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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언제 피었나, ‘꽃 피는 때’ 맞추기는 참 어렵다

by 낮달2018 2024.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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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원동 ‘매화 축제’ 시작 ‘하루 전’ 나들이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3월 6일에 우리 동네에서 찍은 매화. 핀 꽃보다 꽃망울이 중심이지만, 이미 매화는 제철을 만나고 있다.

망설이던 봄나들이를 매화 구경으로 튼 것은 경남 양산시 원동면에서 열리는 ‘매화 축제’ 관련 기사를 읽고서였다. 축제는 9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데, 2개 주의 주말(9·10일, 16·17일)에는 특별열차까지 편성 운영한다는 거였다. 축제를 찾아 사람에 치이고 싶지 않아서 주말을 피해 가볼까 했지만 아뿔싸, 거기까지 가는 기차는 새벽에 1대, 그리고 오후에 두어 대가 있을 뿐이었다.

 

봄나들이로 경남 양산 원동의 매화를 찾다

 

고민 끝에 일단 토요일인 16일 9시 기차로 갔다가 3시 기차로 오는 표를 미리 샀다. 그런데, 원동 매화를 미리 보고 온 유튜버들이 올린 영상을 보니, 이미 매화는 다 피었다는 게 아닌가. 난생처음 매화를 보러 가는 나들인데 때를 놓쳐 허탕을 하고 싶진 않았다.

 

영상에서도 매화가 서둘러 피어 있었지만, 요 며칠간 동네에 핀 매화도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꽃망울이 한창이었고, 꽃이 핀 가지는 몇 안 되었지만, 여기가 이 정도면, 위도가 한참 아래인 경남 양산이라면 물이 오르고도 남겠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나는 축제 시작 하루 전인 8일에 다녀오는 대안을 선택했다. 평일이라 특별 편성 열차가 없으니, 9시에 출발해서 3시께 돌아오기 위해서 나는 좀 복잡하지만, 케이티엑스(KTX)와 무궁화를 갈아타기로 했다. 김천구미역에 서 9시 28분 차로 부산에 가서 거기서 기차로 30분 거리 원동행 무궁화를 타는 형식이었다. 역순으로 무궁화와 케이티엑스를 갈아타고 5시 30분께 김천구미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케이티엑스를 타는 바람에 평일 경로 요금 30% 할인에도 불구하고 교통비만 주말 계획에 비겨 2배가 넘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축제 하루 전이라고, 밥 먹을 데가 없지는 않을 터, 나는 인터넷에서 거기 여럿 있다는 ‘청정 미나리 삼겹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부산에서 동대구까지 가는 무궁화호를 갈아타고 원동으로 가는데, 기찻길 연변 곳곳에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으므로 나는 내 판단이 적절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원동역에 내려 사방을 둘러보면서 아내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승강기로 철로를 건너는 육교에 올라 다시 승강기로 역사로 내려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리의 원동역. 왼쪽 산자락 위에 난 도로를 따라가면 순매원에 이른다.
▲ 순매원 위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철길. 오른쪽은 낙동강. 철길 왼쪽으로 순매원의 매화가 피어 있는데, 기대한 바만큼은 아니었다.
▲ 순매원의 매화나무 군락. 나들이객들이 매화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이 풍경은 좀더 밝고 화사해야 했는데 유감이었다.
▲ 철길과 매화밭 전망대에서 바라본 순매원의 매화 밭. 홍매, 백매, 청매 등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 축제 시작 하루 전인데, 판단하기에는 순매원의 매화는 일부 졌고,일부는 좀 덜 핀 듯했다.

역사를 나와 순매원(원동 순매실농원)으로 가는 산 위 도로를 따라가면서도 우리는 마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순매원의 매화는 물론, 멀리 산기슭에 빽빽이 들어찬 매화는 아직 그리 밝은 빛깔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제대로 핀 매화 군락은 멀리서 보면 하얗거나 분홍빛으로 빛나야 한다. 그런데 분명 매화가 우거진 산등성이가 거뭇거뭇하게 보이는 것은 매화가 제대로 피지 않은 것으로 여긴 것이다.

 

때가 이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 아쉽기만 한 매화

 

산 위 도로로 100미터쯤 걸어가자, 경부선 기찻길 옆으로 강폭이 만만찮은 낙동강과 강변을 따라 휘돌아 가는 철도가 보였고, 철로 이쪽 등성이가 순매원이었다. 강과 기찻길, 그리고 순매원을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꾀어드는 곳, 매화 숲사이로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역시 온전히 매화가 피지 않은 탓일까. 사진으로 만나던 풍경과는 뭔가 부족한 장면이었다. 대구경 렌즈를 거치한 삼각대를 세우고 있는 사진가들 사이를 지나 우리는 순매원으로 내려갔다. 순매원은 올해는 개방하지 않지만, 13일까지 전망대 아래쪽 일부만 개방 중이었다.

