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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⑥ 곡우(穀雨), 봄비는 촉촉이 내리고

by 낮달2018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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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마지막(6번째) 절기 곡우(穀雨)

▲ 우리 동네 어느 집 마당에 사과나무가 담백하고 우아한 꽃을 피웠다.

곡우, 봄비가 자주 내리고 곡식이 풍성해진다

 

4월 20일(2024년은 19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다. ‘곡식 곡(穀)’에 ‘비 우(雨)’자를 쓰는데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비는 예나 지금이나 농사의 풍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특히 곡우 무렵은 논에 볍씨를 뿌려 못자리하는 때이므로 비가 필수적이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나 마른다.”는 속담처럼 곡우 때 비가 오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곡우 무렵이면 못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므로 “곡우에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는 속담이 생겼다. 곡우 무렵에 산란하는 조기는 알을 낳을 때 우는 습성이 있다. “곡우를 넘어야 조기가 운다.”는 속담의 배경이다.

 

곡우 무렵에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가 북상해서 충남의 격렬비열도까지 올라오므로 서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이때 잡힌 조기를 ‘곡우사리’라고 한다. 이 조기는 아직 살은 적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조기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고 한다.

▲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내다 북상해 서해에서 잡힌 조기를 '곡우사리'라 한다. 전남 영광의 곡우사리 굴비축제.

본격적 농사철의 시작

 

이때, 파종을 준비하는 작업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인지라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이 단계에서부터 부정을 타지 않는 게 중요해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던 듯하다. 곡우에 볍씨를 담그는데 볍씨를 담아두었던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둔다.

 

이때 초상집에 가거나 부정(不淨)한 일을 당한 사람은 집 앞에 불을 놓아 그 위를 건너게 하여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이고, 집 안에 들어와서도 볍씨를 보지 않게 했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거나 만지게 되면 싹이 잘 트지 않아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곡우와 관련해 전해지는 속신(俗信) 가운데 재미있는 게 많다. 경북 지역에서는 이날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대문에 들어가기 전에 불을 놓아 잡귀를 몰아낸 다음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날은 부부의 동침을 꺼리는데, 이는 토신(土神)이 질투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곡우에 무명을 갈거나 물을 맞기도 하는데, 이날 물을 맞으면 여름철에 더위를 모르며 신경통이 낫는다고 한다.

 

곡우의 속신(俗信)과 풍습들

 

경북 구미에서는 곡우 날 목화씨를 뿌리며, 파종하는 종자의 명이 질겨지라고 찰밥을 해서 먹고 새를 쫓는다고 동네 아이들이 몰려다니기도 했다고 하는데, 글쎄 이런 풍속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절기는 형식으로 남았지만, 그 절기를 맞고 보내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어느덧 옛말이 되고 만 것이다.

 

곡우 무렵은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시기로 곡우물을 먹으러 가는 풍습이 있다. 곡우물은 다래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어 거기서 나오는 물[수액(樹液)]을 내어 먹는데 위장병이나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자작나무 줄기에서 나오는 부옇고 달콤한 물인 ‘거자수’는 오줌을 잘 나오게 하며, 뼈마디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한다.

▲ 곡우에는 못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세시풍속사전
▲ 5월 중순께 모내기를 앞둔 모자리. 모가 모내기를 해도 될 만큼 웃자랐다.

4월 중순, 곡우 때는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울 때이기 쉽다. 이 무렵은 원래 황사가 많아서 ‘누런 모래 먼지가 만 길까지 뻗쳐 있다’는 ‘황사만장(黃砂萬丈)’의 계절이다. 요즘은 황사뿐 아니라, 일기 보도의 감초가 될 만큼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며칠 전부터 낮에는 20도를 넘는 따뜻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엔 벚꽃은 진작에 지고 복사꽃도 시들기 시작했는데 어제 군위와 의성 쪽으로 나가니 아직 벚꽃이 남아 있고, 복사꽃이 한창이었다. 사과꽃도 담백하면서도 우아한 하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동네에 라일락도 활짝 피어 그 향기를 나누고 있다. 프랑스어로는 리라,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로 불리며 향기가 짙다.
▲ 의성에 사는 벗의 과수원에 배꽃이 활짝 피었다.
▲ 우리 동네의 공터에 심은 보리가 한창 자랐다.

 

서재 창 너머 연둣빛이 짙어진 북봉산을 건너다보며 이수복의 시 ‘봄비’를 읽는다. 1954년에 발표된 이 오래된 시는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청정한 울림으로 이 4월의 하늘에 신선한 봄비를 뿌린다. 그 서러운 풀빛, 향연과 같은 아지랑이를 떠올리면서 4월의 주말, 곡우를 맞는다.

 

 

2019. 4.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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