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오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판도라’가 열리다

by 낮달2018 2024. 4. 26.
728x90

[역사 공부 오늘’] 1986426, 체르노빌 원전에서 방사선 유출

▲ 체르노빌 원전 4 호기 앞에 세워진 사고 희생자 추모비 . 추모비는 사고 20 주기에 건립되었다 .

1986년 오늘(4월 26일) 오전 1시 23분(모스크바 기준 시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북쪽 104km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세계 최대의 재앙, 체르노빌 참사(Chernobyl disaster)가 일어났다.

 

사고는 전원 공급이 상실된 상황에서의 부하 검사, 즉 비상 발전 전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터빈의 관성력으로 얼마만큼 발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다가 일어났다. 부하 검사를 위해 안전 시스템을 해제한 상태인 데다가 원자로 자체의 설계 결함과 조작자의 제어봉 조작 실수로 인하여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체르노빌, 최악의 방사선 유출 사고

 

출력이 급격히 증가하여 반응에 따라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원자로 내부의 냉각수를 거의 모두 기화시켰다. 증기의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반응로가 폭발한 것이 1시 23분이었다. 이 1차 폭발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노심(爐心)을 파괴하여 반응로를 대기에 직접 노출했다. 이후 반응로는 한 차례 더 폭발을 일으켰으며, 이 2차 폭발은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을 파괴했다.

 

이 두 차례의 폭발로 인해 원자로 내부의 연료 중 일부가 파편화되어 주변 지역으로 즉시 누출되었다. 감속재로 노심에 있던 흑연도 일부 방출되었기 때문에, 폭발한 4호기의 반응로와 남아 있던 4호기의 천장, 그리고 옆에 있는 3호기 건물의 30개소 이상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화재가 진압되기까지는 무려 10일이나 걸렸다.

▲ 체르노빌은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 북쪽의 원전 도시로 1986년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

 

사고가 일어나면서 4호기에서 근무하고 있던 순환 펌프 기사 발레리 호뎀추크는 즉사하였으며, 자동제어시스템 기술자인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전신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후송되어 사고 당일 사망하였다.

 

이밖에도 발전소 직원 중 물리학자 이반 오를로프를 포함한 3명이 폭발로 인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사망하였다. 또한, 피폭되었던 이 실험의 총책임자인 아나톨리 다틀로프 역시 사건 발생 9년 후인 1995년에 죽었다.

 

폭발·방사선 피폭으로 희생자는 1만5천여 명

 

화재 진압과 초기 대응 과정에서 발전소 직원과 소방대원 등을 포함하여 약 1100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는데, 이들 중 237명이 급성 방사선 피폭 증상을 보였다. 이 가운데 134명이 급성 방사선 피폭으로 확진되었고 이들 중 28명이 사고 후 수개월 이내에 사망하였다. 이후 발생한 사망자를 포함하여,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두 56명이 초기 대응 과정의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하였다.

 

정부 공식 통계로 이 사고의 사망자는 4,365명이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1만5천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유엔은 이 사고로 말미암아 최소 900만 명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발전소 인근 1,800개 마음에서 50만 명 이상이 소개되었고 토양도 크게 오염되었다.

 

그러나 사고의 간접 피해는 훨씬 크고 광범위했다. 1986년에서 1987년 사이에 방사선 누출을 막고 누출된 방사능 처리 작업에 투입된 22만6천 명의 작업자들은 모두 방사능에 계속해서 피폭되었고 사망과 방사선 피폭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들 중 2만5천 명이 사망하였다.

▲ 체르노빌 발전소 현장에서 작업반이 오염을 제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피폭자도 적지 않았다.

사고 대응 과정에 납을 살포한 것으로 인한 영향도 컸고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도 심각했다. 사고 당시 발생한 낙진은 유럽 전체에 걸쳐 19만㎢를 오염시켰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세 나라의 오염 규모는 15만㎢에 이르렀다.

 

간접 피해도 크고 광범위

 

그중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22%가량이, 우크라이나는 삼림의 40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방사능 낙진은 주변 3국뿐만 아니라 서유럽은 물론, 스칸디나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의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오염 지역에 있었던 일부 아이들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아이들의 갑상선 암 발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는 아이와 젊은 청년층에서 발생한 700건 가까운 갑상선 암을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밝힌 것이었다.

