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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오늘] ‘아래아 한글’, 시장에 나오다

by 낮달2018 202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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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오늘’] 1989년 4월 24일, 아래 아 한글 첫 상용버전 출시

▲ 2023년 현재 한컴 오피스의 최신 버전은 2022다.

1989년 오늘(424) 토종 문서편집기(워드 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이하 한글’)의 첫 상용버전 1.0이 시장에 나왔다. 개발자 이찬진이 1988년 서울대 컴퓨터연구회에서 만난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과 함께 베타 버전인 0.9판을 발표한 지 한 달 뒤였다.

 

5.25인치 2D(360KB) 플로피 디스크 3장 용량으로 만들어진 한글’ 1.0판은 세운상가의 소규모 유통업체를 통해 정가 47천 원으로 출시되었다.

 

현재 쓰이는 한글에 비기면 거의 석기시대에 가까운 기능밖에 없었고, 컴퓨터 보급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일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문서편집기 시장에 획기적인 대사건이었다.

 

286 AT한글’ 1.5로 컴퓨터와 문서편집기에 입문하다

 

한글은 이후 판올림을 거듭하면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토종 문서편집기(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평정했다. ‘한글2,350개의 한글만 쓸 수 있는 완성형 코드로 된 문서편집기와는 달리 외국어는 물론, 옛 한글과 11,172자의 한글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던 조합형 코드를 채택한 문서편집기였다.

 

한글은 국가 표준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두벌식(1987) 자판뿐 아니라 공병우 박사가 만든 세벌식 자판도 지원하는 등 거의 완벽한 한글 입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한글은 다양한 글꼴을 갖추고 윤곽선 글꼴을 지원함으로써 탁상출판(DTP)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1989년에 한글이 출시되었을 때 나는 그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도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기 전이어서 컴퓨터를 구경도 못 했던 내게 그것은 아주 먼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동타자기를 거쳐 일본제 전자타자기를 쓰고 있었지만, 컴퓨터로 문서편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해 여름, 학교를 떠나야 했던 내가 컴퓨터(286 AT) 이용자가 된 것은 1992년이 되어서였다. 해직된 동료 교사가 운영하던 참컴이라는 상호의 조립 컴퓨터를 나는 어렵사리 구매했는데 그때 내가 처음 만났던 한글1.5버전이었다.

 

기계에 대한 흥미가 얼마간은 있어서 나는 도스(DOS)에 쉽사리 입문하였고 이내 한글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언제든지 퇴고할 수 있고 여러 가지 글꼴을 이용해서 문서를 만들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열어주는 신세계에 나는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 한글 로고

당시 교원 단체에서 교육 선전을 담당하면서 나는 거의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상 각종 유인물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때 이용한 한글‘2.0’이었다. 일반용과 전문가용이라는 구분을 달고 출시되었던 이 버전은 전자출판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판이었다.

 

‘2.0’은 무엇보다 글자 크기에 제한이 있었던 이전 판과 비교하면 1포인트부터 127포인트까지의 글꼴 크기가 자유로웠다. 윤곽선 글꼴을 지원함으로써 미려한 인쇄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나 같은 무명의 운동권 편집자들을 만족시켰을 것이다. 표를 작성하고 다단 편집이 가능했던 것도 이 판에서부터 가능해졌다.

 

19945년 만에 복직했더니 학교에 컴퓨터가 들어와 있긴 했으나 행정 전산망에서는 하나 워드라는 금성에서 만든 도스용 문서 편집기를 쓰고 있었다. 그건 한글에 비기면 문서편집기에 명함을 내밀기조차 어려운 한심한 수준이었다.

 

문서편집기 한글의 진화

 

1994년에 ‘2.5’가 나왔고 이후 한글의 진화는 눈부셨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993년 한글 윈도 3.1로 내놓음에 따라 한글도 멀티미디어 피시(PC)라는 개념에 부응하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한글의 윈도 버전은 ‘3.0’(1995)부터였다.

 

한글’ ‘프로 96’은 버전 명으로 출시연도를 사용한 첫 버전이다. 이후 흔히 전문가들이 가장 우수한 버전으로 꼽는 ‘97’이 나왔다. 글쎄, 워낙 오래 한글로 문서편집을 하면서 엔간한 한글의 기능은 모두 쓸 수 있게 되었어도 나는 특별히 성에 차지 않았던 버전은 따로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한글의 모든 기능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구제금융 시기에 불법복제로 인한 매출 감소 등으로 한글과컴퓨터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한글개발 포기와 소스 코드 제공을 조건으로 한컴에 250억 원의 투자를 제안하였다. 한글을 고사시키고 한국 시장을 엠에스(MS) 워드로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한글 지키기 운동본부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면서 계약이 파기되고 한컴은 극적으로 회생하였다. 이때 한글97 8·15 특별판을 장당 1만 원에 내놓아 200만 장을 판매하였다.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도 성공했지만, 이는 1만 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이 불러온 성공이었다고 봐야 한다.

▲ 한글의 진화는 개인용 컴퓨터의 진화와 맥을 같이 해 왔다.

내가 한글정품 사용자가 된 것은 이때부터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처음으로 자라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저도 몰래 나는 한글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애정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서편집기 시장을 엠에스 워드에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한글의 공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2000년에 출시된 한글’ ‘워디안도 나는 돈을 주고 샀다. 그리고 패키징 상품인 ‘2010’(2010)에 이어 오피스 2014 VP’(2014)도 구매했다. ‘2010’은 디브이디(DVD)로 받았지만 ‘2014’는 온라인에서 라이선스 정보를 전달받는 소프트웨어인 ESD(Electronic Software Delivery) 제품이다.

 

2016년에 엠에스 오피스 문서와 완벽한 호환이 이루어지고 번역 기능과 3D 인쇄 기능까지 갖추었다는 한글’ ‘네오가 출시되었지만, 시장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18년에는 한컴오피스 2018’이 출시되면서 다시 한글의 명성을 잇고 있다.

 

나는 201712월에 한컴오피스 2018 가정 및 학생용 다운로드 형’(59,400)을 샀다. 그리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한글 2018맞춤법 기능은 강력하다. 국어를 가르쳤던 내가 이 문서편집기를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관련 글 : 뒤늦게 한글에서 맞춤법을 배운다]

 

48%까지 치고 들어온 ‘MS워드’, ‘한글은 시장을 지켜 낼까

 

▲ 내 서가의 정품 한글 2010 DVD

1990년대만 해도 한글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이르렀지만 엠에스 워드는 야금야금 우리 시장을 먹어 들어와 지금은 한글52%, ‘엠에스 워드48%라고 한다.

 

그나마 한글이 근소한 우위에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을까. 아니면 아직도 자국산 문서편집기를 지키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거듭 확인하거니와 한글이 한글 11,172자를 표현할 수 있고 옛 한글까지 무리 없이 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조합형 코드를 선택하였기 때문이었다.

 

유니코드(Unicode) 제정 시 완성형 현대 한글 11,172자를 배당을 요구하여 유니코드에서도 이러한 표기가 가능하게 된 것은 한글의 존재에 힘입은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 글 : 조합형 코드, 한글 이야기(2)]

 

그러나 앞으로의 상황은 그리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한글의 존속이 단순히 익숙한 프로그램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용자의 관행에만 의지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다.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면서 한글이 사용자들의 사랑과 자국산 문서편집기의 지위를 잃지 않고 발전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 4.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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