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33 ⑯ 추분(秋分),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도 숨는다 추분(秋分), 가을의 네 번째 절기23일(2024년은 22일)은 추분(秋分)이다.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드는, 24절기 가운데 16번째 절기, 가을의 네 번째 절기다. 이날 추분점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사람들은 추분을 특별한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이 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매듭 같은 걸 의식하게 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여광(餘光)이 남아 있어서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분을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자연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에선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로 여기지만, 우리는 ‘추분.. 2024. 9. 21. 한가위, 슬픈 풍요 한가위 보름달, 혹은 슬픈 풍요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靑孀)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 낙엽이 날아내린 별당 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부드러운 초가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그 청청한 천상의 여인을 환상하고 추적하고 포옹하려 하나 온기를 잃은 석녀(石女), 달은 영원한 외로.. 2024. 9. 17. ⑮ 백로(白露), 벼가 여물어가는 분기점 백로(白露), 가을의 세 번째 절기처서(處暑)를 지나면서 무더위는 한풀 꺾였다.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다가 거짓말처럼 기온이 30도 아래로 떨어졌고,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를 느낄 만큼 일교차가 커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절기’를 속이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24절기가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9월 8일(2024년도는 7일)은 백로(白露), 24절기의 열다섯 번째, 가을의 세 번째 절기다. 처서(8.23.)와 추분(9.23.) 사이에 드는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 시기에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백로는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는 시기로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 2024. 9. 6. ⑭ 처서(處暑), “귀뚜라미 등에 업히고, 뭉게구름 타고 온다” 가을의 두 번째 절기 처서(處暑)8월 23일(2024년은 22일)은 ‘더위가 물러난다’는 처서(處暑)다. 처서는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 가을의 두 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白露) 사이에 든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표현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의 순환을 감각적으로 그린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에선 처서의 보름간을 5일씩 나누어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첫 5일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末候)에는 곡식이 익어간다.”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는 자라지 않는다고 하여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 2024. 8. 21. 삼복(三伏), “여름 불기운에 가을의 쇠 기운이 세 번 굴복한다” 24절기엔 들지 않지만, 그냥 못 넘기는 여름 절기7월 12일(2024년은 7월 15일)은 초복이다. 열흘 뒤인 22일(25일)은 중복, 그리고 다시 20일 뒤(8월 14일)는 말복이다. 장맛비가 계속 와서 더위는 체감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복날은 복날이다. 24절기에는 들지 않지만, 삼복은 여름을 나면서 사람들이 매우 친숙하게 맞고 보내는 절기다. 여름 더위와 연관된 절기인 소서(小暑)와 대서(大暑)가 잘 알려지지 않아 무심히 보내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복날이면 사람들은 더위를 이기고자 개장국과 삼계탕을 먹거나 수박을 차게 해서 나눠 먹곤 하는 것이다.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 중복, 말복을 가리킨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네 번째 경일(庚日)과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을 각.. 2024. 8. 14. 칠석(七夕), 끝나야 할 슬픔이 어찌 그것뿐이랴 칠석(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의 상봉 날에 치러지는 세시 풍속 8월 7일(2024년은 10일)은 음력 칠월 초이레,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라는 ‘칠석(七夕)’이다. 칠석은 전설 속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인 음력 7월 7일에 행해지는 세시 풍속.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어서 길일로 여기는데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한 견우직녀 전설이 덧입혀졌다. 칠석, ‘알타이르별’과 ‘베가 별’의 만남 견우와 직녀의 전설은 동아시아에 보편적으로 분포하는 설화다. 