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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금오산 봄 나들이

by 낮달2018 202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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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만한 봄, 첫 봄 나들이로 찾은 금오산

▲ 금오산 기슭, 환경연수원에서 만난 매화.

구미에 옮아오고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가족은 금오산(976m)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주말마다 이런저런 일이 생겨 짬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릎이 시원찮아서 무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고, 어차피 근처를 떠날 일도 없을 터,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산책을 겸해서 채미정(菜薇亭)을 둘러보았고 가을에도 잠깐 들러 금오지 주변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먼빛으로 늘 바라보았던 산이지만 나는 아직 거기 오른 적이 없다. 아내는 케이블카라도 타 보자고 했지만, 나는 금오산을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서둘러 금오산을 향한 것은 금오산에 당도한 봄빛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교정의 홍매화를 찍다가 부근에 매화 군락이 어디 없느냐고 물었더니 토박이 동료가 금오산 환경연수원에 가보라고 일러주었다. 지난가을 잠깐 들렀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환경연수원에서의 ‘매화 찾기’

▲ 금오지로 이어지는 물길 옆의 산수유

주차장에 차를 대고 1Km 남짓을 걸어 경북환경연수원에 닿고 나서 나는 잠깐 헛갈렸다. 여긴 연수원이지 않은가. 어디엔가 ‘자연학습원’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오르고 아뿔싸, 헛걸음을 했다는 걸 깨달으면서 입맛이 썼다. 입구의 근무자에게 물었다.

 

“자연학습원은 어디지요?”
“여기예요. 지금은 환경연수원으로 합쳤지요.”
“봄꽃이 피어 있는 곳이 어디 없을까요?”
“없을걸요. 지금 탄소 제로 교육관 짓는 공사 중이어서요…….”
“어디 매화나무 군락이 있다던데요.”
“이리로 죽 올라가시면 몇 그루 있을 거예요. 그런데 꽃이 피었으려나…….”

우리는 오늘 나들이가 헛걸음이 되리라는 걸 단박에 눈치챘다. 그러나 이왕 나선 걸음, 한 바퀴 돌다 보면 뜻밖에 쏠쏠한

봄빛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도 섣부른 기대라는 건 이내 드러났다. 3월이지만 아직 대지는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잘 구획된 탐방로에 서린 봄빛은 여전히 실낱같았다. 개나리꽃이 몇 송이 눈을 뜨고 있었고, 연못 주위에 솜털을 뽀송뽀송하게 품은 버들개지가 ‘은빛 머리 부드러운 고승들’(문정희 시 '버들강아지')처럼 기어갈 듯 살아 있었다. 그나마 잿빛 일색의 산자락에 화사하게 핀 산수유가 봄을 환기해 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산 중턱까지 올랐지만 우리는 매화나무 군락을 찾지 못했다.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황매화 한 그루를 만났을 뿐이었다. 길을 되짚어 내려오다 종합 교육관 근처에서 활짝 핀 백매화 한 그루를 만난 거로 간신히 나들이의 체면을 세웠다.

 

금오산 올레길? ‘금오못 둘레길’!

 

금오산 어귀엔 해방을 전후하여 완성된 금오 저수지가 있다. 이 물은 금오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시에서 저수지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총 2.4㎞의 길을 내어놓았다. 이른바 ‘금오산 올레길’이다. 올레는 알다시피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뜻하는 제주도 말’이다.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제주 올레가 조성된 후 전국 지자체의 ‘따라 하기’가 이어지면서 올레는 심각한 저작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그것은 올레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이웃 지방의 폭력이다. 아무 데나 올레를 붙이면 제주도의 그것과 같은 품격을 띠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리산 둘레길’ 같은 이름은 올레에 기대지 않고도 독자적인 도보여행 길로 이름났다. 안동에는 ‘퇴계 예던 길’이 있다. ‘예다’는 ‘가다’의 예스러운 말이다. ‘퇴계가 가던 길’이라는 뜻이니 그 역사성과 지역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짝퉁’이라 하기도 ‘거시기’한 길은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공의 길이다. 이른바 ‘데크’라는 나무 구조물로 저수지 맨 가장자리를 빙 둘러가며 길을 냈다. 물속에다 교각을 박고 낸 길은 튼튼하다. 사람들은 열심히 그 길을 오간다. 시민들에게 산책길을 제공한 것으로 이 인공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눈에 들어오는데도 그 길을 한 바퀴 도는 데 반 시간이 좋이 걸렸다. 시가지 쪽의 길은 산을 피해 저수지 안쪽으로 한참 들어온 분홍빛의 부교(浮橋)다. 사람들은 대신 그 데크 길을 버리고 산자락을 타고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정작 편한 길을 만들어 놓으니 사람들은 굳이 불편한 옛 산길을 찾는 것이다.

 

제방 근처의 절벽에 정자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웬 정자인가 했더니 저수지의 수위 조절 장치를 정자형의 전망대로 만든 것이라 한다. 제방 위에 서면 산과 산 사이로 구미 시가지의 한끝이 보인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제방으로 오르고 둘레길을 거닌다.

 

굳이 이 길에 이름을 붙이자면 ‘금오 못 둘레길’이 제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금오지’ 대신 ‘금오 못’이 우리말에 더 가깝고, 뜬금없는 ‘올레’보다는 못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니 둘레 길이 맞춤하지 않은가 말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허리춤에 찬 만보계는 ‘6000’을 기록하고 있고 시간은 정오를 갓 넘겼다. 됐다, 이걸로 금오산의 설익은 봄 구경을 마치기로 했다. 아내는 피로와 함께 시장기를 호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장하기는 하다. 우리는 봄이 무르익으면 다시 금오산을 찾자고 약속하면서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2013. 3.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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