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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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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텃밭 농사] ④ 해마다 하는 수확이지만, ‘감동’은 ‘처음 그대로’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감자 캐기(2)집을 나설 때 미리, 한 고랑만 파보고, 씨알만 보겠다고 첫 감자 캐기가 이루어졌다. 뜻밖에 양은 떨어지지만, 씨알의 굵기가 예년보다 좋은 듯해(물론 이는 실제라기보다 단순한 ‘느낌’일지 모른다) 게으른 밭 임자 입이 딱 벌어졌다는 얘긴 지난번에 했었다. [관련 글 : 심고 거름 한 차례 준 게 다인데, 감자 캐기(1)]염천에 못 다한 감자 수확감자의 굵기가 괜찮아서 마저 캘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한 이랑 수확으로 작업을 접은 것은, 드문드문 내리던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기 시작해서였다. 우리는 라면 상자보다 좀 작은 상자에 한 상자 가득 담은 감자를 들고 득의양양 귀가했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 식탁에 .. 2025. 6. 25.
[오늘]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조선인민군이 소련에서 지원한 최신형 전차 T-34/85를 앞세우고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함으로써 ‘6.25전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돼 맞닥뜨린 혼란의 해방공간을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한반도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현장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고였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전쟁 앞에 허둥대기는 정부도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개전 사흘 만에 대통령과 정부 수뇌부는 시민들에게 서울 사수를 공언해 놓고도 한강 다리를 끊고 남몰래 피난길에 올랐고 140만 명의 서울 시민은 ‘인공 치하’의 수도에 남겨졌다. 해방과 함께 온 ‘분단.. 2025. 6. 25.
[오늘] 식민지사회 비판적 공론장의 구심 월간 <개벽> 창간 [역사 공부 ‘오늘’] 1920년 6월 25일, 월간종합지 창간1920년 6월 25일, 천도교단에서 민족문화 실현 운동을 위해 세운 출판사 개벽사에서 A4판, 160쪽 내외의 월간종합지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천도교(동학의 후신)의 ‘후천개벽 사상’에서 이름을 딴 이 잡지는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정간·발행 금지·벌금, 그리고 발행정지 등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의식 고취에 역점을 두어 곧 식민지사회 비판적 공론장의 구심체가 되었다. 의 창간은 천도교 청년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돈화(1884~?)를 비롯한 청년들은 잡지 창간을 위해 먼저 출판사 개벽사(開闢社)를 설립하였다.(개벽사는 외에도 , , , , , , 등의 잡지를 발행하며 1920년대 잡지계를 이끌었다) 창간호를 발간할 .. 2025. 6. 24.
[사진] 6월, 다시 익어가는 것들 2025년 6월, 익어가는 과실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일도 마음에 겹게 다가오는 것은 나이 탓이라고 해야 한다. 6월에 ‘지금 익어가는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2020년부터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함께 계절의 변화를 다룬 글인데, 2022년에도 이어서 한 편 더 썼다. [관련 글 : 6월에 익어가는 것들, 혹은 ‘화해와 평화’ / 다시 6월, 지금 익어가는 것들 ]다시 쓰는 ‘6월의 평화’그러나 2023년에는 쓴 건 좀 결이 다른 글이어서 제목도 달라졌다. 눈치챘겠지만, 이 시기는 윤석열 정부 2년 차다. 탄핵당해 내란수괴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형편이 된 윤석열의 재임.. 2025. 6. 22.
[순국]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서른한 살에 지다 의병장 안규홍, 대구감옥에서 순국1910년 6월 22일, ‘담살이(머슴, 머슴살이)’ 의병장으로 불리는 안규홍(安圭洪, 1879~1910) 선생이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그는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머슴살이 동지들을 규합하여 창의(倡義)한 이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峰) 대첩 등 의병 사상 기념비적 승리를 구가했던 보성 의진(義陣)을 이끈 의병장이었다. 향년 31세. 안규홍은 호좌(湖左) 의진의 선봉장 김백선(1849~1896), 영덕의 신돌석(1878~1908)과 함께 평민 의병장이었다. 너무 가난하여 머슴살이(담살이)로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던 그는 ‘안 담살이’, ‘안 진사’ 등의 별명으로 불리었다. 안규홍은 전남 보성 출신이다. 본관은 죽산, 자는 제원(濟元), .. 2025. 6. 22.
[2025 텃밭 농사] ④ 심고 거름 한 차례 준 게 다인데, 감자는 잘 자랐다 감자 캐기(1) 수확의 순간은 언제나 뭉클하고 행복하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5월 23일 들러 감자꽃을 따주고는 5월 31일에도 텃밭에 들렀었다. 감자는 줄기와 잎사귀가 왕성하게 자랐고, 상추씨를 뿌렸는데도 싹이 나지 않는 곳에는 아내가 쪽파를 모종으로 심었다. 그리고 6월 9일에도 잠깐 들러 쪽파와 호박에 물을 주고는 발길을 되돌렸다. 고추는 영 자라는 게 시원찮았고, 가지도 열매를 달 생각을 통 하지 않는 것 같았다.감자 캘 날 받으려는데 밭은 묵정밭이 됐다아내는 연신 감자 캘 날 받을 궁리로 바빴다. 90일은 됐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3월 13일에 씨감자를 심었다고 대답하고, 우리가 심은 감자는 품종이 ‘두백’이라고 일러주곤 했다. 두백.. 2025. 6. 21.
