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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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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톺아보기 ㉓] 읍내에 외로이 남은 왕조의 유물, ‘선산객사’ 조선시대 객관으로 쓰인 관청 ‘선산객사(客舍)’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선산읍 행정복지센터 옆에는 조선시대 객관(客館)인 선산객사(善山客舍)가 있다. 객사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이 묵던 숙소로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다. 객사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 :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로, ‘殿’자를 새김)를 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망궐배(向望闕拜 : 달을 보면서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림)를 행하였다. 용도 모르는 건물 한 동만 남은 선산객사 선산객사는 세워진 시기는 물론, 지금의 선산초등학교 부근에서 일제 강점기에 옮겨온 것이라고만 전할 뿐 정확한 이력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을에는 객사를 두었.. 2023. 2. 14.
[순국] 하산 양기하, 만주 관전현에서 전사 1932년 2월 10일, 조선혁명당 정치 부위원장 하산 양기하 선생 순국 1932년 2월 10일, 랴오닝성 관전현(寬甸縣)에 주둔하고 있던 조선혁명당 소속 독립군은 일본 경찰대와 만주국 군대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이에 조선혁명당 정치 부위원장 하산(荷山) 양기하(梁基瑕, 1878~1932)는 격전 끝에 수십 명의 조선혁명군 병사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그는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1896~1934), 중앙집행위원장 대리 고이허(1902~1937)와 함께 남만주에서의 마지막 무장 항일투쟁의 역사를 장식한 지도자였다. 그가 순국한 뒤 양세봉은 이태 후 밀정의 사주로 중국인 자객에게 살해되었고 일본군과 교전 끝에 포로가 된 고이허는 1937년 총살되었다. 양기하는 충남 논산 사람이다. 아호는 하산(荷.. 2023. 2. 10.
2·8독립선언 주도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뒤늦은 귀향 경북 고령에서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 열어 김상덕 선생 기려 지난 8일은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밑불이 된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 100돌이었다. 이날 11시에는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100돌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일본에는 국가보훈처장과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 등이, 국내 기념식에는 국회의장과 주요 정당 대표 등이 대거 참석해 이 100돌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젊은 유학생들의 독립을 향한 투지와 의기를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의 “‘조선청년독립선언서’는 우리 독립운동의 화톳불을 밝히는 ‘불쏘시개’가 되었다”면서 거기 이름을 올린 열한 분 실행위원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경북 고.. 2023. 2. 8.
구미시 1천억 숭모관 건립, ‘그의 제사상’으로 되돌아오다 구미시, 예산 1천억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 숭모관’ 건립 논란 또 숭모관? 다시 ‘제사상’으로 돌아온 구미시 경북 구미시가 1000억 원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숭모관을 건립하겠다고 해 논란이다. 숭모관 건립 예정지가 구미시 소유 토지이니 이 가늠도 잘 되지 않는 거액의 예산 1000억 원은 건축비로만 쓰인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1200억 원을 훌쩍 넘는데도 다시 천억 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관련 기사 : ‘빚더미’ 구미시, 이번엔 1000억 들여 박정희 추모관 추진]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래 구미시는 김관용, 남유진 두 시장이 각각 3연임을 하면서 박정희 관련 시설을 차고 넘칠 만큼 세웠다. 이 박정희 기념사업을 비정상적으로 키운 인물 중엔 박정.. 2023. 2. 6.
아직 멀리 있는 ‘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오늘이 입춘이니 봄은 지척에 와 있다. 예년과 달리 올겨울이 유난히 길다고 느끼는 까닭은 추위가 꽤 오래 이어져서인 듯하다. 하마나 하고 기다리지만, 영하의 수은주 눈금은 오르는 듯하다 다시 꼴깍 주저앉아 버리곤 한다. 게다가 이른바 ‘난방비 폭탄’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더 을씨년스러워졌으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북봉산 아래의 우리 동네는 겨울의 칼바람이 유명하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필로티 구조인 아파트 1층으로 몰아치면 절로 정신이 번쩍 든다. 그건 한여름의 선선함으로 상쇄하기 어려울 만큼 매섭다. 그러나 나는 우리 동네의 겨울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난히 추운 동네여서 꽃소식도 좀 늦다. 시내에는 .. 2023. 2. 4.
