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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의 계절, ‘구세군’과 ‘자선냄비’

by 낮달2018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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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전국 353개 지역서 ‘자선냄비’ 모금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풍경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

날이 갈수록 시간 감각이 굼뜨다. 어느새 12월, 세밑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어저께 시내에 나갔다가 처음 구세군(救世軍) 자선냄비를 보았다. 날씨는 그리 차지 않았는데도 자선냄비 주변은 썰렁해 보였다.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느라 종종걸음을 했다.

 

구세군 대한본영에서는 지난 11월 29일 광화문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 353개 지역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했다. 어느 때부턴가 구세군 자선냄비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연말 시즌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 땅에서만 그 역사가 82년이다.

 

내가 구세군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시절이다. 고종사촌 동생과 함께 지내던 대명동의 자췻집에서 꽤 긴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높다란 축대 위에 외벽에 콜타르를 칠한 목조의 교회가 하나 서 있었다. 거기서 1년 남짓 살았는데 그 교회의 우중충한 뒷벽과 안에서 가끔 흘러나오던 찬송가 소리는 지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 윌리엄 부스 (1829~1912)

그게 구세군 교회였다. 구세군 누리집에서 확인한 그 교회가 ‘명덕 영문’이다. 구세군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때라 나는 구세군에서 연상되는 ‘구제품’ 따위의 이미지와 우중충한 교회 건물이 기막히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구세군 따위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 만들기’-구세군

 

구세군이 ‘세상을 구하는 군사’라는 뜻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구세군은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가 1865년 런던의 슬럼가에서 창립한 교회다.

 

‘교회와 군사’의 조합은 ‘십자군’처럼 야만의 역사를 환기해 주니 그리 긍정적인 모양새는 아니지만 ‘구세군’의 경우는 좀 다르다. 부스의 교회는 1878년 상징적 군대식 조직을 택한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라는 명칭을 채택했는데, 이 군대는 십자군과는 근본이 달랐다. [구세군 누리집 바로 가기]

 

부스가 원했던 것은 ‘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근로자들이 교회로부터 배척되던 시절에 모든 계층의 사람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교회 만들기’였다. 그리하여 부스는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교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구세군을 만들게 된 것이다.

 

부스는 영국 산업혁명으로 소외된 수천 명의 고통스러운 삶을 목도하고 ‘일시적이 아닌 지속적인 현실의 변화’를 위해 다양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구세군은 음식을 나눠주고, 쉴 곳을 제공하며, 매춘여성들을 위한 숙박 시설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실직자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노동(인력) 교환 서비스센터를 열었다.

 

자선냄비, 이 땅에서도 82년

 

부스는 사회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노동과 쾌적한 환경이 주어질 수 있는 농장거주지를 꿈꾸었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은행 건립을 원했고, 실직자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구세군의 노력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 108개 국가에서 이어지는 구세군 사회봉사 네트워크의 출발이었다.

 

우리나라에 구세군이 들어온 것은 1908년, 자선냄비로 거리모금을 시작한 게 1928년이다.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는 여든두 살이 되는 것이다. 여든이 넘으면서 이 자선냄비는 특정 종교와의 연관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자선’과 ‘기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세군의 상징은 ‘붉은 방패(RED SHIELD)’, 면류관(Crest), 구세군 기, 제복 등 여럿이 있다. 붉은 방패는 구세군의 사회봉사 사역의 상징으로 국제적으로 사용된다. 처음엔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라는 글자가 비스듬히 쓰인 장식 은으로 만든 방패 모양이었는데, 나중에 은 대신 빨간 에나멜로 바꾸었다. 우리나라에선 영문 대신 한글 ’구세군‘을 세로로 쓴다. 거리의 자선냄비 위쪽에 이 방패가 있다.

 

영문, 사관, 병사, 사령관…,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

 

면류관은 구세군의 신앙, 즉 영적인 사역에 대한 의미 있는 상징이고, 구세군 기는 세계적으로 죄악과 사회악에 대해 구세군이 싸우고 있음을 나타낸다. 깃발의 붉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파란색 테두리는 성결(聖潔)을 상징한다고 한다.

 

구세군의 제복(유니폼)은 ‘세상을 구하는 군사’인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을 확연히 드러내는 것이다. 구세군의 병사들은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표현한다. 또 확연히 구분되는 복장 때문에 구세군 병사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울 기회를 얻기도 한다.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은 교회 이름이나 교역자, 교인을 부르는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구세군의 교회는 영문(營門, Corps, ‘군대의 주둔지’라는 개념)이라 하고 교역자는 사관, 교인들은 (하나님의) ‘병사’다. 구세군 총본부 격인 ‘대한본영’의 대표자는 ‘사령관’이다.

 

안동시 중심가 차 없는 거리 입구에 구세군 안동 영문에서 자선냄비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21세기에 ‘하나님의 병사’들이 챙겨 입은 무겁고 칙칙한 제복 담긴 뜻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이틀 만에 다시 시내의 자선냄비를 찾았다.

 

31일 자정까지 자원봉사자, ‘자선의 손길’ 기다린다

 

▲ 구세군 자선냄비 카카오 채널 참여

2010년 12월,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시내의 예술전용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한 고귀한 남자의 영혼 앞에서 아이들은 숨죽여 울었고 교사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관련 글 : 반 아이들과 함께 <울지 마, 톤즈>를 보다]

 

“오다가 구세군 자선냄비 보았니? 거기 너무 썰렁하더라. 여유가 있으면 들렀다 가거라.”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가서 자선냄비에다 지폐 한 장을 넣었다. 아이들은 천 원권 지폐를 부끄러운 듯이 넣었다. 그러나 영화의 여운이 남아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상기되어 아름다웠다. 그 천 원의 의미를 아는 것도, 아무런 조건 없이 무엇인가를 남에게 준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2018년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은 127억 9700만 원이었다고 한다. 제야인 31일 자정까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구세군 자선냄비는 이 도심에서 행인들의 따뜻한 자선의 손길을 기다릴 것이다. 붉은 방패에 매달린 자선냄비는 오래된 20세기 방식이다.

▲ 스마트 자선냄비, 누구나 큐알코드로 1천원을 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는 구세군에서는 구세군은 올해 거리모금과 함께 처음으로 모바일 기부를 도입했다. 거리모금 기간 네이버페이나 제로페이 등을 통해 구세군 기부에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다. 또 현금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거리에서 기부할 수 있도록 ‘스마트 자선냄비’도 설치했다. 거리 자선냄비에 붙은 QR코드를 통하면 현금 없어도 누구나 기부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2019. 12. 14. 낮달

 


구세군 누리집 새롭게 개편했다. https://www.thesalvationarmy.or.kr/

2023년 현재 위에서 소개한 모바일 기부 같은 방식은 따로 펴지 않는 모양이다. 후원하기는 정기후원과 일시후원으로 나누어 누리집에서 받고 있다.

 

따로 누리집을 열고 있는 ‘구세군 자선냄비’(https://www.jasunnambi.or.kr/booster/seven.php)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관한 모든 것을 상세하고 알리고 있다. 여기서도 후원은 가능하다. 연도별 나눔보고서 등 투명한 운영도 알려준다.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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