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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들성들에 물 대던 ‘여우못’이 연지(蓮池)가 되었다

by 낮달2018 2019.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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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② 들성생태공원

요즘은 엔간한 연못마다 연꽃을 심어두기 때문에 연꽃 구경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구미에 있는 연꽃 군락을 품고 있는 연지(蓮池) 세 군데를 돌아보았다. 시내 지산동에 있는 샛강생태공원과 고아읍 문성리의 들성 생태공원, 그리고 해평면 금호리의 금호연지 생태공원 등 모두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다. *사진은 클릭하면 큰 사이즈(960×638)로 볼 수 있음.

*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① 지산 샛강생태공원
* 구미 땅 연지(蓮池) 돌아보기 ③ 금호연지 생태공원

▲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의 들성 생태공원. 저수지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구미 상모동에서 태어나신 내 어머니께선 늘 ‘선산(善山)은 대읍(大邑)’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신라 시대엔 ‘일선(一善)’과 ‘숭선(嵩善)’으로, 고려 시대엔 ‘선주(善州)’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에 지금의 선산이 되었고, 뒤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들성[평성(坪城)], 선산김씨의 터전

 

큰 고을이다 보니 이 지역을 본관으로 쓰는 성씨도 여럿이다. 흔히 ‘들성김씨’로 불리는 선산김씨가 선산을 대표하는 집안이다. 그 밖에도 곽(郭), 류(柳), 문(文), 박(朴), 배(裵), 여(呂), 이(李), 임(林), 전(全), 최(崔) 씨 등이 선산을 관향(貫鄕)으로 쓰고 있다.

 

▲선산읍지인 <일선지>(1618)

그러나 세월이 하 수상하여 박정희가 ‘선산군 구미면’에 공업단지를 유치한 이래 ‘선산읍’은 인구 40만이 넘는 ‘구미시’의 하부 단위가 되었다. 이제 선산이란 지명은 선산읍 외엔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는 특산 민속주 ‘선산 약주(藥酒)’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구미시와 선산읍 사이의 고아읍(高牙邑) 원호리와 문성리 일대가 선산김씨의 터전인 ‘들성’이다. 들성은 개미산이 들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성을 이룬 것과 같다거나 들에 성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들성은 한자로는 ‘평성(坪城)’으로 쓴다.

 

들성지(池)는 구미 시내에서 원호리를 거쳐 고아읍으로 가는 길목인 문성리에 있다. ‘여우못’으로 전해 오는 이 저수지는 <일선지(一善誌)>에 “둘레가 3천6백70척이고 못 안의 민가가 크게 부유하니 관개(灌漑)의 이로움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초기의 어느 날, 초저녁부터 마을 앞 당산에서 여우가 몹시 울고 있었다. 그날 밤, 어떤 마을 사람에게 여우가 꿈에 나타나 “여기다 둑을 쌓으라.”고 했다. 다음날 마을 앞에 나가보니 개울가에서 지금의 못 둑 자리까지 짚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의논 끝에 여러 달 걸려 둑을 쌓아 연못을 만드니 이 못이 ‘여우못’이다. 뒤에 폭우로 둑이 무너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런 해는 봄부터 여우가 봄부터 몹시 울던 해여서 사람들은 미리 둑을 보수하여 사전에 재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여우를 기린 정자, 몽호정

 

이에 해마다 한식을 전후하여 여우에게 제사를 지내고 굿을 벌여 여우를 기렸다. 여우가 현몽하여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준 것을 기리기 위해 여우못 섬에 정자를 세우고 ‘여우의 꿈이 서린 정자’라는 뜻으로 ‘몽호정(夢狐亭)’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여우못은 한때 주변 농경지에 물을 대는 용수원이었지만 지금은 주변 아파트촌 주민들의 휴식과 운동 공간이 되었다. 못 안에는 언제부턴가 연꽃을 심어 여름내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못 둘레로 낸 산책길에는 늘 사람들이 걷고 있고 못 가운데 있는 새로 세운 몽호정까지 나무 데크(deck) 길에는 사진기를 둘러멘 나들이객이 끊이지 않는다.

 

들성지에는 백련과 홍련이 절반쯤 심겨 있고 노랑어리연꽃은 어쩌다 눈에 띈다. 연꽃을 구경하기엔 샛강생태공원보다 들성지가 낫다. 못을 가로지르는 데크길로 비교적 연꽃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커다란 연이 빽빽하게 들어차 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샛강과 달리 여기선 물과 어우러진 연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는 데크길 따위의 인공의 흔적을 마뜩잖아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나마 사람들에게 휴식과 운동의 공간을 돌려주는 행정을 고까워할 까닭은 없다. 처음엔 인근 들성들에 물을 대던 여우못은 지금은 주변 아파트촌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연꽃을 즐기면서 휴식할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이 유서 깊은 연못의 베풂은 누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꿈에 마을 사람에게 나타나 여기에 못을 조성하라고 한 여우를 기리는 정자. 몽호정(夢狐亭).
▲ 못 옆의 여우광장. 이 여우가 그 여우겠다.
▲ 어쩌다 피어 있는 노랑어리연꽃. 들성지 연꽃의 주종은 백련과 홍련이다.
▲ 들성지에는 드물게 수련(睡蓮)도 눈에 띄지만, 개체 수가 매우 적다.
▲ 들성지 아래 꽤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들성지는 이 들판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였다.

 

2017. 7.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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