이들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을 ‘칠석’으로 부르는 것은 같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음력 7월 7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인 게 다를 뿐이다. 세 나라 가운데서 일본이 가장 먼저 태양력을 받아들인 역사.. 2024. 8. 10. ⑬ 입추(立秋), 어쨌든 여름은 막바지로 달려가고 가을의 첫 절기 입추(立秋)지난해의 끔찍한 더위를 떠올리는 이에게 올여름은 양반이다. 글쎄, 견디기 힘들 만큼 더웠던 날이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6월 초순에 뜬금없이 온도가 예년보다 높았지만 그걸 더위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위는 낮도 그렇지만 열대야가 이어질 때 잠을 설치게 하는 게 제일 힘이 든다. 그런데 그간 열대야라고 한 날이 며칠 있었지만, 지난해같이 끔찍하지는 않았다. 새벽녘에 이불 속으로 기어들게 하는 날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틀 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한낮 기온이 35도에 육박하고, 자정까지 28, 29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기분 나쁜 온도와 습기는 숙면을 불가능하게 한다. 자긴 하는데, 어쩐지 반쯤을 깨어 있는 상태가 이어지는, 한마.. 2024. 8. 7. ⑫ ‘염소 뿔도 녹이는’ 더위, 대서(大暑) 여름의 여섯 번째 절기 ‘대서’ 7월 23일(2024년도에 22일)은 24절기 중 열두 번째 절기, 여름의 여섯 번째 절기인 대서(大暑)다. 소서(小署)와 입추(立秋) 사이에 드는 대서는 태양의 황경(黃經, 춘분점으로부터 황도(黃道)를 따라 동쪽으로 잰 천체의 각거리)이 대략 120도 지점을 통과할 때다. 대서는 소서와 함께 24절기 중에서 별로 잘 언급되지 않는 절기다. 추위가 몰려오는 대한 소한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대서와 소서가 잘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추위만큼 고통스럽지 않아서일까. 우리나라에서 대서는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극심해지는 때다. 하루 전날(22일, 2024년엔 25일)이 중복(中伏)이니 더위를 경고하고 있는 절기인 것이다. 예부터 대서 더위를 일러 “염소 뿔도.. 2024. 7. 22. ⑩ 하지(夏至) - 가장 긴 낮, 여름은 시나브로 깊어가고 여름의 네 번째 절기, 낮이 가장 긴 날6월 22일(2024년도는 21일)은 하지(夏至), 여름의 4번째 절기다. 하지는 망종과 소서(小暑) 사이의 절기로 북반구에선 낮이 가장 긴 날이다. 하지에 정오의 태양도 가장 높고, 일사(日射)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다. 북극지방에서는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대신, 낮은 14시간 35분으로 반일(12시간)보다 2시간 35분이 많다. 여름인데 낮이 기니 괴롭긴 하지만 이날 이후부터 다시 낮의 길이가 짧아져 가니 공평하다면 공평한 셈이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내기가 하지 이전에 얼추 끝난다. 시외로 나가면 모내기를 끝낸.. 2024. 6. 21. ‘단오(端午)’, 잊힌 명절 농경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옮아가면서 잊히고 있는 명절6월 7일(2024년은 10일)은 잊힌 명절, 단오(端午)다. 나 역시 그랬듯 요즘 아이들은 ‘단오’가 명절이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삼국시대 이래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명절로 쇠었던 이 절일(節日)은 농경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에게서 시나브로 잊히어 가고 있다. 사실 단오라고 반색을 하긴 했지만, 내게도 세시 풍속으로서의 ‘단오’에 대한 기억은 실하지 않다. 글쎄, 유일하게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마을 하천 곁에서 펼쳐진 씨름대회가 고작이다. 그리 넓지 않은 모래밭인데 여기저기 가마솥에서 고깃국이 끓고, 한편에선 씨름판이 벌어졌던 1960년대의 광경은 마치 꿈결같이 떠오른다. 그 씨름대회의 우승자는 황소.. 2024. 6. 10. ⑨ 망종(芒種),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고 여름의 세 번째 절기 ‘망종(芒種)’내일(6월 6일, 2024년도는 5일)은 망종(芒種)이다. 여름의 세 번째 절기이자, 24절기 가운데 9번째 절기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든다. 망종(芒種)의 망(芒)은 ‘까끄라기 망’자로, 벼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물을, 종(種)은 씨앗을 말한다. 이 시기가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 적당한 계절이란 뜻이다. ‘발등에 오줌 쌀’ 만큼 바쁜 절기 이 시기의 농촌은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적당한 때다.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이 생겼다. 정학유의 5월령은 “오월이라 중하(中夏)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麥秋)를 재촉하니 / 보리밭 누.. 2024. 6. 5. ⑧ 소만(小滿), 밭에선 보리가 익어가고 여름의 두 번째 절기 소만(小滿)5월 21일(2024년도는 20일)은 여름의 두 번째 절기 소만이다. ‘작을 소(小), 찰 만(滿)’자를 써서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차다’는 뜻이다. 소만 즈음이면 더위가 시작되고 보리가 익어가며 부엉이가 울어 예기 시작한다. 모내기와 보리 수확 따위가 이어지는 농번기다. 에 ‘4월이라 맹하(孟夏) 소만(小滿) 절기로다.’라 노래했지만 사실 소만은 다른 절기에 비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절대빈곤 시대의 아픈 상처 ‘보릿고개’[춘궁기(春窮期)]의 때다. 내남없이 지난해 추수한 양식은 바닥나고 올해 지은 보리농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상태 말이다. ‘보릿고개’와 자주감자 맥령기(麥嶺期)라고도 부른 이 어려운 시기는 특히 식량 수탈에 시달리던 일제.. 2024. 5. 20.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