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68년 6월 1일, 헬렌 켈러 돌아가다

▲ 헬렌은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앞은 볼 수 있으나 비전이 없는 것"이라 했다.

1968년 6월 1일 토요일 낮, 코네티컷주 웨스트포드의 자택에서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가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평생을 잿빛 고요 속에서 살았고,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수화, 점자 입술 읽기로 세상을 배웠다.”(<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그의 유해는 영원한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앤 설리번과 폴리 톰슨의 옆에 묻혔다. [관련 글 :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

헬렌 켈러는 인문계 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이었다. 그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였고, 여성참정권과 여성 피임을 지원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또 우드로 윌슨의 도덕주의(Moralism)에 반대한 평화주의자였고, 사형폐지 운동, 아동 노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참여한 인권운동가였다.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평화·인권운동가’ 헬렌 켈러

헬렌 켈러는 1909년에 미국 사회당에 가입했고, 여성의 평등을 위해 싸웠으며,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저작과 연설로 노동자 투쟁을 지지했고 당시 노동자들이 처한 험악한 조건들을 폭로했다. 옷에 달린 레이스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에서 헬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레이스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눈이 침침해지면, 우리가 입는 옷의 하얀 레이스도 침침해진다.”

헬렌은 제1차 세계대전의 학살에 반대했고, 러시아혁명을 지지했다. 미국 정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했던 1940년대 말과 1950년대에 투옥된 미국 공산당의 지도자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했다.

헬렌 켈러는 찰리 채플린, 마크 트웨인 등 수많은 유명인사의 친구였지만 보수 언론은 그가 사회주의자임을 알게 되면서 치졸한 인신공격을 계속했다. 그를 극찬했던 언론은 적대적 태도로 돌아섰다. 지역 신문인 〈브루클린 이글〉은 사설에서 “그녀의 잘못은 성장 과정상의 분명한 한계에서 비롯한 것들이다.”라고 공격했다.

헬렌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통렬하게 공격했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를 열정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그녀의 응답은 여러 신문에 실렸다.

“내가 사회봉사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에 전념하는 한, 신문들은 나를 일컬어 ‘시각장애인들의 성녀’라거나 ‘기적의 여인’이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우리 주변의 빈곤과 산업 체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면 언론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은 갸륵한 일이지만 모든 인간이 안락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황한 꿈이며 그 실현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시각장애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헬렌 켈러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였고 페미니스트였고 평화운동가였다 .

헬렌 켈러의 생애 가운데 어릴 적 장애 극복에 관한 이야기만 널리 알려지고 정작 성인이 된 이후의 활동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도 교과서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소개되었지만, 그는 단지 삼중고(三重苦)의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일 뿐 어디에서도 그녀가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주의자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현재 한글 브리태니커 온라인에서도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자라는 내용은 없다.)

▲ 앨라바마주 쿼터 동전의 헬렌 켈러

헬렌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주는, 미국의 최고 시민상인 ‘자유 메달’을 받은 30인 중 한 명이었다. 1년 후에는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여성 명예의 전당에 선정된 20인의 여성 중 1명이었다. 1999년에는 “갤럽이 선정한 20세기에서 가장 널리 존경받는 인물” 18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앨라배마주는 주를 상징하는 쿼터(25센트) 동전에 헬렌 켈러를 그려 넣었다. 앨라배마 셰필드에 있는 ‘헬렌 켈러 병원’은 앨라배마주가 헬렌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었다. 2009년에는 그의 동상이 미국 국회의사당 방문객 센터에 전시되었다.

▲ Edward Hlavka가 조각한 켈러의 2008년 동상

그 동상은 수중 펌프 앞에 서 있는 7살의 헬렌 켈러다. 동상은 그가, 앤 설리번이 그의 손에 써 준‘W-A-T-E-R(물)’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이해했을 때의 중요한 순간을 담았는데, 거기 쓰인 글은 일반 글자와 점자로 되어 있다.

서가에서 그의 전기 <헬렌 켈러-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미다스북, 2002)를 꺼내 뒤적이며 48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위대한 여성의 삶과 투쟁을 떠올려 본다. 그의 어록들은 그가 자기 삶의 한가운데서 깨우친 진실과 지혜의 향훈으로 지금도 그윽하게 빛나고 있다.

 

2019. 5. 31. 낮달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 참고

마틴 스미스, 헬렌 켈러는 누구였는가?, 월간 <다함께>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