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이야기

<다이빙벨>,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by 낮달2018 2020. 1. 17.
728x90

[리뷰] 이상호·안해룡의 <다이빙벨>, ‘거대한 벽’과 ‘압도적 진실’ 사이

 

▲ 영화  <다이빙벨>은 진실 찾기의 먼 여정 ,  그 출발점이다.  ⓒ 시네마 달

‘다이빙벨(diving bell, 잠수종)은 바다 깊이 잠수하는 데 사용하는 단단한 챔버(chamber, 방)’다. 이 장비는 수중으로 내려갈 때 소수의 다이버들이 기지로 사용하거나 이동할 때 이용한다. (이상 <위키백과>) 다이빙벨은 잠수사들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오랜 시간 수중 작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원리의 수중 구조 장비가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골든타임 72시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다가 304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여객선 침몰사고의 실종자 구조에 다이빙벨이 가장 유용한 장비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다이빙벨’로 드러난 ‘사실’과 ‘진실’

 

▲ 사고 현장에 투입되었던 다이빙벨. 영화 <다이빙벨>의 스틸 컷

4월 25일 이후 다이빙벨은 두 차례 사고 해역에 투입됐지만, 공식적으로 ‘구조 실패’로 규정되며 사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다이빙벨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부산영화제에서 이 장비의 투입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 <다이빙벨>을 공식 상영키로 하면서 빚어진 상영금지 외압 파문 때문이었다.

 

<다이빙벨> 상영금지 외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되면서 여론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의 상영을 두고 외압 파문이 일어난 것은 세월호 참사로 우리 사회의 왜곡된 현실이 환기된 것과 마찬가지로 ‘다이빙벨’ 투입과정에서 실종자 구조와 관련한 ‘사실’과 ‘진실’이 예민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은 상영금지 외압에도 불구하고 공식 상영되면서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후 11월 3일 현재 <다이빙벨>은 개봉 11일 만에 2만 관객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 1위에 올라섰다.

 

나는 지난 주말, 대구의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 멀티플렉스의 외면 속에 시도별로 한두 개소에 불과한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상영해온 이 영화의 관객이 2만을 넘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이빙벨>은 참사 사흘 후부터 실종자 구조에 대한 취재에 들어간 인터넷 언론 <고(Go)발뉴스>(www.gobalnews.com)의 이상호 기자가 취재한 20여 일간의 영상을 바탕으로 안해룡 감독이 함께 만든 영화다.

 

실종자 구조를 위해 민간구난업체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다이빙벨을 싣고 팽목항을 찾는다. 그는 다이빙벨을 이용하면 잠수사가 직접 물에 들어가는 방식보다 더 오래, 효과적으로 실종자들을 구조할 수 있다면서 이 장비의 투입을 제안한 것이다.

 

▲ <다이빙벨> 해외 포스터  ⓒ 시네마달

이상호 기자는 이 전 과정을 취재하며 다이빙벨을 사고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노력을 영상에 담았다. <다이빙벨>은 77분가량의 짧은 이야기 속에 정부의 무능과 관료들의 보신주의 때문에 다이빙벨이 이른 시간 안에 투입되지 못하는 과정과 투입 이후 제대로 구조 활동을 펴지 못하고 철수하게 된 상황을 그린다.

 

영화, 혹은 ‘진실에 대한 갈급’

 

여러 논란에도 다이빙벨 투입을 전후하여 실종자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희망적 성과를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당시, 서둘러 장비를 철수시키면서 ‘실패’를 자인한 이종인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마치 선문답 같은 이 대표의 언급 속에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진실에 대한 갈급(渴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화 <다이빙벨>은 내가 이 대표의 기자회견 행간에서 읽은 ‘진실’에 대한 갈급을 온전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영화는 한 명의 실종자도 거두지 못했지만, 그것은 다이빙벨의 실패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전한다. 그것은 다이빙벨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 작업을 둘러싼 해경과 정부의 실패라고 말하는 게 타당하다는 걸 말이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화해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수학여행 길에 나선 남녀 고등학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의 승객과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실종자 수색이 계속되었다. 수색에는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들, 해난구조업체인 언딘 등이 참여했다.

 

이들 각 단위의 조직이 준 조건 아래서 최선을 다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사령탑이 이들 각 단위 조직의 역량을 최대치로 묶을 수 있다면 시너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사고 수습의 현장에는 이상호 기자의 증언처럼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  알파잠수기술의 이종인 대표와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 영화의 스틸 컷.

이종인 대표가 사고 해역에 들어간 것은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였다. 그는 현지의 냉대에 밀려 현장을 떠나면서 ‘개 같다’며 울먹인다. 30년도 넘게 잠수부로 해난구조를 지휘해 온 이 백전노장을 울게 한 것은 이른바 해경과 해군이 지키고 있었던 ‘현장의 현실’이었다.

