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느끼는 ‘노화’, 그리고 드라마 <디어 프렌즈>
텔레비전 드라마를 ‘안 본 지 꽤 되었다’라고 쓰다가 헤아려보니 반드시 그런 게 아니다. 이른바 ‘본방을 사수’한 드라마는 <송곳>(<제이티비시(JTBC)>)과 <응답하라 1988>(<티브이엔(tvN)>) 정도였던 것 같다고 쓰는데 다시 얼마 전에 이성민이 주연한 <기억>(<티브이엔(tvN)>) 역시 거기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드라마 선호’가 노화의 증거?
딸애가 서울에 있는 제 남동생에게 내 근황을 전했더니 녀석이 그랬단다. 아버지께서 드라마를 즐기시는 것 같은데 그건 노화나 여성화의 한 증상일 수 있다고. 그럴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드라마를 즐겨 본다’라고 쓰는 게 훨씬 사실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시간 여유가 있으니 일부러 텔레비전을 피하지 않는 이상, 딸애가 ‘드라마의 여제(女帝)’라 부르는 아내와 생활하면서 드라마를 아주 안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올해 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는 <태양의 후예>도, <시그널>도, <치즈인더트랩>도, <애인 있어요>도 보지 않았다.(<시그널>은 몇 차례 보다가 말았다.)
소문이 무성했지만 나는 거기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진부한 러브스토리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통속극이 나는 당기지 않았다. ‘본방 사수’는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드문드문 시청한 드라마로는 <욱씨 남정기>가 있었다. 이른바 ‘을(乙)의 반란’이 흥미로워서였다.
아내 곁에서 한 토막씩 보거나 보는 최근 드라마로는 <결혼 계약>과 <미녀 공심이>가 있지만, 그 기승전결이 전혀 궁금하지 않은 드라마일 뿐이다. 요즘은 방영된 지 꽤 된 드라마로 뒤늦게 빼먹지 않고 시청하는 게 <그래, 그런 거야>(<서울방송(SBS)>)다.
이 드라마는 지난 10여 년 동안 드문드문 방영된 김수현 표 가족극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우리 내외는 뭇 시청자들과 같이 각론만 조금 바뀐 기시감을 확인하고, 다분히 ‘척’이 심한 김수현식 대사를 욕해가면서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이 드라마가 당기는 점은 김수현이 의도한 3대에 걸친 대가족, 세대의 아우름 따위는 아니다. 나는 70대에 장가를 가는 큰아들(노주현 분)과 40대 일식집 종업원(김정란 분)의 여정이 좀 궁금했을 뿐이다. 말은 안 해도 아내의 흥미도 여기 있는 듯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사랑의 도피행을 떠나는 20대 사돈 남녀(정해인과 남규리 분)의 불장난이 자못 흥미로웠다. 20대와 70대의 짝짓기지만 그게 그거라는 걸 나는 단박에 알았다. 아내와 나는 두 젊은이의 좌충우돌을 보다가 가끔 마주 보고 쓴웃음을 짓곤 한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여인들
지난 주말에 나는 우연히 거실에 앉아 있다가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고 있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시청하게 되었다. 나는 이 <디마프>가 언제 방영을 시작했는지 누가 쓴 작품인지 따위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드라마라면 ‘나름 일가견’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노희경의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 목록 가운데 내 눈에 익은 것은 박영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바보 같은 사랑> 정도일 뿐이다. 나는 아내 곁에서 그 작품의 몇몇 장면을 건너다보긴 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도 없다. 다만 그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을 때 내가 그걸 보지 못할 만큼 바쁜 일에 파묻혀 있었을 뿐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이 갔다면 만날 수 있었을 터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도 분명하다.
6, 70대의 한 초등학교 동문을 주역으로 한 ‘황혼기 청춘들의 인생 찬가’(드라마 누리집)라는 이 드라마는 꼰대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노인이 아닌 ‘어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친구가 되려는 청춘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입에 선 제목은 바로 어른들을 바라보는 그 청춘의 대사다.
몇몇 장면을 보기는 했지만 제대로 앉아서 드라마를 시청하기는 처음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대박 짬뽕집을 운영하는 장난희(고두심 분)는 간암 말기판정을 받고 심란해하며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옛 애인을 배웅하려다가 이 사실을 알고 달려온 그녀의 절친인 여배우 이영원(박원숙 분)은 그녀를 달랜다.
