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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올해 128년이 되었다

by 낮달2018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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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가실성당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하경조 신부는 신나무골 근처에 천주교회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던 중 낙동강 수로가 가까운 낙산리를 선택했다.ⓒ 성당 누리집

천주교 가실(佳室)성당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1리에 있다. 가끔은 스쳐 지나가는 길목인데, 잠깐 짬을 내어 차를 세우고 성당의 외관을 렌즈에 담은 것은 2013년 8월이다. 구미로 옮아온 이듬핸데, 워낙 오래된 교회로 유명했고, 2003년에 성당과 옛 사제관이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기억해서다.
 
경북에서 처음, 전국에서 11번째로 세워진 성당
 
언제 작정하고 정식으로 성당을 방문하여 성당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차일피일하다 10년이 지나버렸다. 명승지로 이름난 된 전통 사찰과 달리 교인이 아닌 사람이 성당과 교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2015년 5월 전주 가족여행 중에 들른 전동성당이 내가 난생처음 찾은 성당일 정도다. [관련 글 :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① 전주한옥마을]

▲ 성당 내부는 중앙에 제단과 신도석이 있고 좌우에 통로가 배치된 삼랑식이다.
▲ 가실성당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신 로마네스크양식 건축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다.

가실성당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고, 대구·경북으로 치면 계산성당(1886) 다음으로 오래되었다. 가실성당은 1895년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파리외방선교회의 하경조(河敬朝, Camillus Cyprien Pailhasse, 1868~1903) 신부가 다섯 칸 규모의 기와집을 조선 교구의 11번째 본당으로 교회를 열었다.
 
하경조 신부는 1894년 한국에 들어와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 근처에 천주교회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던 중 낙동강 수로를 이용해 대구, 안동, 부산 방면으로 쉽게 오갈 수 있는 선착장이 가까운 왜관읍 낙산리를 선택했다. 그는 1894년 가을, 가실에 집과 전답을 매입해 수리했고, 이듬해 9월 가실 본당을 설립했다.
 
당시 본당 관할에 칠곡, 성주, 김천, 선산, 상주, 문경, 예천, 군위, 영천 지방의 31개 공소가 있었다. 본당 신부가 각 공소에 말과 도보로 다니며 매년 적어도 2회 이상 순회 사목을 했다고 한다. 관할 공소 가운데 본당이 된 곳은 모두 4개소[김천 황금동(1901), 영천 용평(1907, 현재는 화산 공소), 상주 퇴강(1923), 왜관(1928)]다.
 
지하 1층, 지상 1층의 신 로마네스크양식 건축물, 경북 유형문화재로 지정
 
이후 신자가 늘어 본당이 비좁아지자 1923년 당시 주임 신부였던 여동선(Victor Louis Tourneux) 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새로 지었다. 설계는 1896년에서 1925년까지 명동성당과 대구 계산성당을 비롯하여 30년간 한국교회의 거의 모든 교회 건축물을 설계한 프랑스인 박도행(Victor Louis Poisnel) 신부가 맡았다.

▲ 성당의 주보성인인 안나 상과 성당을 지은 여동선 신부가 봉헌한 안나의 종. 라틴어 문구가 씌어져 있는 이 종은 지금도 사용 중이다.

성당의 주보성인(主保聖人 Titular)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 성녀다. 성녀 안나는 다윗 왕의 후손으로 마리아의 친모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외할머니다. 성녀 안나는 교회의 전승에 전해지는 인물로 정경(正經:구약과 신약, 외경)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성당에 있는 안나 상은 1924년 이전, 프랑스에서 석고로 제작된 것으로 국내에 유일한 안나 상이다.
 
가실성당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신 로마네스크양식 건축물로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다. 내부는 중앙에 제단과 신도석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통로가 배치된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양식) 구조다. 천정은 목재로 틀을 만들어 회반죽을 바른 원통형이고, 성당 뒤쪽에 있는 구 사제관 역시 성당과 함께 지어졌으며 현관홀을 중심으로 교리실, 창고, 집무실, 침실이 있고 지하에는 포도주 저장실이 있다.

