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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연꽃,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은”

by 낮달2018 2019.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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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해평면의 금호연지 생태공원 연꽃

▲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금호연지 생태공원은 3 만 8 천 ㎡ 에 이르는 저수지에 연꽃이 자생한다 . (2013.7.23.)

요즘엔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이 유행이다. ‘공원의 자연녹지를 생태적으로 복원·보전하여 이용자들이, 동식물들이 자연환경 속에서 성장, 활동하는 생태를 직간접적으로 관찰·체험·학습할 수 있는 장소’로 정의되는 생태공원(Natural Ecological Park)은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트렌드인지 모른다.

 

연꽃 자생지 '금호연지 생태공원'

 

자연자원의 ‘상품화’라는 측면에서는 그리 마뜩잖아 보이지만 자연 생태계 보전이라는 대의를 표방하는 이른바 생태관광(에코투어리즘 ecotourism)에 시비를 걸 이는 아무도 없겠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시작된 이 생태공원은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며 지방으로 확산하고 있는 중이다.

 

구미에도 생태공원이 몇 있다. 내가 아는 곳은 시내 지산동에 샛강생태공원과 해평면의 금호연지(蓮池) 생태공원이다. 글쎄, 이 공원들이 행정과 법률에서 규정하는 ‘생태공원’의 요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는 몰라도 두 공원은 ‘생태’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곳이다.

 

두 공원의 공통점은 자생하던 연꽃을 군락으로 조성했다는 점이다. 샛강생태공원은 한때 낙동강의 샛강이었지만 지금은 대규모의 연꽃 자생단지를 거느린 늪이 된 곳이다. [관련 글 : “샛강, 사라지거나 바뀌거나”]

 

해평면 금호리 소재 금호연지는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阿道) 화상이 “이 연못에 연꽃이 피거든 나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알아 달라”는 말을 남긴 저수지다. 아도는 인근 태조산에 최초 가람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한 이다. 이후 연지에는 수천 년 동안 연꽃이 번성했는데 일제 강점기부터 점차 쇠퇴하여 명맥만 유지되었다. 이 연못의 연꽃이 다시 번창하게 된 것은 1977년 도리사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발견되면서라고 한다.

 

가까운 샛강에는 올해 들어 두 차례나 찾았지만, 금호연지를 찾은 것은 지난 23일이다. 비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출발했지만 비는 오지 않고 연지 주변에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간은 11시,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공기에는 습기가 적당했다. 사진 찍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축제가 지나간 연지 주변은 한산했다. 못 가득 피어난 홍련의 물결은 장관이었다. 꽃들은 대부분 만개하여 꽃잎을 열고 있었다. 못 가장자리에 무성하게 피어난 부들 사이로 숨은 몇 송이 홍련만이 봉우리를 오므리고 있을 뿐이었다.

금호연지는 2007년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식물인 가시연꽃이 발견돼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모은 곳이다. 그러나 가시연꽃은 2009년부터 급속도로 사라져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구미시에서는 홍련과 백련이 못을 뒤덮으면서 가시연꽃이 번식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홍련이나 백련과 달리 가시연꽃은 한해살이 식물로 잎이 올록볼록 주름져 있고, 잎 전체에 가시가 퍼져 있어 일반 연들과 다른 형태를 띤다. 2~3m씩 자라는 보통 연과 달리 물 위로 10㎝ 정도밖에 자라지 않아 크기도 작다.

 

가시연꽃이 자생하는 곳은 전국에서도 드물다. 그런데 금호연지에서 없었던 가시연꽃이 피어난 것은 2006년 못을 준설하면서 바닥에 있던 가시연꽃 씨앗이 수십 년 만에 발아된 것으로 추정한다. 가시연꽃은 대체로 8월 말께에 피기 시작한다. 올해는 금호연지에 가시연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처렴상정(處染常淨), 화과동시(花果同時)의 연꽃

 

연꽃은 더 볼 것 없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석가는 설법할 때도 자주 연꽃의 비유를 들었다고 한다. 불자들이 영취산에 모였을 때[영산회상(靈山會上)] 석가는 말없이 곁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대중에게 보였는데 제자 가운데 가섭(迦葉)만이 홀로 미소를 지었다. 이른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묘법(妙法)’이다.

 

불가에서는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된 이유를 몇 가지로 들고 있다. 우선 연꽃의 ‘처렴상정(處染常淨)’이다. ‘더러운 곳에 처해 있더라도 때 묻거나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다’는 뜻이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탕에 내리고 있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게 연꽃의 특성인 것이다.

 

이 특성을 불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직 부처의 가르침을 받들어 아름다운 믿음의 꽃을 피우는 것과 빗댄 것이다. 또 이는 보살이 홀로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열반의 경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위하여 온갖 죄업과 더러움이 있는 생사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는 연꽃의 ‘화과동시(花果同時)’ 성질이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를 ‘연밥[연실(蓮實)]’이라 한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이다. 이 꽃과 열매의 관계를 ‘인(因)’과 ‘과(果)’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인과의 도리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이다.

 

불교의 연등(燃燈)에서도 연꽃 모양의 등을 가장 많이 쓴다. 이는 더러운 곳에서도 깨끗하게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이 무명에 쌓여 있는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드러내어 부처가 되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구미 시내 지산동 샛강생태공원에는 홍련은 물론이고 백련도 많다 . (2013년 7월 20일) 이하 같음 .

금호연지에는 홍련 일색, 백련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홍련은 아주 연한 붉은 빛에서 시작하여 아주 미묘한 차이를 보이며 짙어져 간다. 언뜻 그 붉은 빛이 천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윽한 깊이가 느껴지는 빛깔이다. 아주 얇디얇은, 하늘거리는 그 꽃잎에 세로로 진 줄무늬 따위가 주는 질감은 인간의 감정까지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연꽃, 아름답되 요염하지 않은

 

백련은 드문 만큼 그 고결한 느낌이 남다르다. 그 순결한 백색의 꽃잎, 흰빛은 모든 애증과 미추, 은원과 인과의 저편에 서 있는 일체의 무욕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래서 연꽃의 그 그윽한 침묵 앞에서 우리는 지극히 작아지면서 우리네 삶의 유한성을 하나씩 깨우치게 되는지 모른다.

 

그렇다. 연꽃을 바라본 성리학의 비조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눈길은 백번 옳다. 연꽃은 아름답되 결코 ‘요염하지 않은’ 꽃인 것이다.

 

“나는 연을 사랑하나니 연꽃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으며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아야 참맛을 느끼게 하니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2013. 7.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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