거기 오른 적이 없다. 아내는 케이블카라도 타 보자고 했지만, 나는 금오산을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서둘러 금오산을 향한 것은 금오산에 당도한 봄빛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교정의 홍매화를 찍.. 2020. 3. 26.
구미 평화의 소녀상 뒷이야기…시민들 사이에도 ‘경계’ 가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두고도 나뉘는 경계 구미에서도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 경북에서 다섯 번째인 줄 알았더니 지난해에 경산(대구대 교정)과 영천(시립도서관)에 소녀상이 세워져 일곱 번째가 되었다는 걸 어제서야 알았다. 대체로 이들 도시의 소녀상은 민간 주도로 세워졌다.[관련 기사 : ‘보수의 심장’ 구미에 세워진 특별한 소녀상] 누가 뭐래도 구미는 ‘보수의 고장’이다 내가 쓴 소녀상 기사에 편집부는 “‘보수의 심장’ 구미에 세워진 특별한 소녀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에 어떤 독자는 구미가 왜 ‘보수의 심장’이냐는 항의성 댓글을 달았지만 ‘심장’까지는 몰라도 구미가 ‘보수’의 고장이라는 걸 결코 부정하지 못한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경북에서 두 번째 규모의 도시인 구미에 뒤늦게 소녀상이 세워진 것도 같은 이.. 2020. 3. 3.
그 절집에서 굳이 ‘비구니’를 찾지 말라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불령산 청암사와 수도암 기행 절집을 순례하는 불자도 아닌 사람이 나라 안 절집을 모두 다 섭렵할 수는 어차피 없는 일이다. 이런저런 명찰을 돌아보았거니 하지만, 기실 우리에겐 못 가본 사찰이 한번이라도 디뎌 본 절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도 가보지 못한 절로 나는 청암사(靑巖寺)를 든다. 가보지 못한 절, 청암사 김천시 증산면에 있는 이 오래된 절집을 미처 가보지 못한 까닭은 단순하다. 김천에는 직지사만 있는 줄 알고 있다가 이 고찰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멀리 북부 지방에 옮아가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가까운 동네로 돌아왔지만 차일피일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다. 청암사를 찾은 것은 지난 10월 초순이다. 가을이 깊다고 할 수도 없고, 단풍이.. 2020.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