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경 드라마 <짝패>
한동안 TV 드라마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언제부턴가 드라마와 친해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드라마의 여제(女帝)’라고 놀릴 만큼 드라마를 ‘끌어안고’ 사는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도 빼먹지 않고 끊임없이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다.
<욕망의 불꽃>(MBC)과 <호박꽃 순정>(SBS)을 보면서 아내는 명쾌하게 두 어절로 예의 드라마를 정리해 버렸다.
“작가가 미쳤더구먼.”
하기 좋은 말로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를 빌미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을 비켜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 나라 TV 방송판의 속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그건 아니다. ‘피의 비밀’이나 ‘삼각관계’를 버무린 ‘재벌 이야기’ 따위의 공식을 벗지 못하는 책임은 시청자가 아니라 작가가 지는 게 옳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 드라마, <짝패>와 <반짝반짝 빛나는>
내가 요즘 빼놓지 않고 보는 드라마는 두 편이다. 문화방송의 주말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과 같은 방송의 월화 드라마 <짝패>다. <반짝반짝>의 작가 배유미는 <해피 투게더>(1999, SBS)와 <로망스>(2002, MBC) 같은 드라마를 썼다는데 그걸 보지 못했으니 그이는 내게 초면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이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다 ‘반짝이는 대사’에 마음이 기울어서 주말이면 이 드라마를 기다리게 된다.(두 드라마에서도 ‘피의 비밀’은 여전한데 이 부분은 따로 이야기할 소재인 듯하다.)
<짝패>의 작가 김운경(1954~ )은 구면이다. 나는 <서울의 달>(1994, MBC)과 <옥이 이모>(1995, SBS), <파랑새는 있다>(1997, KBS) 같은 드라마로 그를 기억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한 지붕 세 가족>(1988, MBC)부터 <서울 뚝배기>(1990, KBS), <형>(1992, KBS), <도둑의 딸>(2000, MBC) 등 그의 작품 목록은 꽤 묵직하다. 최근작으로는 마산 MBC에서 제작한 특별기획 2부작 드라마 <누나의 3월>(2010)이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김운경 드라마의 대표작은 <서울의 달>이고 <옥이 이모>다. 그의 드라마는 독특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서민들의 삶을 즐겨 다루면서 거기 따뜻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인간의 훈기 따위를 아주 맛깔스럽게 드러낼 줄 아는 작가다.
작가 김운경의 인물들
그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연과 조연의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라 해도 될 만하다. 중심인물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은 단순한 들러리가 아니라 극의 중심을 확고하게 세워가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의 드라마가 선사하는 감동과 힘은 대체로 그러한 인물의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인물들은 아주 독특하다.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인간을 지선 지고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선한 인물이라도 세속적 허영기와 계산속 따위를 숨기지 않고, 악역에게도 인간적 고민이나 그 선성(善性)의 일단을 그려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살갑게 녹아 있다. 그의 드라마에서 다소 희극적이고 과장되게 그려지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인간과 그 삶에 대한 만만치 않은 긍정을 이해하고 환기하게 된다.
김운경이 창조한 인물 가운데 내게 가장 기억에 나는 인물은 <옥이 이모>에 나오는 주인공의 초등학교 은사 박 선생(정종준 분)이다. 그가 교실에 건 급훈은 ‘꽃들아, 너희 맘대로 피어라’다. 해학적인 가공의 인물이지만 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꿰고 있었던 사람으로 나는 그를 기억한다.
30년쯤 후 정년을 맞은 예의 선생님은 자신을 초청한 옛 제자들에게 고백한다. “여러분과 함께한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다.”라고. 비록 드라마에서 창조된 인물이었지만 나는 그의 존재 앞에서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짝패>의 인물들도 이러한 김운경 드라마의 인물이 가진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극중에서 귀동(이상윤 분)의 생모인 막순(윤유선 분) 주변에서 그녀를 보살펴 온 쇠돌(정인기 분)의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안타깝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단지 그녀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선하디선한 인물이다.
여인이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 조선달(정찬 분)을 찾아가 막순이 힘들어하니까 그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인물이 쇠돌이다. 막순은 이런 쇠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남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귀동의 생부로부터 수만 냥의 유산을 받게 된 그녀는 3천 냥에 여종을 사서 쇠돌의 짝을 지어 주려 한다.
