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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24

2014년 4월(2) 아이들아, 너희가 바로 새잎이었다 ‘강철 새잎’을 들으며 메이데이(May Day)다. 어제는 역 광장에서 두 번째 촛불이 켜졌다. 오후 내내 개어 있더니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 종종걸음을 쳤고 참가자들은 역사로 오르는 중앙계단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고 광장 앞 역사를 향해 세운 천막 분향소가 조문객들을 받고 있었다. 빗속에서도 드문드문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 젊은 연인들과 아이를 안고 온 부부들, 늙수그레한 중장년의 시민들까지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어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죄인’의 마음이 되는 게 세월호 사고의 특징인지 모른다. 삼백여 ‘목숨의 무게’가 고작 이것인가 중앙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수효는.. 2019. 4. 15.
2014년 4월(1) 잔인한 봄―노란 리본의 공감과 분노 세월호 희생을 기리는 노란 리본, 그 공감과 분노 어제 역전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역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다. 오후 여섯 시, 퇴근 무렵이어서 역사를 등진 채 거리를 바라보며 앉은 참가자들 주변은 역사를 오가는 행인으로 붐볐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추모의 성격에 걸맞게 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주최 쪽에서 참가자는 물론이고 행인 가운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행인들은 가끔 걸음을 멈추고 행사에 귀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곤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재벌 3세에게서 ‘미개하다’고 비난받았지만 국민들은, 이 끔찍한 재난 앞에서 ‘내남’을 구분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인 것이다. 교사 한 분이 나와 소회를 밝히면.. 2019. 4. 15.
밀양, 2006년 8월(2) 초임 학교에서 가르친 ‘첫 제자’, 큰아기들을 만나다 친구들과 작별하고 교동 사무소 앞 쉼터에서 만난 다섯 아이(부인이라고 말하는 게 더 합당하겠지만, 여전히 그녀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사제’라는 관계망을 벗어나지 못한다)와 나는 성급한 안부를 나누는 거로 말문을 텄다. 영주에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한 아이와 밀양에 살고 있는 친구를 빼면 나머지 셋은 꼭 1년이 모자라는 20년 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이들이 졸업의 노래를 합창하고 여학교를 떠난 게 1987년 2월이고, 지금은 2006년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던, 넘치는 열정 때문에 좌충우돌하던 청년 교사는 ‘쉰 세대’가 되어, 이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불혹을 바라보는 성숙한 부인이 된 옛 여고생들과 다시 만.. 2019. 3. 11.
밀양, 2006년 8월(1) 밀양에서 함께한 ‘3장(張) 1박(朴)’의 여름 밀양을 다녀왔다. 내게 밀양은 몇 해 전만 해도 ‘표충사’와 ‘영남루’ 따위의 관광지와 함께 기억되는 남녘의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다. 그곳은 입대를 앞둔 청춘의 어느 날, 아내와 함께한 짧은 여행지였다. 밀양역 앞에서 만난 단발머리 여고생은 둘째 음절을 유달리 강조하는 억센 경남 사투리로 시내버스 격인 마이크로버스의 운임을 알려 주었었다. 낯선 도시를 방문한 젊은 연인들은 상대가 민망해하지 않을 만큼의 크기로 유쾌하게 웃었고, 두고두고 그 인상적인 억양을 입에 올리며 추억을 곰씹곤 했다. 그러나 어느 해부터 밀양은 내게, 하고 많은 숱한 도시가 아니라, 각별한 고장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햇수로 치면 18년, 내 젊음의 한때, 서툰 욕망과 열정으.. 2019. 3. 11.
토플 만점 여중생 반대편엔 ‘루저’가 우글 ‘특수 사례’를 ‘보편적 사례’로 포장하는 언론 보도 “‘유학 無 사교육 無’ 여중 1년생 토플 만점” 일요일 오전 인터넷에 접속하자 포털 대문에 걸린 기사 제목이다. 늘 이런 게 뉴스가 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씁쓸한 기분을 어쩌지 못한다. 여중 1학년생이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주관한 지난달 24일 iBT(internet-Based Toefl) 토플시험에서 120점 만점을 받았다는 기사다. 나는 토플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런 시험이 있다는 정도만 알 뿐, 그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시험에 응시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평균 78점(세계 평균 79점)이라는 한국인의 토플성적을 고려하면 어린 학생이 이룬 성과가 얼마나 ‘대단하고 장한 일’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토플 .. 2019. 2. 26.
운명, 혹은 패배에 대하여 운명, 혹은 패배, 그리고 분노 ‘땀’이 성공의 열쇠다? “천재는 1%의 영감,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발언은 숱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질주하고 있는 이들과 그들이 지켜 온 신념을 끊임없이 고무해 왔다. 그리고 한 사회나 시대를 규정짓고 있는 제도나 그 모순과는 무관하게 자기 목표를 이룬 소수의 ‘입지전적 인물’들에 의해 그것이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입증되어 온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에디슨의 발언은,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그 함의(含意)로 이해하는 게 옳다는 지적은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 자주, 세상은 성공과 승리의 이면에 존재하는 땀의 역할만을 과장해 바라보며, 모든 실패의 원인을 ‘나태와 태만’으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패배를 예비하고 있는 사회적·제도적 .. 2019. 2. 23.
