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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막장’ 너머, 김운경 드라마 <유나의 거리>

by 낮달2018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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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 작가의 드라마 <유나의 거리>

▲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들. 그의 주제는 어쩌면 인간탐구에 있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잘 안 본 지 꽤 되었다. 아마 2012년 ‘골든타임’(MBC)을 끝으로 나는 한동안 TV 드라마와 멀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본방을 사수’하는 드라마 ‘참 좋은 시절’(KBS2)에 은근슬쩍 곁눈질을 시작한 게 얼마 전의 일이다.

이야기의 얼개나 전개가 다소 허술하다고 느끼면서도 거기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아역, 성인 할 것 없이 출연 배우들이 제대로 구사하는 사투리 덕분이다. 진국의 경상도 사투리가 주는 생생한 사실감과 그것이 떠올려 주는 감정의 결이 예사롭지 않았던 까닭이다.

경상도 사투리의 참맛을 알게 해 준 <참 좋은 시절>

경상도 사투리는 퉁명스러운데다 말끝이 짧아서 호남이나 충청도의 그것에 비기면 ‘여운’이라 할 만한 게 없는 편이다. 그런 경상도 사투리가 뜻밖의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당사자가 아니라, 구경꾼이 되어 멀찌감치 떨어져 듣게 되어서일는지 모르겠다. 경상도 사투리가 여느 사투리 못잖은 여운을 남기면서 각광 받게 된 것은 <TvN>에서 방영한 <응답하라, 1994>부터였을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는 별로 여지를 남기지 않는 간명하고 즉물적인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호오(好惡)의 판단이나 표현에 있어서 망설임이나 용서 따위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그 다소 매정해 뵈는 일언 일구가 뜻밖의 여운을 풍겨준다는 걸 나는 <응답하라>를 즐기면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런 경상도 사투리를 <참 좋은 시절>에선 두 아역 배우가 아주 차지게 잘도 구사하는 것이다. 영악하다가도 아이다운 천진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들의 대사를 들으면서 우리 내외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다.

아역 배우들의 사투리와 함께 우리 내외를 붙잡은 것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애틋해지는 곡진한 사랑이 어쩐지 노년의 문턱에 선 우리의 가슴을 애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 인연에도 저리 애틋한 순간이 있었을까 싶은 쓸쓸하면서도 따사로운 어떤 느낌 말이다.

이른바 안방극장의 방송극이 ‘막장 드라마’로 비난받게 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중파에서 종합편성 채널과 케이블 텔레비전까지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드라마 공화국’이라고까지 하겠는가.

‘막장’은 원래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는 뜻의 ‘광업 용어’다. 그러나 원뜻과는 달리 ‘극단적인 인물관계나 상황 설정 등, 매우 자극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드라마’를 가리키게 되면서 이 말을 즐겨 쓰던 언론사들이 관련 업계의 항의를 받는, 웃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김운경 <유나의 거리>로 돌아오다

▲ JTBC의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 포스터

임 아무개, 문 아무개 같은 작가들이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이 만들어온’ 이른바 ‘막장’ 드라마는 방송사마다 목을 매는 시청률과 상업주의의 사생아다. 이들 ‘드라마의 수준’이 곧 우리 ‘시청자의 수준’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막장 겨루기로 일관하는 드라마들이 방송사와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 이유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던가. 주말에 드라마를 기다리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의 달’(1994), ‘옥이 이모’(1995)의 김운경 작가의 드라마가 <JTBC>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운경은 ‘짝패’(2011) 이후 3년 만에 월화 드라마 <유나의 거리>로 돌아왔다.

김운경은 ‘막장의 경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 쪽에서는 드문 개성의 작가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본 그의 작품은 위에 언급한 세 편 외에 <파랑새는 있다>(1997), <황금사과>(2005) 정도다. 그러나 그 다섯 작품만으로도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웅숭깊은 눈길은 드러나고도 남는다.

그의 드라마는 독특하다. 그의 드라마는 이른바 ‘막장’에서 선호하는 성격과 상황 설정 따위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서민들의 삶을 즐겨 다루면서 거기 따뜻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인간의 훈기 따위를 아주 맛깔스럽게 드러낼 줄 아는 작가이다.