 

이종인이 1990년에 설립한 알파잠수기술공사는 세계 최고의 선박 검사·감정 등록기관인 로이드 선급협회의 인증을 받은 해난구조 전문 업체다. 그리고 사고 해역에 들어간 다이빙벨은 2000년 그가 제작한 4t 규모의 구조 장비로, 최고 수심 70~100m에서 20시간 연속 작업 가능한 장비였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다. 그는 평생을 일해 온 전문가의 안목으로 대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통해 알았다. 그는 개인 사업자의 이해와 무관하게 ‘천안함’ 사고가 폭침이 아니라 좌초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난사고 전문가로서 어떠한 정치적 고려 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이었다.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이 그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진정성의 원천이다.

 

실종자 수색을 위한 이종인의 작업을 기록하고 증언한 이상호 기자 역시 이종인에 못지않은 프로다. 명품 핸드백 로비, 삼성 X파일, 구당 김남수 옹, 탤런트 장자연 씨 사건 등 수많은 폭로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 옹골찬 기자는 실종자 가족들 편에서 ‘정권의 속기사로 전락’(오펜하이머 감독)한 주류 언론의 왜곡과 맞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모두 ‘진실’을 말하지만 ‘사실’ 너머에 실재하는 ‘진실’에 접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아무리 단순한 사건이라도 그것은 결코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기 때문이고 인과적으로 단일 변수가 아닌 복합 변수들의 결과물일 것이기 때문이다.

 

▲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이 배는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고교생 250명을 포함한 304명의 승객과 함께 가라앉았다. 영화의 스틸 컷.

<다이빙벨>은 이들 두 명의 열혈 전문가들의 눈을 통해서 세월호 실종자 수색의 한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다이빙벨이 현장에서 밀려나게 되자 울먹이던 이종인과 함께 이상호도 눈물을 흘린다. 그는 무책임한 관료에겐 날이 선 질문을 던지지만, 자식을 잃은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씻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아직 ‘진실’이 모두에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종인과 이상호는 자신들이 겪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진실을 추구하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하고 이종인의 다이빙벨을 폄하하기에 급급하다.

 

몇몇 보수언론은 집요하게 이종인과 다이빙벨의 성과를 부정하고 ‘전체 맥락을 무시한 전형적인 짜깁기 보도’를 통해 당사자들을 흠집 내기에 바빴다. 그예 이종인을 인터뷰한 JTBC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이유는 불명확한 내용을 일방적 의견 위주로 방송했다는 것이었다.

 

다이빙벨에 대한 정부의 이 같은 대응은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을 고발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상호의 진술과 맥을 잇는다. 한쪽이 밝히고자 하는 것을 덮기 위해 다른 쪽의 집요한 대응이 존재하는 것은 적어도 어느 일방은 진실과 멀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방증이다.

 

▲ 영화 <다이빙벨>은 멀티플렉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개봉 11일 만에 2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거대한 벽’과 ‘압도적 진실’ 사이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사고 해역으로 간 다이빙벨이 철수한 것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때문이었다고 이종인은 술회한다. 그 거대한 벽은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외국인 감독(오펜하이머)이 언급한 ‘구조의 무능함 이상의 의도’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까.

 

분명한 것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진실은 언젠가 역사 앞에 그 참모습을 드러내리라는 것이다. “지지하는 시민들의 양심의 부력이 있는 한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는 이상호 기자의 발언이 가리키는 지점도 바로 거기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실내에 불이 들어왔어도 관객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고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말없이 차례를 기다려 극장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 것은 영화가 드러내 준 압도적 진실의 무게였을까.

 

‘다음(daum) 영화’에 오른 누리꾼들의 리뷰는 <다이빙벨>이 나아가고 있는 진실의 여정을 꿰뚫어 보고 있다. 또 그것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추인하는 용역언론으로 전락한 우리 언론의 민낯을 가감 없이 가리키고 있다.

 

“이 영상은 진실일 수도, 한편으로 치우친 거짓말일 수도 있다.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당신은?”<○앙>

“마틴 루서 킹이 보았다면 ‘세월호 사건’에서 가장 끔찍한 이야기는 정부의 무능이 아니라 언론인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과 동조였다고 말하겠죠.”<○회색>

다이빙벨이 사고 해역을 떠난 지 몇 달이 속절없이 흘렀다. 실종자 구조는 참사 200일을 넘겼지만,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참사가 있은 지 199일 만에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월호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진실을 찾는 여정은 아직도 멀고 험한 것이다.

 

 

2014. 11. 7. 낮달

 

 

 

<다이빙벨>,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리뷰] 이상호·안해룡의 <다이빙벨>, '거대한 벽'과 '압도적 진실' 사이

star.ohmynews.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