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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그 ‘샛강’이 생태공원이 되었다

by 낮달2018 2019.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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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①지산 샛강 생태공원

요즘은 엔간한 연못마다 연꽃을 심어두기 때문에 연꽃 구경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구미에 있는 연꽃 군락을 품고 있는 연지(蓮池) 세 군데를 돌아보았다. 시내 지산동에 있는 샛강생태공원과 고아읍 문성리의 들성 생태공원, 그리고 해평면 금호리의 금호연지생태공원 등 모두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사진은 클릭하면 큰 사이즈(896×593)로 볼 수 있다.

·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② 들성 생태공원
·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③ 금호연지생태공원

모르긴 해도 이 땅에서 연꽃의 역사는 불교의 전래만큼이나 오래될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므로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나타내는 식물로 여겨진다. 연꽃이 불상의 좌대로, 사찰의 창문 문양과 벽화, 단청 등의 소재로 쓰이고 사월초파일에 연등을 밝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향원익청, 연꽃의 열 가지 덕

▲ 표암 강세황의 초충도 '향원익청'

불교에서는 ‘연화십덕(蓮花十德)’이라 하여 연꽃이 가진 열 가지 덕을 예부터 널리 숭상해 왔는데, 그 첫 번째가 ‘이제염오(離諸染汚)’다. 이는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는 뜻, 곧 선비의 굳은 절조와 기개를 표상하는 것이다.

 

일찍이 성리학의 비조 염계(濂溪)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진흙에서 나고도 오염되지 않는 연꽃’에 대한 사랑을 기록했다. 그는 ‘맑은 잔물결로 씻어냈어도 요염하지 않’고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지’[향원익청(香遠益淸)]는 연꽃은 ‘군자’라고 했다.

 

조선조 후기의 화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은 자신의 초충도(草蟲圖) ‘향원익청(香遠益淸)’의 제시(題詩)에서 “염계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린 연꽃 역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고 썼다.

 

연꽃은 아름답지만 천박하지 아니하고 화사하지만 요염하지 아니하다. 진흙 속에서 피워내는 그 꽃의 ‘멀어질수록 더욱 맑은 향’은 가히 선비와 군자의 풍모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연꽃은 새벽에 활짝 피고 한낮이 되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일찌감치 이 땅에 들어오긴 했지만, 민간에서 연을 두루 재배하였던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성년이 될 때까지 연꽃은 구경도 못 하고 자랐다. 예부터 연지(蓮池)로 유명한 곳이 아니면 연꽃은 책이나 사진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주 귀한 식물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혼선이 있긴 하지만, 연꽃을 생활 주변에서 만나게 된 것은 요즘 들어서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엔간한 못마다 연을 심어 놓았다. 여름 한 철의 볼거리로는 연꽃만 한 것도 없다. 못의 규모에 따라 연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못 위로 ‘데크’로 다리를 세워 둔 데도 많다.

▲지산동의 발갱이들 . 왕건이 신검을 사로잡은 들이라 하여 '발검들(벌검들)'로 불리다가 발갱이들이 되었다 .
▲ 경북 무형문화재 제 27 호로 지정된 농요 발갱이들소리는 일명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한다 .

샛강은 습지 생태공원이 되었다

 

구미로 옮아온 2012년에 처음 찾은 곳이 지산 샛강생태공원이다. 지산 샛강생태공원은 지산동 앞의 넓고 기름진 들판 ‘발갱이들’ 가운데에 있다. 발갱이들은 후삼국 시대에 태조 왕건이 지산동 앞들에서 고려를 침공한 견훤의 아들 신검(神劍)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았다고 하여 ‘벌검(伐劍)들’, 또는 ‘발검(拔劒)들’이라 부르다가 생긴 이름이다.

 

‘신검을 정벌했다’고 하면 ‘벌검’이 맞고 ‘신검을 뿌리 뽑았다’ 정도로 풀면 ‘발검’인데 ‘발갱이’에 더 가까운 소리는 ‘발검’이다. 그래서일까. 샛강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 이름도 ‘발검교’다. 발갱이들에서 전승되고 있는 농업 노동요가 ‘구미 발갱이들소리’다.

 

1999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이 농요는 일명 ‘농사짓기 소리’라고도 하는데 기본 음률은 4·4조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세월 무정 잘도 흘러 논매기가 닥쳤구나.
좌우 청산 돌아보니 우리 일꾼 다 모였네.
만경 벌판 발갱이들을 어느 누가 맡을손가.
우리 모두 한잔 먹고 호미 들어 시작하세.
한 가락에 한 호미씩 떠놓고서 돌아보니
폭 넓고 새래 긴 논 이럭저럭 줄어가네.
들머리는 멀어가고 날머리는 다가온다.”

