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경북 김천시 자산동 자산(紫山) 벽화마을
전국 각지에 벽화마을이 있다. 개중에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어 나들이객을 모으는 동네도 꽤 있다. 서울의 이화동 벽화마을, 부산의 감천 문화마을, 통영의 동피랑 마을 등이 그렇다. 반면에 같은 지역에 있는데도 낯선 이름의 벽화마을도 적지 않다.
김천시 자산동 벽화마을
우연히 인근 김천시 자산동 벽화마을을 알게 되어 거길 다녀온 게 3월 중순께다. 김천 시내 조각공원에 피어 있다는 얼음새꽃(복수초)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서다가 잠깐 들른 곳이었다. 혼자여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돌았고 한 삼십 분쯤 거기 머물렀다.
돌아와서 이내 나는 그 마을은 잊어버렸다. 며칠 전에 사진을 정리하다가 다시 자산동 벽화마을을 다시 만났다. 사진을 한 장씩 넘기면서 나는 20여 일 전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렸는데 어쩐지 마을을 돌 때 느꼈던 쓸쓸한 마음마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자산마을에 관한 자료는 인터넷에도 아주 귀했다. 명색이 벽화마을이고 나들이객이 모여드는 동네라면 하다못해 마을의 조성 경위가 따로 있을 만한데, 여러 번 검색을 거듭해도 비슷한 자료도 없었다. 자산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젊은 직원은 나중에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지만,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다.
자산(紫山)은 김천시 성내동과 모암동을 나누는 산이다. 산의 바위가 해 질 무렵이면 자주색 빛을 낸다고 하여 자산이 되었다. 산 가까이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부터 산비탈에 들어선 마을이 자산마을이다. 이 마을에 벽화가 조성된 것은 2009년이다.
주민들의 삶과 무관하게 외부자에 의해 소비되는 마을
벽화마을은 주민과 지역 시민단체 등이 도시 재개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일률적인 재개발 대신 마을의 외부 경관을 개선하고 낙후된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벽화를 조성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벽화마을은 역사가 오래며, 전체적으로 퇴락한 마을이 기본 전제다.
자산마을도 마찬가지다. 산비탈에 미로처럼 얽힌 비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좌우에 펼쳐지는 집들은 대부분 슬레이트집이었다. 간혹 슬래브 집이나 기와집이 있었지만 모두 낮은 지붕의 낡고 오래된 집들이었다.
벽화마을은 거기 사는 사람들과 동네를 위해 조성되었지만 철저하게 외부 사람들에 의해 소비된다. 나들이객들은 빈번하게 마을을 드나들지만, 마을의 역사나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담벼락의 그림과 골목길에 깃든 정취만을 맛보고 떠나기 때문이다. 마을과 마을에 서린 사람들의 삶은 고작 그들의 기념사진 배경으로만 기능할 뿐인 것이다.
자산마을의 벽화는 출산 장려길, 소원성취길, 벽화 산책길, 야생화길 등 몇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다. 벽화 가운데엔 매우 동화적인 그림이 있는가 하면 어떤 그림은 매우 사실적인 화풍을 보여주기도 한다. 해가 설핏 기울어가는 오후의 마을은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고적했다.
‘행복길’과 ‘행복도시’
언덕 아래 주차장 가까이엔 ‘누구나 천사가 되는 곳’도 있다. ‘천사 날개’ 몇 점 그려진 벽면에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행복 도시 김천’이라는 그림과 오이시디(OECD) 국가와 우리나라의 출산율도 그려져 있었다. 벽화에 도시의 캠페인이 결합한 형태인 셈이었다.
마을 맨 위 산마루를 넘어가면 자산공원이다. 거기 2층 누각 ‘자운정’이 있고 이 동네 출신의 베이징 올림픽 유도 60㎏급 우승자인 ‘최민호 산책길’과 ‘시가 있는 오솔길’ 등이 있다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마을 길은 이름이 몇 있었는데 그 중 ‘모암 행복길’이 좀 색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문득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반증 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기 때문이다. 스무날 만에 다시 자산마을을 떠올리면서 문득 쓸쓸한 느낌이 든 것은 마을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반추되어서일까.
마을 정상에서는 김천 시가지의 한눈에 들어왔다. 낮고 퇴락한 잿빛 건물들 저편으로 케이티엑스(KTX) 선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때 교통의 요지로 경북의 주요 도시였던 김천은 이제 낡은 도시가 되었다. 인근에 들어선 혁신도시가 이 지역에 얼마만 한 활력을 다시 불어넣을 수 있을지.
2016. 4. 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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