[오늘] ‘바보새’ 함석헌, 온 곳으로 돌아가다 [역사공부 ‘오늘’] 1989년 2월 4일, 바보새 함석헌 영면에 들다 1989년 2월 4일, 새벽 5시 25분, 서울대학병원 12층 병실에서 2년 전, 췌장, 담낭, 십이지장의 종양 절제 수술 뒤 오랜 시간 투병해 온 ‘바보새’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이 88년의 삶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는 나흘 후, 2천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오산학교 강당에서 오산학교장으로 거행되었고 유해는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마차산 자락에 묻혔다. 함석헌은 평안북도 용천 출신이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덕일학교를 거쳐 1916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육촌형 함석은의 지도를 받아 손수 태극기를 찍어내고 독립선언서의 사본을 만들어 동포들에게 나누어 주며 시위를 독.. 2023. 2. 4.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3) ‘현명하게 늙어가기’는 과욕, ‘면(免) 노추(老醜)’ 도 쉽지 않다 “마흔이 되면 불혹(不惑)이라더니, 어떻게 나는 이런저런 유혹에 자꾸 마음이 기우는지 모르겠어.” 마흔 살을 갓 넘겼을 무렵, 내가 벗들에게 건넨 푸념이다. 미혹되지 않음은 공자 같은 성인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을 터인데도 이런저런 욕망을 내려놓기가 버거워서였다. 그러나 한가하게 그걸 한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나는 그러구러 그 시기를 넘겼다. 공자의 불혹, 나는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렸다 인간의 수명을 팔십으로 가정하면 마흔은 그 한가운데다. 2, 30대 열정의 시기를 지나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나이인데, 이 마흔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서양이 비슷하다. 링컨이 남긴 명언, “마흔 살이 되면 인간은 자.. 2023. 2. 1.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⑦] 창덕궁, ‘후원’을 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궁 산책 ③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昌德宮)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창덕궁을 찾은 건 덕수궁과 창경궁을 들르고 난 이듬해인 2019년 2월이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내겐 서울의 고궁 가운데 가장 낯선 이름이 창덕궁이다. 창덕궁의 후원(後苑)인 ‘비원(祕苑)’은 알아도 창덕궁은 몰랐다. 아마 창덕궁보다 비원이라는 이름이 독립적으로 뉴스 같은 데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원(祕苑)’으로 먼저 안 궁궐 창덕궁, 경복궁과 ‘양궐 체제’ 비원은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들렀을 것이지만, 나는 그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 무분별하게 전면 개방해 왔던 비원은 훼손이 심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원사업.. 2023. 1. 29.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⑥] 창경궁, 한때 ‘원(苑)’이었던 궁궐, 왕실 가족사도 애잔하다 고궁 산책 ②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창경궁(昌慶宮)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덕수궁을 나와 남대문시장에서 저녁을 먹고 창경궁 야간 개장 시간 7시에 맞추어 홍화문(弘化門) 앞에 닿았다. 뉴스로 고궁의 야간 개장 소식을 듣긴 했지만, 고궁을 밤에 찾게 되니 은근히 그 밤 풍경이 자못 기대됐다.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를 준비했지만, 어두워지면 감도(ISO)를 높여서 찍으려고 플래시는 가져오지 않았다. 창경궁은 조선 왕조 9대 임금 성종이 1483년 창덕궁 동쪽에 세운 궁궐이다. 창경궁은 1418년 세종이 고려의 남경 이궁(離宮:예전에, 임금이 궁중 밖으로 나들이할 때 머무는 곳을 이르던 말) 터에 .. 2023. 1. 22.
‘이육사 기자상’, 수상자 김순덕에겐 ‘영광’일지라도 ‘육사에겐 치욕’ 대구 경북 제정 ‘이육사 기자상’, 첫 수상자에 동아일보 김순덕 기자 선정에 부쳐 지난 17일,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회’는 경북 안동에서 제1회 이육사 기자상 수상자로 선정된 의 김순덕 대기자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의도했는진 모르지만, 그날은 1944년 육사의 순국일(1.16.)의 다음 날이다. 그날, 갓 마흔이 된 의열단원 이육사(1904~1944·본명 이원록) 시인은 베이징 일본대사관의 지하 감옥에서 1년 반 뒤에 올 해방을 맞지 못하고 저항과 투옥으로 점철된 생애를 마감했다. [관련 글 : [순국] 이육사, 베이징의 지하 감옥에서 지다] 육사 순국일 다음날, 김순덕 ‘이육사 기자상’ 수상 이육사 기자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1930년대 와 등에서 기자로 활동한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 2023. 1. 20.
[시골 사람 서울 나들이 ⑤] 덕수궁, 망국과 격변의 시대를 지켜보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고궁 산책 ① 교과서에서 ‘석조전’으로 미리 만났던 덕수궁(德壽宮) 서울의 고궁을 처음 가 본 건 아마 1960년대 초등학교 수학 여행에서였을 것이다. 그때도 경복궁이나 덕수궁을 들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복원 전의 창경궁에서 동물들을 구경한 게 애매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교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고궁 한곳을 들렀는데, 거기가 덕수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곤 거의 수십 년을 건너뛰어 덕수궁을 찾은 게 2018년 5월이다. 시골 사람이 서울에 가는 건 가물에 콩 나듯 한 일이고, 간다고 해도 여유롭게 고궁 나들이를 할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사진으로나 고궁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라는.. 2023. 1. 17.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일본의 사도(佐渡)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과 강제동원 문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 강행 지난해(2022) 2월,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반대에도 사도(佐渡)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강행했다. 그러나 추천서에 미흡한 부분이 있어 유네스코의 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등재는 실패했다. 유네스코는 사도광산을 구성하는 유적 중 하나인 니시미카와(西三川) 사금산에서 과거에 사금을 채취할 때 사용된 도수로(導水路 물을 끌어들이는 길) 중 끊겨 있는 부분에 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 도수로에 대한 설명을 충실히 담아 이번 다시 잠정 추천서를 제출했다. 그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한일 정부는 각각 전담 조직(TF)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첨예하게 맞서왔다. 우리 .. 2023.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