2006 겨울과 봄 사이, 금강산 ‘피의 기억’을 되살리는 ‘해원(解寃)의 제의(祭儀)’ 한 차례 폭설이 지나갔다. 주변의 동료들이 겨레 하나 되기 운동본부의 금강산 산행에 묻어 다녀온 금강산도 설봉(雪峰)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2월에 만난 개골(皆骨)의 추억 그들이 찍어 온 눈 덮인 설봉산에서 눈을 천천히 걷어내 보면서 날씨만큼이나 굳어 있는 남북 교류를 상기하고, 나는 지난해 2월 말에 만난 개골을 우울하게 추억했다. 그러나 미몽에 취한 듯 만난 개골산(皆骨山)의 황량한 골짜기와 금강산 호텔, 고성항 횟집에서 만난 볼 붉은 처녀들의 모습은 기억 한편에서 여전히 새록새록 살아 있다.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관광성 연수와는 통 인연이 없었던지라, 연수 연락을 받고도 나는 “그런가, 금강산엘 간다고?” 하고 심드렁하기만 했다. 금강산.. 2019. 1. 21.
사진첩, 함께한 시간과 가족의 발견 오래된 사진첩에 만나는 가족과 세월 어느 날이었던가. 귀가하니 아내가 딸애와 함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 권의 사진첩 중 가족사진만 따로 모은, 좀 두꺼운 놈들이었다. 거의 모두 손수 찍은 사진인데도 새삼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은 그걸 찍을 때의 느낌을 되새기는, ‘감정의 복기(復碁)’ 같은 거라고 생각해 왔다. 10년이나 20년쯤의 시간이라면 그걸 되돌릴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사진이란 놈은 마치 주마등처럼 혹은 파노라마처럼 우리가 고단하게 밟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펼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볼.. 2019. 1. 14.
‘착한 커피’ 혹은 더바디샵 ‘윤리적 소비’의 기쁨에 대하여 “소비자는 영악하다”는 진술은 다분히 공격적이다. 공급자 편향이 드러나는 이 진술의 소비자 버전은 당연히 “소비자는 합리적이다”일 것이다. 합리적 소비란 물론 ‘최저 비용으로 최고의 재화·봉사를 사는 일’을 이른다. 경우에 따라 거대 할인점의 무차별한 저가 공세를 부나비처럼 쫓아가는 소비자를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이기’와 ‘이해’ 앞에서 갈기를 세우는 인간들의 저 원초적 본능을 어찌하랴. 그러나 소비자가 늘 영악하지는 않다. 그들은 재화의 가치를 거기 투여된 노동으로 환산해 이해한다. 반값으로 물건을 사게 된 행운을 기뻐하면서도 그들은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된, 거기 투여된 노동을 안타까워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합리적일 뿐 아니라 ‘윤.. 2019. 1. 4.
문학 교사의 책 읽기 10년 넘게 써 온 글이 천 편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이나 '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긴 하다. 글을 쓴 때와 내용 분류와 관계없이 무난히 읽히는 글을 한 편씩 다시 싣는다. 때로 그것은 허망한 시간과 저열한 인식의 수준을 거칠게 드러내지만, 삶의 편린들 속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내 성찰의 기록이다. 나날이 닳아지고 있는 마음의 결 가운데 행여 거기서 예민하게 눈뜨고 있는 옛 자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누구에게나 그렇듯 성장기의 어느 순간인가에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던 왕성한 책읽기의 벅찬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진부한 일상을 일거에 허물면서 무엇이든 가능.. 2018. 12. 31.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10년 넘게 써 온 글이 천 편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몇 편이나 '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시 부끄러움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있긴 하다. 글을 쓴 때와 내용 분류와 관계없이 무난히 읽히는 글을 한 편씩 다시 싣는다. 때로 그것은 허망한 시간과 저열한 인식의 수준을 거칠게 드러내지만, 삶의 편린들 속에서도 오롯이 빛나는 내 성찰의 기록이다. 나날이 닳아지고 있는 마음의 결 가운데 행여 거기서 예민하게 눈뜨고 있는 옛 자아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 써 놓고 보니 꼼짝없는 신파다. ‘인간은 서서 걷는다’는 진술과 다를 바 없는 맹꽁이 같은 수작이다. 물리적인 시간의 변화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뚱이와 그 기관의 노.. 2018. 12. 31.
목수 아버지의 추억 공구에 대한 집착 … ‘목수 아버지’의 피 요즘 나는 펜치나 드라이버, 망치와 톱 같은 공구들에 묘한 집착을 느낄 때가 많다. 얼마 전 사무실에 굴러다니던 녹슬어 뻑뻑해진 소형 펜치를 후배의 충고대로 식용유를 이용해 정성들여 녹을 닦아내 제대로 쓸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연모, 그리고 인간 보이지 않는 부위 깊숙이 녹이 슬어 거의 사용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몇 방울의 식용유를 먹고 붉은 녹물을 조금씩 토해내더니 곧 새것일 때의 기능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가끔씩 무료해지는 시간마다 연필꽂이에 꽂아둔 그 놈을 꺼내 만지작거리면서 연모를 처음 만들어 쓰던 때의 선사시대의 인간을 생각하곤 한다. 그보다는 더 오래 전 일로, 집에서 쓰던 망치의 자루가 부러져 .. 2018.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