▲ 순매원에 핀 홑동백. 붉은 꽃잎과 노란 꽃술이 어우러졌다.
▲ 순매원에서 매화를 즐기는 나들이객들. 순매원은 올해 일부만 개방하고 있다.
▲ 꽃잎이 떨어진 가지는 빨간 꽃받침만 남은 듯하다.
▲ 순매원의 백매가 푸른 숲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 순매원의 백매. 일부는 피어나고 일부는 꽃망울로 달려 있다.
▲ 순매원의 매화나무는 고목도 많았다. 고목의 새 가지에 피어난 백매가 우아하다.

홍매와 백매, 청매가 어우러진 순매원 안 사잇길에는 저마다 사진을 찍으려는 나들이객으로 넘쳤다. 순매원에는 이미 꽃이 진 다음에 보이는 붉은 꽃받침이 눈에 자주 띄었다. 영상이라곤 하지만, 부는 바람이 아직도 찼고, 매화 그늘에는 떨어진 꽃잎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기대했던 데 미치지 못하는 매화꽃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 늦었거나, 조금 이른 탓이라고 여기면서 더는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도로 위로 올라와 잠깐 기다리는데 사진가들은 20분 이상 기다렸지만, 기차가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순매원의 청매. 왼쪽 아래에는 백매가 꽃이 지면서 붉은 색이 강하다.
▲ 전국의 사진가들을 불러모으는 원동역의 강과 기차, 그리고 매화가 어우러진 풍경. 이 사진은 양산시에서 제공하는 사진이다.
▲ 자리를 떠나는데기차가 지나가서 황급히 따라가 찍은 사진이다. 기차는 지금 부산쪽으로 사라지기 직전이다.
▲ 원동역 위 도로의 벚나무 가로수의 꽃눈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아래는 원동역, 그 너머는 낙동강이다.
▲ 매화마을의 돌담집. 드물게 마치 제주도의 현무암을 닮은 돌로 담을 두른 집이었다.
▲ 매화마을 뒷산. 산기슭에 매화나무가 빽빽이 심어져 있는데, 아직 시기가 이른 듯, 꽃빛이 어두웠다.
▲ 원동역 부근의 어느 집 마당에 핀 백매. 원리에는 곳곳에서 매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도 미련을 두지 않고 서둘러 마을 쪽으로 돌아서는데, 눈 아래 하행선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후다닥 뛰어갔지만,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기차의 꽁무니만을 두 컷,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자신을 달래고, 매화마을으로 내려가 한 가설 식당에서 ‘미나리 삼겹살’로 점심을 먹었다.

 

미나리 삼겹살로 점심을 먹고

 

삼겹살뿐 아니라 미나리와 된장찌개, 그리고 공깃밥도 비쌌지만, 축제 현장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우리는 시장하기도 했지만, 싱싱한 미나리와 함께 먹는 삼겹살 맛이 좋아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마을을 거슬러 오르며 미나리 한 단과 꽈배기를 샀고,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초등학교 쪽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3시 16분 발 부산행 무궁화호는 기다리는 승객이 무척 많았다. 축제 하루 전도 이럴진대 내일부터 원동 일원은 인파로 메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아내에게 축제 기간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얘기했고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에 역원들이 심었다는 홑동백 한 그루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경상북도 내륙에 있는 동백은 거의 대부분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겹동백이다. 그러나 나는 동백꽃의 본령은 바닷가에 피는 재래종 동백, 5~7장의 꽃송이 통째로 떨어지는 홑동백이라고 생각한다.

▲ 원동역 플랫폼에서 만난 동백꽃. 홑동백인데, 두 그루인지, 빨간 동백과 하얀 동백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원동역 플랫폼에서 만난 빨간 동백과 하얀 동백

 

플랫폼의 동백꽃은 화려한 노란 꽃술을 단 붉은 꽃이었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하얀 꽃 두어 송이가 달려 있었다. 한 그루에서 두 종류의 꽃이 필 리는 없으니, 아마 동백은 두 그루였던 듯하다. 하얀 동백꽃을 만난 건 아쉬운 매화 구경을 대신한 것으로 여기기로 하고 우리는 부산행 기차에 올랐다.

 

 

2024. 3.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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