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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2023, 샛강의 연꽃

by 낮달2018 2023.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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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3년구미 지산동 샛강생태공원의 연꽃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샛강생태공원의 연꽃 단지 안에 설치된 데크 탐방로. 수면 전체가 연잎으로 뒤덮였지만, 꽃이 그만큼 흔하지는 않다.
▲ 샛강을 가로지르는 도로 남쪽의 연꽃 단지.
▲ 백련의 꽃 빛은 그야말로 완벽한 백색, 그 순수다. 연한 붉은빛이 그 흰빛을 더욱 대조적으로 드러내준다.
▲ 홍련의 붉은 빛은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하늘거리는 꽃잎의 얇디얇은 줄무늬의 질감은 일종의 정화를 경험하게 해 준다.
▲ 연녹, 진록의 연잎으로 뒤덮인 수면 위로 피어난 연꽃 봉오리.

한동안 우기가 계속되어 집 안에만 머물다가 어제(21일) 텃밭에 갔다 오는 길에 샛강을 들렀다. 날이 개어 더할 수 없을 만큼 맑고 쨍한 날씨였다. 한여름인데도 성큼 높아 보인 하늘만 보면 마치 초가을 같았다. 그동안 어둡기만 했던 하늘에 뜬 구름도 맑고 시원했다.

 

아내가 샛강에 연꽃이 좋더라고 해서 올해 첫 연꽃을 구경한 게 지난 7월 5일이다. 광범위 줌렌즈(28~300)로 150컷 넘게 찍었는데 돌아와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핀이 나갔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아서 인제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중고로 산 저가 렌즈인데 어느 날부터 초점이 흐트러진 듯했다. 병행수입품이어서 사후관리(A/S)도 안 되고, 새로 등록하는 절차를 따르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겠다 싶어서 수리는 진작에 포기한 렌즈다.

 

대신에 100 매크로 단렌즈를 끼워 나갔다. 초점거리 100으론 모자랄 듯했는데, 찍어보니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다. 연꽃은 거의 절정에 이른 듯해 파인더 안에 꽉 차는 그림이 좋았다. 오늘(22일)도 샛강을 찾았다. 이틀간 날마다 150컷 안팎의 사진을 찍었다. 찍어온 사진을 컴퓨터 사진 폴더 안에 갈무리하고 보정을 거쳐 그걸 들여다보면서 새삼 계절을 느끼고 있다.

 

2006년에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를 사서 디지털 사진에 입문했으니, 사진을 찍은 게 15년이 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진을 즐겨 찍지만, 나는 사진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고, 사진은 내가 쓰는 이런저런 잡문을 장식하는 보조수단으로만 썼을 뿐이다. 사진은 무엇보다도 그것을 찍던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뚜렷하게 복기하게 해 주는 생광스러운 물건이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그냥 좋은 풍경이나 피사체를 보고 렌즈에 그걸 담을 뿐이지만, 나는 어떻게 찍으면 더 좋은 사진이 되는지는 잘 모른다. 어떤 구도로, 어디에다 핀트를 두고 셔터를 눌러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건 노력으로서 지닐 수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일 뿐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누군들 없겠는가. 그러나 그건 욕망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나는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2)]

▲ 남쪽 강 군락 속에 피어난 백련. 꽃잎 끝이 붉은 색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순백색으로 바뀌는 것 같다.
▲ 샛강은 강가에 높이 3m가 넘는 갈대가 우거졌다. 갈대 잎 너머로 시가지의 아파트가 보인다.
▲ 샛강 북쪽의 수련 공간 근처에 사람 키보다 웃자란 부들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부들'은 수분할 때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수련이 서식하는 공간에 피어난 백련. 이 고결한 흰빛은 모든 빛깔을 수렴한다.
▲ 샛강을 가로지르는 31번 도로의 다리 지산교 근처의 홍련. 오른쪽은 갈대의 마른 줄기다.
▲ 수련이 서식하는 공간에 피어난 백련.

이틀 동안 찍은 연꽃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연꽃이 정말 아름다운 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본격적으로 연꽃 사진을 찍게 된 것도 구미로 옮겨와 샛강의 연꽃을 만나면서다. 구미에는 샛강 말고도 들성 생태공원, 그리고 금호연지 생태공원에 연꽃 단지가 조성돼 있다. [관련 글 : 샛강이 생태공원이 되었다]

 

날이 갈수록 샛강의 연꽃 단지는 커지고 화려해졌다. 면적도 더 늘었고, 전체적으로 연꽃과 수련, 그리고 부들과 갈대 같은 수생식물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 풍경이 훨씬 깊어졌다. 온 수면이 연잎으로 뒤덮였지만, 연꽃은 띄엄띄엄 핀 데도 있고, 군락을 이룬 곳도 있다. 그래도 샛강 둘레길을 걸으면서 렌즈에 연꽃을 담을 만큼은 된다.

 

연꽃을 마음에 담는 때는 사진기의 파인더에 들어온 백련과 홍련이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선명한 상으로 바뀔 때다. 연꽃은 꽃 빛이 붉든 희든 그 기품이 놀랍다. 홍련은 아주 연한 붉은 빛에서 시작하여 아주 미묘한 변화를 보이며 짙어져 간다. 언뜻 보면 그 붉은 빛이 천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 깊이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거리는 꽃잎의 세로로 진, 얇디얇은 줄무늬의 질감 앞에서 우리는 정화(淨化)되는 느낌조차 받게 되는 것이다.

▲ 무성한 부들과 함께 어우러진 백련.
▲ 갈대와 어우러진 홍련.
▲ 연잎으로 뒤덮인 수면에 피어난 백련 한 송이. 저 멀리 시가지의 아파트가 실로엣으로 보인다.
▲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다는 연꽃.
▲ 도로 아래쪽인 남쪽 강에는 연꽃 군락이 조성돼 있다. 저 멀리 31번 도로의 지산교가 보인다.
▲ 연한 노랑이 비치는 백련.
▲ 남쪽 강에서 바라본 금오산 정상 현월봉.
▲ 부평초가 떠 있는 맑지 않은 물에서 피어난 백련이 맑디맑은 흰빛의 꽃을 피우고 있다.
▲ 완벽한 흰빛의 백련. 더러운 물과 연잎들 사이에서 그 순백이 빛난다.
▲ 연꽃 군락 속의 홍련. 주변에 연꽃이 흐드러졌다.
▲ 연꽃 군락 사이에서 점점 하얗게 바뀌고 있는 백련.

백련은 그 고결한 느낌이 남다르다. 그 순결한 백색의 꽃잎, 흰빛은 모든 애증과 미추, 은원과 인과의 저편에 서 있는 모든 무욕(無慾)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련의 그 그윽한 침묵 앞에서 우리는 지극히 작아지면서 우리네 삶의 유한성을 하나씩 깨우치게 되는지 모른다. 연꽃을 바라본 성리학의 비조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연꽃은 아름답되 결코 ‘요염하지 않은’ 꽃”이라 기린 이유다.

 

“나는 연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 주돈이, ‘애련설(愛蓮說)’ 중에서

 

 

2023. 7.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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