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의 위양(位良)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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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의 저수지 위양못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 서핑 중 우연히 들른 어떤 블로그에서였다. 밀양은 그간 여러 차례 들른, 그리 멀지 않은 데라 별로 재지 않고도 언제든 길을 나설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팝나무꽃과 정자, 호수에 드리운 고목의 그림자 등에 은근히 끌렸다.
아름다운 저수지 밀양 ‘위양지’를 찾다
이팝나무는 내가 사는 이 도시의 중심 가로수다. 4월 하순에 들면서 성미 급한 놈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한 이팝나무를 눈여겨보다가 나는 월요일에 밀양시청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가능하면 꽃의 개화 시기에 맞춰 위양지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밀양시 담당자는 조심스레 이제 한두 그루쯤 꽃이 피기 시작한 듯하다고 알려주었다.
주중에 동네의 가로수에 꽃이 피는 걸 지켜보다가 나는 주말쯤이면 위양지의 이팝나무꽃은 절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금요일(26일)에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선 건 전적으로 주말 인파를 피해고자 함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에 닿은 것은 정오를 지날 무렵이었다.
이맘때의 위양지는 이미 이름나 있었으니, 위양지로 들어가는 진입로 길섶에는 승용차가 줄을 잇고 있었다. 다행히 주차장 빈 자리에 차를 댈 수 있었다. 벌써 적지 않은 나들이객들이 저수지 둘레길을 돌면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느라 부산했다.
위양못은 신라시대에 만든 저수지로 아래쪽 들판에 물을 대고, 제방에는 각종 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꿨다. 매년 봄, 위양지 가운데 섬에 있는 고목에 핀 이팝나무꽃이 완재정(宛在亭)과 어우러지고 거울같이 맑은 수면에 비치는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된다고 한다.
‘위양(位良)’은 양민(良民), 곧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라는데, ‘爲良(위양)’으로 써야 할 듯한데, 자료마다 ‘位良(위양)’다. 혹시나 해서 자전을 찾아보았지만, ‘位(위)’에 ‘위한다’는 뜻은 보이지 않는다. 위양지는 못 가운데 다섯 개 섬이 있고 둘레도 1km를 넘었으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훼손된 이후 1634년에 밀양 부사 이유달이 다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못 가운데 있는 완재정은 안동 권씨 위양 종중의 입향조(入鄕祖)인 학산 권삼변(1577~1645)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학산은 섬에 정자를 세우고 싶어 ‘완재(宛在)’( 완연하게 있다는 뜻)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250년 뒤인 1900년에 후손들이 완재정을 세워 비로소 그 뜻을 이루었다.
못 가운데 섬에 세운 정자 ‘완재정’
처음엔 배로 드나들었으나, 후대에 홍예(아치형)다리를 놓았다. 완재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과 대청을 두었다. 정자의 오른쪽 협문으로 드나드는데, 정자 앞에도 협문을 두어 호수를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완재정은 2017년에 경남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주차장 왼쪽으로 둘레길을 돌았다. 못은 생각보다 작았고, 날아온 송홧가루 등이 섞여 있는 물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수를 빙 돌아가며 심어진 고목들이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수면 쪽으로 휘어서 벋은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세월의 연륜이 역력히 묻어나는 해묵은 나무들의 그림자가 수면 위에서 그윽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못가에 심어진 나무들은 왕버들·소나무·서어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이 중심이었고, 거기에 때죽나무·상수리나무·고용나무·모과나무·배롱나무·스트로브잣나무 등이 가끔 섞여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것이지만, 이팝나무는 가운데 섬의 완재정 주변에 심겨 있었다.
꽃은 없어도 잎사귀들이 연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나무들의 잎사귀들의 빛은 눈록(嫩綠)에서 연록, 연두, 진록까지 경계를 그을 수 없는 스펙트럼으로 호수의 물빛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말없는 찬탄을 자아냈다. 나무들의 연록 빛 나뭇잎 사이로 수면에 희미하게 뜬 산 그림자, 물가에 빽빽이 심긴 꽃창포의 짙은 풀빛이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더욱 심화하고 있었다.
둘레길을 한 바퀴 돌자, 섬으로 들어가는 석재로 만든 홍예다리가 나타났다. 그제야 어디서도 이팝나무꽃을 보지 못했다고 깨달았는데, 이팝나무는 완재정 주변에 집중해 심겨 있었다. 그런데, 정자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으면서 몇몇 가지에 꽃이 핀 것을 확인했을 뿐, 기대한 절정으로 가는 이팝나무꽃은 보이지 않았다.
이팝나무는 꽃이 필 때 이밥(쌀밥)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밥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뒤에 이팝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어원으로는 꽃이 여름 길목인 입하(立夏)에 핀다고 ‘입하목’으로 불리다가 ‘이파나무’·‘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팝나무는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는데, 완재정 주변의 이팝나무는 밀양 8경으로 선정되어 있다. 위양지 이팝나무숲은 2016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받았다. 이팝나무꽃 덕분에 위양지는 전국 사진가들의 단체 출사지 1위를 기록했고, SBS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어쨌든 위양지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가을 단풍 시기 베스트 전국 커플 여행지’로 가장 아름다운 저수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호수 쪽으로 휘영청 굽은 줄기에 매달린 이팝나무 나뭇잎들이 수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을 냈다. 완재정 주변의 이팝나무는 모두 고목이었다. 그게 상기도 꽃이 제대로 피지 않은 까닭이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나무들이 오히려 빨리 꽃을 피우는데, 고목은 천천히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건 단풍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풍경으로도 배가 부르다
결국 활짝 핀 이팝나무꽃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풍경만으로도 나는 배가 불렀다. 시간이 있다면 한 바퀴 더 둘레길을 돈다면 만나지 못한 풍경을 다시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시간은 새로 1시를 넘기고 있어, 우리는 입구의 노점상에게서 군밤 한 봉지를 사서 위양지를 떠났다.
5월 초순께 위양지를 찾으면 제대로 활짝 핀 이팝나무꽃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만 더 가까운 동네라면 한 번 더 위양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기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련은 미련대로 남겨도 좋지 않은가.
2024. 4.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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