▲ 가실성당의 종탑. '안나의 종'이 아직도 걸려 있다.
▲ 스쳐 지나가다 찍은 가실성당의 모습. 2013년 8월, 배롱나무가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다.
▲ 가실성당 본당 왼쪽에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바로 옛 사제관다.
▲ 본당 건물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구 사제관 건물.

가실성당은 6·25전쟁 때에는 남과 북 양측이 야전병원으로 사용하여 치열한 낙동강 전투 와중에도 피해가 없었다. 1958년부터 ‘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2005년부터 다시 ‘가실성당’으로 부르고 있다. ‘가실(佳室)’은 낙산마을을 이르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1995년 100주년 사업으로 현재 성모당이 형성되었고 2002년에는 성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높이는 색유리(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였다. 성당에는 10개의 큰 창문마다 독일 작가 에기노 바이에르트(Egino Weinert)가 색유리에 그림을 그렸다. 이 밖에도 동양화가 손숙희가 그린 ‘십자가의 길’인 ‘14처’도 있다.
 
경북은 한국 천주교 초기 박해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다한 곳이다.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1791)부터 가장 많은 신자가 순교한 마지막 박해인 병인박해(1866) 전후로, 수많은 신자의 신앙이 경북 곳곳에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1923년 당시 주임 신부였던 여동선 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성당을 새로 지었다. 설계는 프랑스인 박도행신부가 맡았다.
▲ 1895년 문을 연 가실성당은 1922년에 이 건물을 완공했다.
▲ 가실성당은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 풍경과 느낌을 달리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하얀 입상이 성 가정상이다. ⓒ 성당 누리집 갤러리
▲ 가실성당의 색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

칠곡은 대구와 가까워 한티성지(동명면 득명리)와 신나무골 등 규모가 큰 교우촌이 여럿이었다. 한티성지는 임진왜란(1592) 전후로 신자들이 하나둘 모여든 오래된 교우촌으로 신자들은 낮에는 생계를 꾸리고, 밤에는 성사를 보러 다녔다. 이곳은 국내에서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이 묻힌 곳으로 특히 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자가 순교했고, 마을은 불태워졌다.
 
신나무골(지천면 연화리)은 신유박해(1801) 이후 서울·경기·충청·전라 등 전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서 정착했다. 대구와 가까운 이곳은 선교사들의 선교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대구 대교구 첫 본당 터도 신나무골에 있었고, 가실성당의 연원도 신나무골이었다.
 
도보 순례길인 ‘한티 가는 길’의 시작점 가실성당
 
가실성당이 있는 칠곡군 왜관읍에는 1952년 성 베네딕토(St. Benedictus, 480~547)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의 연합으로 가톨릭 ‘수도승 수도회(monastic order)’ 가운데 하나인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이 세워졌다. 1953년부터 대구교구로부터 위임받은 6개 군의 사목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순심교육재단, 분도출판사와 인쇄소 설립 운영, 철공소, 목공소와 같은 작업장 운영, 현대식 농장 경영, 피정의 집 운영 등을 해왔다.
 
어쨌든 칠곡군은 천주교 성당과 수도원, 기타 유적과 성지 등을 품고 있어 성지 순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실성당이, 도보 순례길인 ‘한티 가는 길’(가실성당→한티성지 45.6Km)의 시작 지점이 된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한때 1천 명이 넘었던 성당의 신자 수가 관할 지역 축소와 도시화로 말미암아 약 500명으로 줄었다 해도 이 성당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가실성당은 어느 쪽으로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기품 있는 건축물이다. 그것은 시간이나 계절에 따라서도 풍경과 느낌을 달리한다. 가실성당 누리집 갤러리에 가면 그런 아름다운 사진이 많다. 직접 들르지 않더라도 성당 이미지로 가실성당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겠다. 

▲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의 연합 중 하나인 성베네딕도회왜관수도원은 1952년에 세워졌다. ⓒ 왜관수도원

 
2023. 5.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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