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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칠석(七夕), 끝나야 할 슬픔이 어찌 그것뿐이랴

by 낮달2018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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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음력 7월 7일), 견우와 직녀의 상봉 날에 치러지는 세시 풍속 

▲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다. ⓒ 한국세시풍속사전

8월 7일(2024년은 10일)은 음력 칠월 초이레,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라는 ‘칠석(七夕)’이다. 칠석은 전설 속의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인 음력 7월 7일에 행해지는 세시 풍속.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어서 길일로 여기는데 여기에 중국으로부터 유입한 견우직녀 전설이 덧입혀졌다.

 

칠석, ‘알타이르별’과 ‘베가 별’의 만남

 

견우와 직녀의 전설은 동아시아에 보편적으로 분포하는 설화다. 이들이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을 ‘칠석’으로 부르는 것은 같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음력 7월 7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인 게 다를 뿐이다. 세 나라 가운데서 일본이 가장 먼저 태양력을 받아들인 역사와 연관되는 것일까.

 

설화의 배경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은 각각 독수리 별자리[취성좌(鷲星座)]의 알타이르(Altair) 별과 거문고 별자리[금성좌(琴星座)]의 베가(Vega) 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은 각각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에 있다.

 

이 두 별은 태양 황도 위를 지날 때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다. 또 봄날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고, 칠석 무렵이면 천장 부근에서 보이게 되므로 마치 일 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견우직녀 설화는 중국 고대 주나라 때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이러한 천문 현상을 바탕으로 한나라에 이르러서 형성되었고 여러 가지 관련 풍속이 발전하였다. <시경(詩經)>에 견우직녀 설화의 연원으로 보이는 문구가 보인다.

 

하늘엔 은하수가 있어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데, (維天有漢 監亦有光)
직녀를 바라보니 종일 일곱 번이나 베틀에 오르네. (跂彼織女 終日七襄)
일곱 번이나 베틀에 오르면서도 천은 이루지 못하고, (雖則七襄 不成報章)
반짝거리는 저 견우성은 수레를 끌지 않네. (晥彼牽牛 不以服箱)”
     - <시경> ‘소아(小雅) 곡풍지십(谷風之什)’, ‘대동(大東)’

 

“직녀가 칠석에 은하수를 건널 때 까치로 다리를 삼았다.”라는 초보적인 기록이 전하는 <풍속기(風俗記)> 이후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 유입되기까지 윤색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설화의 내용이야 웬만한 아이들도 꿰고 있다.

 

“옥황상제의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 건너에 부지런한 목동 견우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견우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너무 사이가 좋아 견우는 농사일을, 직녀는 베 짜는 일을 게을리했다. 그러자 천계(天界)의 현상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와 기근(饑饉)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이를 본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의 양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서 일 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 칠석 다음날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보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기 위해 머리에 돌을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칠석날에는 비가 내리는데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또는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고 밤에 오는 비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칠석날 전후에는 부슬비가 내리는 일이 많은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고 갈 수레 준비를 하느라고 먼지 앉은 수레를 씻은 물이 인간 세상에서 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이라 한다. 이 비를 ‘수레 씻는 비’ 즉 ‘세차우(洗車雨)’라고 한다.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튿날 새벽의 비를 ‘눈물 흘리는 비’, 곧 ‘쇄루우(灑淚雨)’라고도 한다.

 

‘세차우’, 혹은 ‘쇄루우’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이 설화가 전래된 것 같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견우직녀 설화를 반영하는 그림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칠석의 풍속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로 시를 짓게 하거나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 속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가 칠석의 대표적 풍속이다. ⓒ <민속대백과사전>

한편 여인들이 직녀를 하늘에서 바느질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여기는 믿음에서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도 있었다. 이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으로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것이다.

 

‘걸교’와 ‘까치밥 주기’ 풍속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기뻐했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놓은 뒤, 별에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 날 아침 재 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별과 조상,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 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 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 깊도록 놀기도 했다. 하지만 세시풍속도 희미해진 오늘, 그것은 견우직녀 이야기처럼 까마득한 설화가 되어 버렸다.

▲칠석에 이루어지는 견우직녀의 만남에서 일등공신은 까치다.
▲ 문병란, <땅의 연가>(1981)

칠석에 이루어지는 견우직녀의 만남에서 일등공신은 까치다. 많은 설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등 예부터 우리 민족과 친근하게 지내온 까치는 상서로운 새다. “까치를 죽이면 죄가 된다.”거나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 하는 속신(俗信)이 전국에 퍼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칠석날에 까막까치를 위해 담장 위에 밥을 올려두는 풍속을 ‘까치밥 주기’라 한다. 견우직녀의 만남을 위해 오작교를 놓아 머리가 벗겨진 까치에 대한 보답이다. 지방에 따라 밥이 제물로 바뀌거나 백설기 등 다른 음식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의도는 같은 것이다.

 

‘까치밥 주기’ 풍속은 오작교 전설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상서로운 익조(益鳥)로 인식된 까치에 대한 측은지심의 표현이다. 우리 민족이 지녀 온 주변 짐승에 대한 배려는 비단 칠석날에 그치지 않는다. 가을걷이 뒤 야생 조류와 짐승들을 위해 논바닥에 이삭을 남기고, ‘까치밥’이라고 하여 감나무에 서너 개쯤의 감을 남겨두기도 하는 것이다.

 

견우직녀는 모든 이별의 상징이다. 두 사람은 모든 연인의 별리(別離)를 표상한다. 문병란 시인(1935~2015)이 ‘직녀에게’(『땅의 연가(1981)』)를 통해 ‘이별의 극복’을 노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애절한 이별과 슬픔의 시간을 남과 북이 겪어온 고통스러운 분단의 시간으로 이해했다. 

 

시인은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라고 노래한다. ‘이별은 끝나야’ 하고 ‘슬픔은 끝나야 한다’고 절규하는 시인의 노래 넘어 분단의 세월이 70년이 넘었다. [관련 글 : 직녀에게의 시인, 문병란 떠나다]

 

민중가수 김원중의 목소리로 ‘직녀에게’를 듣는다.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발표할 때만 해도 온 겨레에게 희망을 주었던 남북 관계는 지지부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북이 다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고 있어 안타깝다. 시인이 절규하듯 노래한 ‘이별’과 ‘슬픔’을 끝내기 위해서 아직도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김원중의 '직녀에게'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DQAU8t-HjK4

 

2019. 8.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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