[오늘] 한일기본조약 조인, 국교 재개되었으나 ‘문제’는 남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 4개 협정과 25개 문서로 된 ‘대한민국과 일본 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기본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1951년 첫 한일회담이 열린 지 14년 만에, 1945년 해방된 후 독립 국가로서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과 체결한 첫 조약이었다. [관련 글 : 경술국치 - 대한제국, 일본에 강제 편입되다] 6월 22일, 일본 수상관저에서 기본조약 조인 8월 14일에는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이 조약을 비준하였고 12월 18일에는 중앙청에서 두 나라의 국교 정상화를 최종적으로 매듭짓는 기본조약 및 협정에 대한 비준서를 교환했다. 36년여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넘어 새로운 양국 관계를 재개하는.. 2025. 6. 21.
[오늘] 비운의 명장 임경업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646년 6월 20일, 임경업 장군 분사하다1646년 6월 20일(음력, 양력으로는 8월 1일) 조선 중기의 무장 임경업(林慶業, 1594~1646)이 파란 많은 삶을 억울하게 마감했다. 용맹하고 강직했으되 시대를 읽지 못한 완고함 때문이었던가, 그는 때를 잘못 만나 국제 미아가 된 비극적 운명을 비켜 가지 못한 불운한 장수였다. 국제 미아가 되었던 비운의 명장 임경업은 충청도 충주 달천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가 충민(忠愍)이다. 스물넷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난(1624) 때 정충신 장군의 선봉장으로 큰 공을 세우면서 1등 공신이 되었다. 1633년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방어사 겸 영변 부사에 등용되어 북방 .. 2025. 6. 20.
낱말 공부 : ‘전대미문’과 ‘미증유’, 그리고 ‘전무후무’ ‘전대미문(前代未聞)’과 ‘미증유(未曾有)’보다 ‘전무후무(前無後無)’가 더 세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에 한자어가 70~80%에 이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건 주로 한자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 동원하는 거짓 데이터일 뿐이다. 국립국어원의 에는 한자어가 57%에 이르지만, 거기엔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지만, 사전에는 부득이하게 실리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에 따르면 한자어는 35%에 그치고, 토박이말이 54%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일상 언 생활에서 쓰는 한자어는 2음절 낱말뿐 아니라, 3~4음절의 낱말도 적지 않다. 한자의 특성상,.. 2025. 6. 18.
‘밤의 궁궐’, 경복궁 야간 관람 [사진] 2025년 상반기 경복궁 야간관람*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지난주 금요일, 서울의 아들애가 이사를 한다고 해서 모처럼 상경했다. 아내와 딸애와 함께 서울역에 닿은 게 5시께, 역사 안에서 저녁을 먹고 마중 나온 아들과 함께 바로 경복궁으로 향했다. 웬 경복궁인가 하면, 아이들이 ‘2025년 상반기 경복궁 야간관람’을 예약한 것이다. [관련 글 : ‘일제의 만행’ 지우고 되살린 ‘조선 제일의 법궁’]2025년 상반기 경복궁 야간 관람해마다 펼치는 경복궁 야간관람은 올해엔 5월 8일부터 6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아이들은 미리 사둔 표로, 우리 내외는 무료 관람 대상자(경로)여서 신분증만 보여주고 입장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슬비가 내리고.. 2025. 6. 16.
[오늘] 현대 정주영 회장, 소 500마리 이끌고 판문점을 넘다 [역사 공부 ‘오늘’] 1998년 6월 16일, 500마리 소떼 실은 트럭 50대 북한 방문남북 민간교류 물꼬 트는 기념비적 사건 1998년 6월 16일,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트럭 50대에 500마리의 소떼를 싣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문했다. 이날 오전 그는 임진각에서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의 방북은 개인적으로는 17살 때,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현재 강원도 통천군 로상리) 친가에서 부친의 소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한 실향민의 금의환향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그것은 이후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한 마.. 2025. 6. 16.
[오늘] 가장 ‘젊은 정신’ - 시인 김수영 떠나다 1968년 6월 16일, 시인 김수영 교통사고로 떠나다1968년 오늘(6.16.),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이 48년의 짧았던 삶을 마감했다. 전날 밤 소설가 이병주, 시인 신동문과 함께 술을 마신 뒤 귀가하다 버스에 치였던 시인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신동엽(1930~1969)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 김수영은 그렇게 덧없이 세상을 떠났다.김수영은 1921년 서울 출신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가족들과 함께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하였다. 김수영은 해방이 되자 귀국하여 연희대에 편입했다가 중퇴하였다.모더니스트에서 참여 시인으로김수.. 2025.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