▲ 지산동. 오른쪽 끝에 낙동강, 샛강은 논밭 사이에 호 모양을 하고 있다. ⓒ 다음 스카이뷰 갈무리

지산 샛강 생태공원은 발갱이들 한가운데에 있다. 한때는 낙동강 본류가 가지를 친 ‘샛강’으로 불리었지만, 강의 기능을 잃으면서 점차 습지로 바뀌어 왔다. 전체 면적이 4.88km²인 샛강은 낙동강의 망상하천(網狀河川), 즉 ‘강이 그물 모양으로 얽혀 흐르는 모양의 하천’이다. 또는 본류가 변한 우각호성(牛角湖性) 습지라고도 한다. 우각호는 ‘낮은 평야 지대를 사행(蛇行)하던 하천이 끊겨 생긴, 쇠뿔 모양의 호수’를 이르는 말이다.

 

습지로 바뀌면서 샛강은 연, 줄, 애기연꽃, 가래, 마름, 물옥잠 등의 식물상과 잉엇과 어류(붕어, 가물치), 식용 달팽이, 황소개구리, 왜가리, 백로, 논병아리 등의 동물상을 갖춘 생태계가 되었다. 4대강 사업으로 인근 해평습지가 사라지면서 샛강은 이 지역의 마지막 습지가 되었다.

 

구미시가 2002년부터 국비, 지방비 등 65억의 예산으로 샛강 일원을 생태습지로 조성하고 시민의 휴식 공간과 자연 친화적 체험 학습장으로 꾸미면서 샛강은 지산 샛강생태공원이 되었다. 공원의 전체 면적은 습지를 포함하여 25만4천㎡, 길이는 2.5㎞, 둘레가 5.6㎞다.

▲ 샛강 습지의 둘레로 이어진 산책길은 모래땅이고, 왕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연밥은 연꽃이 지고 난 후에 보이는 벌집 모양의 씨방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씨앗이 연자다.
▲ 한선(韓船) 전망대. 우리나라 전통 선박 모양으로 된 전망대인데 그리 높지 않아 전체를 조망하진 못한다.

강으로 향하는 좁은 도로가 양분해 버린 이 쇠뿔 모양의 호수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연 군락이다. 해마다 더욱 우거지는 연 군락의 검푸른 연잎의 행렬은 다소 위압적일 정도다. 해마다 들르지만, 올해엔 연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관리인 말로는 날씨가 따뜻해선지 일찍 피었다가 졌다고 한다. 길쭉한 기역 자 형태로 된 데크 전망대 주변에 연밥이 빽빽한 것은 그래서인 걸까.

 

지난해까진 스쳐 지나갔던 도로 남쪽의 습지 주변도 바야흐로 정비가 끝나가고 있다. 습지 둘레에 심은 왕벚나무를 가로수 삼아 이어진 산책길이 좋다. 길 양쪽 가녘에 콘크리트나 나무로 경계석을 설치했을 뿐 바닥은 모래땅이다. 그 길을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들성 생태공원의 데크 길보다 이 맨땅이 훨씬 좋다.

산책길에는 500m 간격으로 생태공원 팻말을 박아 놓았고, 쉼터와 전망대도 마련해 두었다. 도로 북쪽 왼쪽 강가엔 우리나라 전통 선박 모양으로 세워놓은 한선(韓船)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라고 하지만 별로 높지 않은 데다가 습지가 워낙 드넓어 그 위에서 공원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어렵다.

 

데크다리와 전망대엔 휴대폰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휴대폰 거치대도 있다. 글쎄, 사람들이 그걸 얼마나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건 휴대전화로 사진기를 대신하게 된 이 시대의 작은 풍속도인 셈이다.

 

데크 다리 전망대가 있는 쪽의 연꽃은 거의 져 버렸고, 습지 맨 위쪽과 도로 아래쪽 습지에서 한창이다. 따로 가꾸지 않아도 그 순백의 기품이 놀라운 백련과 분홍에서 점점 짙어가는 붉은 빛이 애잔해 보이는 홍련이 중심이다. 산책길과 연꽃 사이의 거리가 멀어 망원 렌즈 없이 촬영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흠이다.

 

사진을 찍어가면서 습지를 한 바퀴를 돌아오니 4, 50분이 넉넉하게 걸렸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축사의 거름 냄새가 다소 거북하지만 제대로 산책을 한 셈이다. 강가라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집에서는 차로 10분 이상 가야 하지만 가끔 이 공원을 찾는 것도 괜찮은 선택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16. 8.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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