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이지만, 가을이 깊으니 단풍도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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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단풍’ 소식이 무성하다. ‘단풍 없는 단풍 축제’ 소식에다가 벼르고 별러 찾았더니 초록 낙엽만 있더라는 둥의 경험담 안에는 나와 무관하다고 여겼던 기후 위기가 어쩌면 우리의 삶을 실제로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당장에 행동으로 바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은 요긴해 보인다.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을 다녀와서 지난 3일 김천구미역에 다녀오는 길에 익숙한 길 대신 금오산 뒤쪽 길로 돌아왔다. 동네에서 바라보는 금오산은 너무 멀어서 자세한 풍경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12년째 구미에서 살고 있지만, 지난겨울부터 금오산이 좀 다르게 다가왔었다.
시민들에겐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친숙한 산이어서일까. 그간 나는 한 번도 금오산이 아름다운 산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스무 살 무렵에 제1폭포까지 올라가 봤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올라 보지도 못했었다. 구미에 들어와 살면서 가 봐야지, 하면서도 미루다 보니 이제 무릎이 시원찮아서 현월봉에 오르겠다는 생각은 접어버린 지 꽤 된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눈이 내려서 하얗게 변한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늘 보던 금오산과는 다른 어떤 풍모를 느껴서인데, 그건 나는 나이 들면서 자연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조금 더 숙성해서일까. 그래서 나는 언젠가 오르지는 못해도 사방을 돌면서 금오산을 렌즈에 담아보리라고 마음먹었지만, 렌즈 탓이나 하면서 그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김천에서 돌아오면서 김천시 남면 쪽의 길을 택했더니, 금오산의 남서 사면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장애물 없이 산봉우리만을 담느라 여러 번 멈춰서서 그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하얗게 빛나는 바위 봉우리가 의젓했고, 아래로 흐르는 골짜기 주변으로 갈색 단풍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모습이 깊어가는 가을을 환기해 주었다.
해마다 동네에서 찍는 단풍이 있다. 우리 동네의 이웃 아파트 담장을 따라 심은 벚나무 단풍이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벚나무 단풍은 종류별로 물드는 형태가 좀 다른 듯한데, 이 벚나무 단풍은 비교적 깨끗하게 물드는 품종 같다. 그래서 해마다 주변을 지나면서 그 단풍을 촬영하곤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서 파일로 갈무리해 놓고 바라보는 단풍은 붉은 단풍보다 노란 단풍이 조금 더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붉은 단풍 사진이 시원찮아서일 수도 있지만, 노란색은 야단스럽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 아직 푸른 잎사귀와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듯해서다.
오늘 올들어 처음으로 기온이 0℃까지 떨어졌다. 마침 입동 절기이니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는 이제 더는 단풍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여겨도 무방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집 뒤 북봉산의 나무와 숲이 가을 본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지난여름이 장차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언을 뉴스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올가을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웠던 단풍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후 위기에 맞닥뜨린 인간의 대응은 얼마만큼이나 파국을 늦출 수 있을 것인지를 우울하게 전망해 본다.
2024. 11.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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