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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⑯ 추분(秋分),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도 숨는다

by 낮달2018 202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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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秋分), 가을의 네 번째 절기

▲ 23일은 추분. 이날 추분점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금강 둘레길에서 만난 코스모스.

23일(2024년은 22일)은 추분(秋分)이다.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드는, 24절기 가운데 16번째 절기, 가을의 네 번째 절기다. 이날 추분점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사람들은 추분을 특별한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이 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매듭 같은 걸 의식하게 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여광(餘光)이 남아 있어서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분을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자연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에선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로 여기지만, 우리는 ‘추분부터 동지까지’로 본다. 이 때문에 추분 날 부는 바람을 보며 날씨 점을 쳤다. ‘바람이 북서쪽이나 남동쪽에서 불어오면 다음 해에 큰 바람이 있고, 북쪽에서 불어오면 겨울이 몹시 춥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옛사람들은 추분 기간을 삼후(三侯)로 구분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우렛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중후(中候)에는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구멍 창을 막으며,
말후(末候)에는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

▲ 논에서는 나락이 여물어가고 있다.
▲ 산행길에서 만난 대추. 굵은 씨알이 시나브로 익어가고 있다.
▲ 금강 둘레길에서 만난 밤송이. 아직도 더 여물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추분부터 밤이 길어지면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어 천둥이 그치는 기상 변화가 오고, 벌레들은 이에 따라 둥지의 입구를 막아 작게 만들어 추위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라고 하는 속담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추분과 춘분은 모두 밤낮의 길이가 같은 시기지만 기온을 비교해 보면 추분이 약 10도 정도가 높다고 한다. 이는 아직 여름의 더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농사력으로 추분 무렵이 추수기라 하지만, 올해 추수는 아직 일러 보인다. 한가위 쇤 지 열흘, 들판은 이제 조금씩 노란빛을 넓혀가고 있다.

 

속담에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이다.’라고 하는 것도 더위와 추위가 절기의 일정한 순환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곧 춘분과 추분은 추위와 더위가 바뀌는 경계로서 관용적으로 인식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는 속담인 것이다.

 

금강 둘레길 풍경과 코스모스

▲ 금강 둘레길에서 바라본 송호관광지 야영장. 오래된 소나무 숲과 차분한 풍경이 신선하고 좋았다.

한가위 다음날, 우리 가족은 모처럼 나들이를 나섰다. 함께 어디 다녀온 기억이 아득해서다. 멀지 않고 풍경이 좋은 곳을 고른다고 고른 데가 영동 송호 관광지다. 금강 주변을 둘러싼 솔숲에 야영장이 있고, 강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 따라 이른바 양산(陽山)팔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한가위 다음날이니 귀경길이 막힐 수 있었지만, 오전에 일찍 출발한다면 피해갈 수 있겠다는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내비게이션은 잘 뚫려 있는 경부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추천했는데, 우리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하고 드넓은 길을 시원하게 달려서 1시간 조금 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명절 연휴라 야영장은 문을 닫았고, 우리는 차를 돌려 강 건너 강선대(降仙臺)와 함벽정(涵碧亭)을 돌아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도시락을 먹고 돌아와 열린 다른 문으로 강변 야영장으로 들어가 금강 강변에서 잠깐 쉬었다.

▲ 금강둘레길에서 내려다본 금강. 강폭은 좁았지만 물 흐름은 꽤 급했다.

강폭은 좁은데도 물은 꽤 급하게 흐르는 금강과 둘레길은 좀 낯설면서도 차분한 풍경이었다. 아들 녀석이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의 그림 같다고 해서 돌아와 검색해 보니 과연 비슷하긴 했다. 강변의 나무와 강물, 거기 비친 하늘 등이 어우러진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관련 글 : 영동의 비단강, ‘풍경에서 정경(情景)’으로]

 

함벽정으로 가는 둘레길 주변에 코스모스가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가까이 다가가기가 꺼려졌다. 다음 주말에는 인근 장천 코스모스 축제를 찾을까 싶다. 그간 숱하게 찍었지만, 코스모스 사진은 제대로 건진 게 없다.

 

김명인 시인은 시 ‘추분의 코스모스를 노래함’에서 코스모스 수백 수천 꽃송이를 피워낸 것은 ‘우주의 깃털 바람’이라고 노래한다. 그리고 코스모스 덕분에 ‘새털처럼 가벼워진 지구’가 그 ‘잎잎 위에서 저마다의 이륙을 준비’한다고도 노래했다.

 

가장 얇고, 가장 맑고 연약한 꽃잎을 달고서도 가녀린 지체를 흔들면서 이 가을을 조율하고 있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면서 우정 그런 생각을 했다. 불통의 정치 상황, 무산된 이산가족 상봉 따위의 이 꽉 막힌 정국에 진실로 필요한 것은 코스모스의 개화를 ‘우주의 깃털 바람’으로 이해하는 통 큰 생태주의적 인식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2019. 9. 22. 낮달

 

[()]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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