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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풍경

2024, 우리 동네 도서관의 가을

by 낮달2018 2024. 11. 11.

봉곡도서관 뜰에서 깊어 가는 가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우리 동네 도서관은 구미시립 봉곡도서관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다.
▲ 도서관 뜰을 빙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에 잎이 떨어지고 남은 단풍이 곱다.

사는 곳 인근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복된 일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를 기르는 어버이라면, 그리고 가끔 도서관으로 나들이하여 책을 빌리고 그걸 읽는 사람이라면 지척의 도서관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안동에서 오래 살다가 구미로 옮아오면서 첫 집을 구할 때, 나는 도서관 근처라는 데 듬뿍 점수를 주고 이 동네에서

터를 잡았다. 그러나 퇴직하기 전까지는 도서관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업도 많았고, 월 2회 일요일엔 방송통신고 수업이 있었으니, 막상 짬을 내기 어려웠었다.

 

4년 뒤인 2016년 퇴직하고 맨 처음 한 일이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기도 했다. 아마 도서관에 가장 열심히 드나든 때가 이해였던 듯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읽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한 데다가 별로 소득 없는 글쓰기에 바빠서 나는 도서관에서 조금씩 멀어졌었다. [관련 글 :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다]

▲ 도서관 뜰에는 느티나무가 제일 많고, 거기에 소나무와 이팝나무, 단풍나무 등이 섞여 있다.
▲ 도서관 뜰에 낙엽이 쌓여 있다.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풍경은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 도서관 뜰에는 ‘34년간 노모 약시중’ 든 효자 ‘정려 편액’을 건 정려각도 있다.

참고 서적이 필요한 경우 노트북을 가지고 도서관을 찾아 열람실에서 한나절씩 작업을 하는 일 외엔 도서관을 드나들 일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문드문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나는 도서관 정원에 있는 오래된 빗돌과 정려각, 구황불망비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원래 거기 있던 정려각과 구황불망비, 의우총 빗돌이 있는 자리에 세워져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유적을 뜰에 품고 있다. 나는 의로운 소의 무덤과 효자의 정려각, 굶주린 이웃을 위해 집안의 곳간을 열고 곡식을 내어 주민을 구제한 이를 기리는 빗돌에 관한 이야기를 따로 쓰기도 했다. [관련 글 : 구미 의우총 이야기, 소의 의로움이 이와 같았다 / 그 도서관에 의로운 소와 사람의 빗돌이 함께 있다]

 

한동안 뜸했던 도서관에 새로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0월 들어서부터다. 10월 둘째 날에 출판 계약을 맺었고, 그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필요한 참고 자료나 논문을 찾아서다. 우리 도서관은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 가운데 원문을 이용할 수 있는 협정을 맺고 있다. 그래서 자료실의 컴퓨터로 국회도서관과 접속하여 필요한 자료를 원문으로 열람하고 이를 인쇄해 볼 수 있어서다.

▲ 정려각 앞에는 옛 주인을 따라 죽은 소를 기린 ‘의우총 빗돌’ 이 서 있다. 구미에는 의우뿐 아니라, 의구총도 있다.
▲ 도서관 뜰에는 운치를 살려 원형으로 투명한 가로등이 걸려 있다.
▲ 도서관 뜰에 난 산책길.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이 길에는 도서관 이용자들이 거닐곤 한다.
▲ 우리 동네 이웃 아파트 담장의 벚나무 단풍은 지난번보다 좀더 물이 들었다.

도서관 정원에도 가을이 깊었다. 며칠 전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을 블로그 글에다 썼다. 오늘은 카메라를 가지고 도서관에 갔는데, 3층의 종합 자료실에 가서야 오늘이 두 번째 월요일, 정기 휴관일임을 알았다. 나는 논문을 찾는 대신 정원을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 아파트 담장의 벚나무 단풍을 새로 찍었다. [관련 글 : 금오산과 우리 동네의 지각 단풍]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이 실제 풍경보다 더 좋아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제한된 프레임 안에 들어온 풍경은 그만큼 정돈되고 압축적인 인상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정하면서 이 풍경은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썼다. 만추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푸른 잎이 많은 지각 단풍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도서관 뜰에서 숙성하고 있는 단풍을 들여다보면서 가을이 이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겨울이 되기 전에 ‘생거진천(生居鎭川)’의 그 진천, 농다리를 다녀오리라 계획하고 있다. 가을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올가을은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계절이 아닌가 말이다.

 

 

2024. 11. 1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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