 

체르노빌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 중, 세슘과 아이오딘 등의 일부 방사성 원소는 대기권으로 방출되어 사고가 일어난 후 며칠 동안 북반구 전역을 떠돌았다. 이들은 대기권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켰음이 작물과 토양을 통해서 드러나기도 했다.

 

소련 정부는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 발생일 이후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 전례 없는 방사능이 검출되자 스웨덴 정부는 소련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소련은 이틀 뒤인 4월 28일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하였다.

 

소련이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사고 규모와 사망자 수에 대한 소문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퍼졌다. 그러나 소련이 스웨덴 정부 등에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관 파견과 방사능 오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지원 등을 요청하게 되면서 사고의 규모가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결국 5월 6일에 이르러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 체르노빌과 가까운 벨라루스 내의 접근제한구역의 입구.

5월 9일, 노심의 흑연 화재가 진압된 뒤 방사선의 누출을 막으려는 조치로 냉각 장치를 내장한 콘크리트판을 4호기의 지하에 설치하는 작업이 15일간 진행되었다. 이 판이 설치된 뒤에는 노심에 남아 있는 핵연료와 방사성 물질에 의한 방사선 누출을 막기 위하여, ‘석관(sarcophagus)’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제 봉인 시설 건설과, 사고 지점 근처의 댐과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남아 있는 원자로 시설과 발전소 진입로, 그리고 그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1987년까지 계속되었고 운전을 중단했던 나머지 원자로 3기가 운전을 재개하였다. 원자로 1호기는 1986년 10월에, 원자로 2호기는 11월에, 사고가 일어난 4호기와 인접해 있던 3호기도 1987년에 운전을 재개했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사고 지점 주변 30km 지역과 그 주변에서의 누출 방사능 제거 작업은 1992년까지 진행되었다. 이 작업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된 식물이 자라 다시 오염물질을 배출하면서 오염 제거의 성과는 한계를 드러냈다.

▲ 사고가 난 4 호기 건물을 완전히 봉인하려고 건설 중인 신석관 .
▲ 원전 노동자를 위해 건설된 도시 프리피야트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

오염 정화 작업의 결과 엄청난 양의 방사성 폐기물도 골칫거리였다. 이들 폐기물은 주변에 매립되고 폐기에 쓰인 헬리콥터 등의 장비들은 사용 후 프리피야트 인근에 폐기되어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

 

참사 이후 프리피야트는 유령 도시화

 

우크라이나 북부의 도시 프리피야트는 원전 노동자들을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한때 신식 문물과 서비스 때문에 ‘꿈의 도시’로 불리었다. 그러나 체르노빌 참사 이후 인구 4만의 이 도시는 숲과 동물들에게 점령당한 유령의 도시가 되었다.

 

최악의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계속했던 체르노빌의 나머지 3개의 원자로는 1991년과 1996년에 각각 2호기와 1호기를 퇴역시켰고 2000년에는 마지막 3호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발전소 시설은 2065년까지 4호기 폐로 등 원자로를 불능화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체르노빌의 길은 멀기만 하다. 석관(sarcophagus)으로 원자로를 봉안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응급 처치일 뿐이다. 연간 4천㎘ 가까운 빗물이 석관 안에 흘러 들어가고 있어, 원자로 내부를 지나 방사능을 주변 토양에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관 안의 습기가 석관의 콘크리트나 철근을 계속 부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또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 있던 연료의 대략 95% 정도가 아직도 석관 안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는 적어도 4톤의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사고는 2011년 후쿠시마에서 재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 규모는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 체계의 최고 단계인 7단계(Major Accident)였다. 체르노빌 참사가 인류에게 핵발전의 위험성을 널리 환기했지만 이후에도 원전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25년 후인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과 지진으로 인해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발생한 방사선 누출 사고는 그 결정판이었다. 6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누출되고 있다.

 

또 빗물과 원자로 밑을 흐르는 지하수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은 끊임없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인근 지대뿐 아니라 일본 동북부 전체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나라를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 전체의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기준으로 4곳의 원자력 발전소와 25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원전은 한국 내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에 해당하며 한국수력원자력은 세계 2위의 원전발전회사다.

