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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by 낮달2018 201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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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③ 금호연지 생태공원

요즘은 엔간한 연못마다 연꽃을 심어두기 때문에 연꽃 구경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구미에 있는 연꽃 군락을 품고 있는 연지(蓮池) 세 군데를 돌아보았다. 시내 지산동에 있는 샛강 생태공원과 고아읍 문성리의 들성 생태공원, 그리고 해평면 금호리의 금호연지 생태공원 등 모두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사진은 클릭하면 큰 사이즈(1000×662)로 볼 수 있음.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① 지산 샛강생태공원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② 들성 생태공원

▲ 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호연지는 상주 공검지에는 비길 수 없지만, 꽤 너른 연못이다. 아래는 2013년에 찍은 사진이다.
▲ 연지 가장자리로는 부들이 우거져 있다. 부들은 꽃가루받이할 때 부들부들 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012년 7월.

금호연지(金湖蓮池) 생태공원은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 상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변에 있다.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阿道) 화상이 “이 연못에 연꽃이 피거든 나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알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선산군지>)으로 보아 금호연지는 신라 시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도화상과 ‘금호연지의 연꽃’

 

요즘은 한자어 ‘저수지(貯水池)’라 쓰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를 ‘못’이라고 했다. <다음 한국어 사전>은 ‘못’을 ‘넓고 깊게 팬 땅에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웅덩이보다 크고 늪보다 작다.’라 풀이하고 있다. ‘못’에 ‘연꽃을 심’으면 '연(蓮)못'이다. 한자어로는 ‘연당(蓮塘)’, ‘연지(蓮池)’로 쓴다.

 

아도 화상은 인근 태조산(太祖山)에 있는 ‘해동 최초 가람’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한 이다. 도리사는 수행처를 찾으러 다니던 아도가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에 지은 절집이었다. ‘해동(海東) 최초 가람’이라 했지만 여기서 ‘해동’은 신라만으로 한정해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신라는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불교가 전래된 곳이니 말이다.

이웃한 상주시에 있는 삼한 시대에 축조된 저수지인 ‘공검지(恭儉池)’[관련 글 : 상주 공검지, 그 논 습지의 연꽃]에 비길 수는 없지만, 금호연지도 작은 못은 아니다. 아도가 신라에 불교를 전하던 5세기에도 이 못에는 연꽃이 가득했던 모양이다. ‘연못’이라 낱말이 정착할 만큼 못에 연꽃을 기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연화세계…불교와 연꽃

 

▲ 용주사 범종 당좌의 연꽃. ⓒ 문화콘텐츠닷컴

금호연지에 ‘수천 년 동안 번성했다’는 연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쇠퇴하여 명맥만 유지되었다. 이곳의 연꽃이 다시 번창하게 된 것은 1977년 도리사에서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발견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도가 신라에 불법을 전할 때 모셔온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동육각사리함이 세존 사리탑 보수 공사 중에 발견된 것이다.

 

아도가 살아생전에 자신의 정신을 의탁한 연꽃이 1천5백 년 뒤에 그가 모신 석가모니 진신사리의 발견으로 다시 번창했다는 얘기는 아귀가 얼추 맞는 얘기다. 인간의 해석이 꽃과 역사를 이어준 것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불교에서는 싯다르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사방 일곱 걸음을 걸을 때 그 발밑에 솟아올랐다는 연꽃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흙탕물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고 아름답고 귀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모습은 바로 사바세계에 존재하는 부처님과 그 가르침에 비유되는 것이다. [관련 글 : 연꽃,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은]

▲연꽃은 극락세계를 나타낼 때 가장 적절한 상징물로 쓰인다. 범어사 대웅전 불단의 연꽃.
▲ 보광사 대웅보전 외벽의 연화화생도. 연꽃 위 보살 동자가 앉은 모습으로 극락정토 왕생을 묘사했다.
▲통도사 대웅전 계단의 연꽃. 축대 면석에도 연꽃을 새겨 연밭에 대웅전을 세운 형국이다.

흔히 ‘만다라화(曼茶羅花)’라고도 불리는 연꽃은 부처님의 세계, 극락세계를 나타낼 때 가장 적절한 상징물로 쓰인다. 사찰에서 불·보살이 앉은 연화좌(蓮華坐)를 비롯하여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탑과 부도, 기와의 암·수막새에 이르기까지 연꽃은 광범위하게 장식되는 것이다.

 

연꽃 문양에는 모든 망상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의 천성을 깨달아, 죽어 극락정토에 가서 연꽃 속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과 신앙심이 담겨 있으며, 청정한 부처님의 경지와 미묘한 권능에 대한 숭모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 허균,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베개, 2000) 중에서

 

한편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도 ‘애련설(愛蓮說)’을 통해 연꽃을 예찬했다. 이는 연꽃이 불교의 상징으로서뿐 아니라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도 능히 기림을 받을 만한 꽃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애련설’에서 주돈이는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다고 했고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향원익청(香遠益淸)]고 하였다. 그리하여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고 기리는 것이다.

 

지난 금요일, 오전 10시께 금호연지를 찾았을 때 이미 해는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다. 연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땀에 흠뻑 젖었고, 가끔 현기증을 느낄 만큼 햇볕은 강렬했다. 이 연못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은 피워낸 연꽃이 모두 홍련 일색이라는 것이다.

▲ 금호연지 가장자리에 아직 어린 노랑어리연꽃 군락이 눈에 띄었다. 금호연지에 백련이 핀다면 금상첨화겠다.

백련도 없고, 2000년대 초반에 피었다는 가시연꽃도 없다. 오직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연못을 뒤덮은 것은 홍련의 물결, 넘실대는 커다란 잎사귀의 바다다. 가장자리 한쪽에 언제 심은 것인지, 아직 어린 노랑어리연꽃 군락이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연꽃을 하늘과 함께 담을 수 있는 곳

▲ 못 주위에 이런 돌 조형물이 여러 개 있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일종의 탑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 한길쪽의 못가에 세운 부용정. 그러나 연지를 조망하기에는 그리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사진 찍기로는 샛강과 들성지보다 나은 곳이다. 들성지는 높다란 데크 통로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금호연지는 비교적 가까이에서 앉아서 하늘과 함께 연꽃을 담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연꽃이 홍련 일색이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수십 수백 장을 찍어도 우리 같은 얼치기 생활 사진가가 얻을 수 있는 그림은 제한되어 있다. 그나마 나은 사진 몇 장을 고르긴 하지만, 언제나 표현이 현상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연꽃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꼼짝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연꽃은 해가 뜰 무렵에 꽃잎을 열기 시작해서 정오를 지나면서부터 슬슬 꽃잎을 닫는다. 오후에 연지를 찾는 것은 헛걸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즘 같으면 비교적 선선한 아침 식전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 안개 속에 아스라하게 깨어나는 연꽃의 장관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7. 8.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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