장난희는 친정 부모와 남동생, 과년한 딸(고현정 분)까지 건사하며 살아가는 슈퍼우먼이고 이영원은 연이은 사랑의 실패와 스캔들로 전락한 여배우다. 예순셋, 아직 좀 더 삶을 즐겨도 될 나이건만 장난희는 간암 말기판정을 받았고 이영원은 옛사랑의 행복을 빌며 그를 떠나보낸다. 이 박복(!)한 두 여인이 일식집의 평상에 앉아 나누는 대화다.
“손은 아직 곱네.”
“손만 곱냐? 몸은 더 죽여!”
“고와 봤지지, 이년아! 만져줄 놈도 없는데. 너나 나나 엿 같은 인생이야! ……진짜 아끼다 엿 됐다. 내 인생 지고지순, 현모양처, 효녀 딸, 강한 엄마 흉내 내다……. 아! 엿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 놈한테 확 다 퍼주고 말걸. 싹 다 줄 서라 그럴까? 싹 다 퍼준다고…….”
“아이구! 이 주둥아리 좀 봐!”
“야, 준대도 받겠다고 줄 서는 놈이 없네…….”
“야! 설마…….”
부끄러움 따윈 잊어버린 60대 여인 둘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댄다. 듣기에 따라선 천박하고 위험한 수위의 발언일 수 있는데 어쩐지 그 농담이 야하지도 역겹지도 않았다. 나는 자못 심각해져서 두 여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렇다. 60대. 할머니라 불릴 나이긴 하지만 이제 예전처럼 노인 대접을 받지는 않는다. 엔간하면 자식들 출가시키고 노후를 즐겨도 될 나이다. 그런데 하나는 10년 전에 남편을 여의었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랑들을 떠나보낸 터다.
나이 듦은 단지 물리적 시간의 집적일 뿐이다. 그것은 얼마간 신체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긴 하지만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진 욕망의 상실로 등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욕망을 단지 노추의 관점으로 바라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인간의 일상적 본능에 가깝다.
그것을 일탈의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 이들이 가진 욕망을 폄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따라서 시한부 생명의 선고 앞에, 이룰 수 없는 사랑과의 이별 앞에서 자책하고 자신의 삶을 회한으로 돌아보는 이 여인들의 시선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자세를 고쳤으며 얼마간 젖은 마음으로 거기 몰입했다.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딸애에게서 얻었는데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아이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생생해서 저절로 드라마에 몰입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들보다 10여 년 선배로 등장하는 조희자(김혜자 분)는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사는 72살 여인이다. 초등학교 동기면서 한때 그녀를 사랑했던 홀아비 이성재(주현 분)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는 이 여인에겐 불현듯 치매가 찾아온다.
어느 날, 조희자는 실종되는데, 그녀는 어릴 적에 잃은 아들을 둘러업고 그 과거의 기억 속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나선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녀가 잃어버린 과거의 장소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수십 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간 여인은 자신의 슬픔을 위무해 주지 않았던 친구에게 분노의 절규를 퍼붓고 …….
노화는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신체적 노화를 비켜 가지 못한다. 그래서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게 노인의 존재 조건이다. 아무리 건강을 자신한다 해도 마냥 큰소리만 칠 수 없는 이유다.
맞닥뜨려야 할 미래에 대한 연민
드라마가 주는 감동과는 별개로 나는 극을 시청하면서 내가 그들과 비슷한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극의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삶의 장면들은 내가 앞으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 앞에선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무엇보다 나는 치매가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가 오래 그것을 앓다가 떠나셨으니, 내게 어머니의 유전인자가 이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글쎄, 나는 잠깐 마음이 조급해지다가 이내 평정을 찾았다. 정말, 어느 날, 알지 못하는 사이에 치매가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번 주말에 16화로 막을 내린다고 한다. 어쩐지 이 드라마의 끝을 보는 게 망설여지는 느낌이 있다. 이 주인공들의 삶, 그 마지막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떨까. 아주 쿨한 방식으로 이들의 삶의 피날레를 담담하게 제시하지 않을까. 섣부른 눈물도, 덧없는 미련과 회한도 없이.
2016. 6.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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