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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어린이날 노래의 노랫말

by 낮달2018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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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요의 아버지’ 윤석중 선생이 쓴 ‘어린이날 노래’ 가사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노래를 오랜만에 듣는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지 않은 것은 역시 기념일 노래여서일 것이다. 이 노래를 처음 배우게 된 게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던 듯하다. 거의 60년 전의 일인데도 나는 노랫말이 참 멋지다고 느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노랫말로 기억되는 ‘어린이날 노래’, 정인보의 4대 국경일 노래

 

지금에서야 그 노래가 ‘7·5조의 변형’임을 단박에 알아보지만, 당시에 초등학생이 정형률 같은 운율이나 시적 리듬 따위를 알았을 리는 없다. 당연히 그 외형률이 마음에 느껴져서 그렇게 평가하였을 터이다. 비슷한 시기에 ‘원수’, ‘짓밟아’, ‘맨주먹 붉은 피’ 등으로 이어지는 ‘6·25의 노래’를 배우면서 좀 으스스했던 느낌을 받았던 것과는 상반되는 감정이었다.

 

국경일이나 각종 기념일 노래의 노랫말(가사)은 일종의 목적시 같은 거여서 따로 그 문학적 가치를 논하지 않는다. 각급 학교의 교가, 지방자치단체의 노래 등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기념일 노래 가운데 어떤 노래의 가사는 독특한 감흥을 준다.

 

나는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을 선생이 쓴 삼일절 노래를 비롯하여,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 노래의 노랫말로 처음 만났다. 위당의 노랫말은 여타의 기념일 노래 가사와는 좀 다르다. 그가 한 말의 대학자 이건방의 제자로 10대 시절부터 문명을 날렸던 한학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쓴 아름답고 전아한 의고체(擬古體)의 한글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 듯하다. 그가 쓴 노랫말에는 우리 고유어의 단정한 아름다움이 넘친다. [관련 글 : 아름다운 우리 말글 맵시’, 위당 정인보를 생각한다]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3·1절 노래)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제헌절 노래)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광복절 노래)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목(檀木) 잎에 삼천리 곱다”(개천절 노래)

 

어린이날 노래는 동요 작가 윤석중(1911~2003)이 1946년에 노랫말을 써서 발표한 노래였다. 작곡자는 동요 ‘그리운 강남’, 가곡 ‘작별’·‘마의태자’ 등을 작곡한 안기영(1900~1980)이었는데, 그는 같은 해 월북해 버렸다. 이에 1948년 윤극영(1903~1988)이 새로 작곡해 오늘의 노래를 만들었다. 윤극영은 1920년대부터 동요창작을 개척하던 작곡가로 이 노래는 그가 만주로부터 광복된 고국에 돌아와 만든 첫 번째 동요 작품이다.

 

윤석중이 쓴 800여 편 동요를 부르며 우리는 자랐다

 

윤석중은 1924년 동요 「봄」이 <신소년》에 입선되었는데 이때 그는 13살이었다. 이듬해(1925년)에는 《동아일보》에 동화극 ‘올빼미의 눈’이 뽑히고, 같은 해 <어린이>에 동요 ‘오뚝이’로 입선했다. 그다음 해 1926년에는 ‘조선물산장려가’가 당선하면서 그는 일약 ‘천재 소년 예술가’로 불리었다.

 

소년등과(?)만이 아니다. 그가 심재영·설정식 등과 소년 문예 단체 꽃밭사를 결성하고 동인지 <꽃밭>을 발간한 것은 보통학교에 다니던 1923년이었다. 1924년에는 소용수·이원수·이성홍·신고송·서덕출·최순애·이정구·윤복진·최경화 등과 글벗사를 만들어 동인지 <굴렁쇠>를 발간하며 소년 문예 운동을 일으켰다.

 

1931년, 그해 별세한 방정환 주간의 뒤를 이어 개벽사의 어린이 잡지인 <어린이>의 주간이 된 이래, 1934년 <소년 주간>, 1945년 <주간 소학생> 주간으로 활약하며 한국 아동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는 1956년 조풍연·피천득·어효선·홍웅선 등과 ‘새싹회’를 창립하여 어린이 문화운동에 앞장섰다. 1957년에는 방정환을 기리는 ‘소파상’을 제정하고, 1961년 ‘장한 어머니상’을 제정했으며, 1964년 마해송을 기리는 해송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윤석중은 1961년 3·1 문화상 예술 부문 본상과 1966년 문화훈장 국민장을, 1978년에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3년 12월 향년 92세에 지병으로 눈을 감았고,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린 어린이날 노래. 1964년판 음악 교과서&nbsp; (자료=미래엔교과서박물관)

(윤석중은) 작품의 소재를 어린이들의 일상과 자연에서 찾았다. 그의 동요 세계는 4·4조나 7·5조의 형태에 반복과 대구를 사용하던 초기의 정형 동요에서 시적 동요로 나아갔고, 낙천주의적 정서를 기반으로 어린이들의 밝고 긍정적인 장면을 포착하여 형상화한 특징을 보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에서

 

어린이날 노래가 열 살 무렵의 내게도 좋은 노래라는 느낌을 준 이유는 아마 7·5조 변형의 외형률이 주는 안정감 덕분이 아니었는가 싶다. 동시에 푸른 하늘을 나는 ‘새’와 푸른 들판을 달리는 ‘냇물’로 비유되는 ‘어린이들의 세상’이라는 비유도 컸을 것이다. 아니, ‘새’와 ‘냇물’은 오월을 만끽하는 아이들 자신이 아니었던가.

 

푸른 하늘을 나는 ‘새’와 푸른 들판을 달리는 ‘냇물’이 아이들이다

 

어린이날 노래는 4분의 2박자, 바장조의 행진곡조인데 어린이의 밝고 맑은 기상이 넘치는 발랄한 동요다. 이 노래는 해방 이후 교육과정이 도입된 1954년부터 국정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이후 한 번도 교과서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교과서에서의 위상도 낮아졌다.

 

이 노래는 현행 교육과정이 적용된 2018년부터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서 제외되고 교사용 지도서에만 실려 있다. 64년 만에 교과서에서 빠진 것은 이 노래가 워낙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미 초등학교 현장에서도 어린이날 전후 운동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에 익숙하다고 보고 교과서에 실어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빛나는 졸업장’의 ‘졸업식 노래’도 윤석중이 썼다

 

그는 1,300편이 넘는 동시를 썼고 그중 800여 편이 동요로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에 즐겨 부른 노래의 상당 부분이 그가 쓴 가사다. ‘새 신’, ‘똑같아요’, ‘달 따러 가자’, ‘우산’, ‘기찻길 옆’, ‘맴맴’이 그의 작품이고 이 밖에도 ‘고향 땅’, ‘도리도리 짝짝꿍’, ‘리자로 끝나는 말은’, ‘새 나라의 어린이’, ‘퐁당퐁당’ 등도 그가 썼다.

 

기념일 노래로는 ‘어린이날 노래’ 말고도 ‘스승의 날’(‘스승의 은혜’와는 다른 노래), 그리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도 그의 작품이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나는 어린이날 노래의 노랫말을 가만가만 뇌어 본다.

 

 

2024. 4. 2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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