▲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는 체르노빌의 재앙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걸 확인해 주었다.

원전 의존도 세계 2위, 밀집도 세계 1위 한국은 안전한가

 

지난해부터 경주 등 동해안 지역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진은 인근의 원전이 유사시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지난해 개봉된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2016)는 우리 마음속 불안이 기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주었다.

 

유럽의 나라들이 탈원전 정책을 추구하는 까닭도 더는 원전이 대안이 아니라 인류의 절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통찰의 결과다.

 

독일은 17개의 원전을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고 스위스는 원자로 5기를 향후 20년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원전 의존도 세계 2위,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이 에너지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판도라(Pandor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상징한다. 31년 전 체르노빌의 참사로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성찰하지 못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해방을 결코 꿈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7. 4. 25. 낮달

 


지금 체르노빌에는

 

체르노빌은 현재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체르노빌을 점령했다. 우크라이나는 유엔 핵 감시단에 지난달 10일 체르노빌 원전과 직접적인 연락이 끊겼다고 알렸다. 이후 러시아군은 체르노빌을 5주간 억류했다 3월 31일 철수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인근 통제구역인 ‘붉은 숲’에서 참호를 파는 등 무리한 군사작전을 강행하다 철수한 러시아 병사들이 심각한 수준의 방사선 피폭을 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심지어는 피폭된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3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체르노빌은 죽음의 도시인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러시아군이 점령했다 철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와 통신이 재개됐다고 밝혔다. IAEA 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절단은 이달 말 체르노빌 원전을 방문해 원자력 안전 및 방사능 평가를 수행하고 장비를 전달하는 등 IAEA의 자체 원격 감시 시스템을 수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1일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으로부터 체르노빌 원전의 통제권을 넘겨받았다고 전했다. IAEA는 원전 일대 방사능 수치가 매우 정상적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원전 상황

 

원전 의존도 세계 2위,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이 에너지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문재인 정부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2083년까지 점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및 화력 발전으로 대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2022년 대선에서 친원전을 표방하고 탈원전 백지화를 공언한 윤석열이 승리함으로써, 한국의 탈원전은 백지화되었다. 윤석열 당선자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조화된 탄소중립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구의 날인 22일 노르마 토레스 그린피스 국제 사무총장은 윤석열 당선자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그가 공약한 탄소중립 정책을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서한에서 원자력발전에 대해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인) 1.5도 목표 달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충분히 안전하고, 빠르고, 경제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 다시 검토해보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전 세계에서 영토 대비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원전 건설이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방향일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 “특히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핵폐기물 문제를 고려하면 당선인의 원전 중심 탈탄소화 계획이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상이 2022년 이후 한국이 맞닥뜨려야 할 원전 관련 상황이다.

 

                                                                                                           2022. 4. 25.


독일, 세계에서 유일하게 ‘탈원전’의 길 선택 

▲ 독일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원전 3 곳 중 하나인 네카베스트하임 2 발전소도 현지 시간 15일 자정을 기해 가동을 중단했다 .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이 62년 만에 원전과 완전히 결별했다. 1961년 이래, 한때 연구용까지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 원전을 보유해, 전체 전력의 최대 1/3 가량을 원자력에 의존해온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 속에 탈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말까지 탈원전을 결의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지난 16일까지 원전 세 곳의 가동을 연장하였다. 그러나 사고 발생 시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인간과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고, 핵 원료 처리 부담도 크기 때문에 안전성과 환경 문제를 고려해 탈원전을 선택한 독일은 태양열과 풍력 발전에 힘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 회원국 중에서도 여전히 원전에 의지하는 국가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은 원전으로 회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독일에 앞서 탈원전을 계획했던 스웨덴은 신규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이고, 벨기에는 최신 원전의 가동 기한을 2035년까지 연장했다. 프랑스는 2035년까지 원전 6기를 새로 짓는 등 원전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때 탈원전에 공감했던 나라들이 에너지 위기 앞에서 각각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선택이 어느 쪽이 옳았는지 확인하는 건 시간일 뿐이다. 2035년이래야 앞으로 고작 12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TV 기사 참조]

 

2023. 4. 25.

 

 

* 참고

· <위키백과>

· [화보] 체르노빌 참사 30, 현장을 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