그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연과 조연의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라 해도 될 만하다. 중심인물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단순한 들러리가 아니라 극의 중심을 확고하게 세워가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의 드라마가 선사하는 감동과 힘은 대체로 그러한 인물의 디테일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인물들은 아주 독특하다.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인간을 지선 지고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선한 인물이라도 세속적 허영기와 계산속 따위를 숨기지 않고, 악역에게도 인간적 고민이나 그 선성(善性)의 일단을 그려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드라마에서는 그런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살갑게 녹아 있다. 그의 드라마에서 다소 희극적이고 과장되게 그려지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인간과 그 삶에 대한 만만치 않은 긍정을 이해하고 환기하게 된다. [관련 글 : ‘짝패, 김운경의 인물들’]

내가 알기로 그의 드라마에는 여느 드라마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재벌’이나 ‘회장님’ 같은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런 인물 덕분에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변신, 신데렐라의 탄생 따위도 나오지 않는다. 그의 작품의 주인공은 대체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들이라고 하겠는데, 개중에서도 지질하고 세속적이며, 더러는 교활하기도 한 갑남을녀들이 그들의 주변 인물이 되는 것이다.

덧붙이면 그의 인물들은 선과 악이라는 통념을 빌려서 얘기하면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이들이 많다. 그 경계는 때로 법률이거나 윤리나 관습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각기 보여주는 인간적 면모에서 자주 확인되는 것은 인간의 선성(善性)이다.

일찍이 <도둑의 딸>(2000)에서 전과 12범의 절도범을 등장시켰던 김운경은 이번에도 다수 전과자를 불러내는데 이번에는 소매치기와 조폭이다. 왕년의 조직폭력배 한만복(이문식 분)의 다세대 주택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건달 장 노인(정종준 분)과 소매치기 유나(김옥빈 분), 그리고 이들과 이러저러하게 얽힌 이웃들이 바로 그들이다.

구역 다툼으로 쫓기던 유나를 구해준 인연으로 김창만(이희준 분)이 자살한 세입자의 방에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무공해 청년의 양심 회복 프로젝트’라는 방송사의 기획 의도를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유나의 거리>는 전직 조폭 박만복(이문식 분)의 다세대 주택에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다.
▲ 노 건달 장 노인(정종준 분)은 드라마에서 '어른의 구실'을 마다하지 않는 균형추 노릇을 한다.
▲ 남녀 주인공 김옥빈과 이희준

“‘불량한 세상과 진검승부를 펼치는 순수함의 결정체’ 창만이 ‘매사에 부정적’인 소매치기 유나와 다세대 주택의 ‘양심 불량’들의 잃어버린 양심을 찾아주고 사랑하는 여인을 범죄의 늪에서 구해낸다”는 줄거리야 특별히 신선하지도 창의적이지도 않다. 어쩌면 그런 구도도 ‘막장’에서 즐겨 구하는 진부한 공식일 수 있다.

그러나 김운경의 드라마가 여느 비슷한 구도나 공식의 그것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은 ‘디테일’, 즉 인물과 상황의 세부 묘사에 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다소간 생뚱맞은 설정이라 싶은 사안도 캐릭터와 한 몸이 되어 있는 세부 설정과 진국의 맛깔 난 대사로 그 인물에 독특한 온기를 더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 역을 맡은 배우의 육화된 연기와 만나면서 생기를 더하곤 하지만.

막장 너머, 김운경 드라마에 거는 기대

<유나의 거리>에는 초반부에 왕년의 건달, 장 노인과 박만복의 캐릭터를 보여주느라 조폭들의 모습이 얼마간 나온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조폭은 늙거나 생활인으로 바뀐 모습으로 적당히 희화화되어 있다. 시청자들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아가는 장 노인과 후배들의 도전에 타협을 고민하는 박만복의 모습에 오히려 연민을 느낄 수도 있을 만큼.

후배 조폭들의 도전에 대응하는 장 노인의 해결 방식도 흔히들 보는 폭력적 방식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이는 그가 늙고 병든 건달이긴 하지만, 작품 속에서 나름의 삶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지닌 어른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는 밑천이기도 하다. 후배 조폭을 제압하고 돌아가는 길, 창만이 택시를 잡을까 묻자 장 노인은 심상하게 대꾸한다.

“됐다. 나 지하철 공짜야. 지하철 타고 가자.”

정종준은 ‘옥이 이모’에 이어 가장 합당한 배역을 가장 그답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보인다. 후배 박 사장의 잔소리에 적당히 꼬리를 내리고, 다세대 주택의 이웃들에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노릇을 마다치 않는 그의 위치는 어쩌면 합법과 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이웃들의 안전판일지도 모른다.

현실감을 위해서이긴 하지만, 소매치기들의 범행 장면이나 이들의 연습실 따위를 시시콜콜 보여주는 드라마를 따라가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명백한 범죄의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선량한 시청자들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러나 작가는 시청자의 부담에 상응하는, 아니 그걸 상쇄하고도 남는 재미와 감동을 준비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너무 앞서 가지는 말고 설렁설렁 이 드라마의 서사와 공간을 따라잡다 보면 “부와 명예, 권력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여기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인생은 얼마나 착하게 사느냐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기획 의도)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을 터이다.

 

2014. 6.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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