이 여종이 ‘덴년’(홍소희 분)이다. 어릴 적에 불에 덴 적이 있는 비녀(婢女)다. 사내였다면 그래도 ‘아이 동(童)’자쯤은 붙여 ‘덴동’이 되었겠지만, 여자여서 ‘년’이 되었다. 그러나 쇠돌은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는다. 은근히 연하의 쇠돌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큰년(서이숙 분)이 초조해져 갖바치 황 노인(임현식 분)에게 덴년을 후실로 들이라고 부추길 뿐이다.
쇠돌에게 뜻이 없음을 확인한 막순은 덴년을 다시 팔아넘기려 하고 덴년이 막순의 주막을 떠날 날짜는 다가온다. 쇠돌이 덴년을 찾으니 그녀는 부엌 아궁이에 쇠돌의 씻은 신을 말리고 있다. 연민을 금하지 못하는 쇠돌에게 덴년은 울먹인다.
“다들 잘해 주셨어요. 삼시 세끼 다 먹여주고 많이 먹어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너무 고맙고 꿈같았어요.”
덴년을 종내 흐느끼고 안쓰러워 쇠돌은 눈길을 줄 데를 찾지 못한다. 한편 막순은 가마를 타고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스님으로부터 ‘업장 소멸을 하러 왔는데 가마꾼 어깨에 업이 쌓이면 되겠냐’는 핀잔을 듣고 잔뜩 볼이 부어서 돌아온다.
노비였던 여인, 노비 해방으로 해방되다
이날 밤,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깨어난 막순은 밖으로 나왔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부엌으로 나온다. 부엌에는 덴년이가 놋그릇을 닦고 있다. 덴년은 잠이 안 와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 왜 우냐?”
“모르겠어요.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요.”
“내일 어디로 갈지 몰라 겁이 나냐?”
“날이 안 밝았으면 좋겠어요. 죄송해요.”
“뭐가 죄송하냐. 나 같으면 도망쳤을 텐데…….”
“아니요. 제가 왜 도망을 가요. 마님께서 잘해 주셨잖아요. 머리채 한 번 안 잡고 욕도 안 하고 한 대도 안 때리셨어요.”
덴년의 대사는 조선조 후기 이 나라의 노비들이 삶의 단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황소 한 마리 값에 팔려 왔다가 다시 팔려 가야 하는 덴년에겐 같은 노비였던 막순의 집에서 지냈던 시간이 꿈같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덴년의 모습에서 상전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도망쳐 거지 움막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던 막순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른다. 들어가라는 덴년의 말에 막순은 덴년 옆에다 자리를 잡는다.
“아니다. 잠도 안 오는데 여기서 너랑 그릇이나 닦아야겠다.”
야심한 밤에 부엌에서 놋그릇을 닦고 있는 주종의 모습은 그러나 따뜻해 보인다. 현실의 번뇌를 잊고자 두 사람은 그릇을 닦는다. 어울리지 않게 타고 있는 촛불 아래 흔들리는 두 여인의 모습은 주종이 아니라 가장 낮은 데서 온몸으로 자신의 운명을 짐 져야 했던 민중의 모습으로 비치는 까닭이다.
그릇을 다 닦고 방에 들어온 막순은 2500냥에 팔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 스님의 고언을 되살리며 노비문서를 들고 나온다.
“이건 네 종 문서다. 우리 오늘 이거 태우고 맘 편하게 자자.”
“마님 나중에 후회하십니다.”
“후회 안 한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젠 너는 누구의 종도 아니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가거라.”
노비문서는 갈가리 찢어져 아궁이에서 재로 바뀐다. 그것은 한때는 노비였던 한 여인이 자기 노비를 해방함으로써 자신도 해방되는 모습이었다. 이는 ‘가난하지만, 선량하게 살아왔던 노비와 거지, 갖바치, 백정, 왈자패 등 소외된 인간들의 삶과 사랑’(기획 의도)을 보여주는 ‘민중 사극’으로서 드라마의 성격과 맞물리는 모습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뒤바뀐 운명’은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보인다. 드라마의 배경은 봉건사회의 첨예한 모순들이 민란으로 폭발하던 조선 후기 사회다. 노비의 자식은 포도청 포교로, 양반의 자식은 의적의 두령이 되는 주인공들의 뒤바뀐 운명은 그런 시대적 아이러니를 표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느 멜로 드라마에서 ‘피의 비밀’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르게 <짝패>는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이 민중 사극이 표방하는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날이 흥미를 더해가고 있는 드라마를 기다리며 나는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파국을 준비하고 있는지가 점점 궁금해지고 있는 참이다.
2011. 5.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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