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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린 노래, ‘군가’ 이야기

by 낮달2018 202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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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전선 180리’와 ‘진군가’를 다시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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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후 전선 180리'는 남궁원 태현실이 주연한 1966년에 개봉된 영화고, 그 주제가다.

‘군가’는 “군대의 사기를 높이고, 투철한 군인정신과 군사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군대에서 부르는 노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니 민간인에게 익숙한 노래는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교련’을 배우며 군사교육을 받았던 우리 세대는 음악 시간에도 더러 군가를 배웠었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뒤”로 시작하는 ‘행군의 아침’이 그때 배운 군가다. 아내에게 물으니, 여고 시절 교련 시간에 행진하면서 부른 노래였다면서 따라 흥얼거린다.
 

군가는 병사들의 노래지만 일반에서 불리기도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복무 중에 지겹도록 불러 댄 노래이니만큼, 군가가 남자들에겐 낯설다고 하긴 어렵다. 병사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널리 불리에 ‘국민 군가’에 오른 노래도 있다. 대표적인 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으로 시작하는 ‘진짜 사나이’다. 아마 이 노래는 전 연령층에서 모두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이제 새로 만드는 군가에선 여군이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여 ‘남성만을 가리키는 단어 쓰지 않는다고 한다. ) [관련 글 : 이제 군가에선 사나이, 아들을 들을 수 없다]
 
‘진짜 사나이’는 유호 작사, 이흥렬 작곡의 대표적 육군 군가로 1962년에 발표된, 꽤 오래된 노래다. 유호는 대중음악 작사가로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 정거장’, ‘떠날 때는 말없이’, ‘님은 먼 곳에’ 등의 대중가요뿐 아니라, 진중가요로 유명한 ‘전우야 잘 자라’도 썼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즐겨 부른 노래가 ‘빨간 마후라(머플러)’다. 우리는 드문 ‘공군 군가’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그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아마 당시 같은 이름의 영화가 만들어져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군가 ‘빨간 마후라’는 극작가 한운사가 가사와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대중음악가 황문평이 곡을 썼다. 한운사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때 널리 불리었던 대중가요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의 가사도 썼다.
 
잊고 있었던 옛 군가를 떠올리게 해준 건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다. 영화의 마무리 장면에서 장중하게 울려 퍼진 노래가 1981년에 만들어졌다는 군가 ‘전선을 간다’다. 유튜브에서 여러 차례 그 노래를 들었는데, 가사 일부가 현역 시절에 즐겨 부른 군가 ‘진군가’(노래 듣기)와 닮아서 나는 기억을 되살려 옛 군가를 흥얼거려 보았었다. [관련 글 : 스포일러와 결말 알면서도 관객들의 분노’가 추동하는 영화]

▲ '진군가'는 군대에서 내가 가장 즐겨 부른 노래고, '전선을 간다'는 영화 서울의 봄에 쓰인 1980년대 군가다.

1977~1980년까지 33개월 동안 부른 군가들

▲ 공수교육을 마친 뒤 이 윙을 달아줄 때 연주된 노래가 '최후전선 180리'였다.


장두진 작사, 강만식 작곡의 ‘진군가’는 선명한 노랫말과 단순하고 힘찬 멜로디로 행군할 때, 적잖은 마음의 울림이 받은 노래였다. 구보를 밥 먹듯이 했던 우리는 달리면서 군가와 함께 이른바 ‘사가(私歌)’로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 등을 신나게 불러댔다. 그때 부른 노래 가운데에는 유명한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도 있었다. (나는 인천 부평 소재 특전사 산하 공수여단에서 근무했다.)

 
군대 생활이란 건 고생스럽든, 편하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기억이다. 20대 초반의 피 끓는 젊음이 상명하복의 수직적 계급사회에서 닳고 닳아야 하는 시기가 군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편해도 힘들기는 매일반’인 군 생활에 위안이 된 게 그런 노래를 부르며 지내는 느슨한 시간이었던 듯하다. [관련 글 : 군대란 무엇인가, 전역병의 통과의례’- ‘재소집의 악몽]
 
특전사 예하 여단이니 관련 군가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특전사 부대가로 불리는 박정웅 작사, 황문평 작곡의 ‘검은 베레모’(1960)을 비롯하여 ‘하늘의 백장미’, 동료의 낙하산을 펴주고 나서 추락해 숨진 고 이원등(1935~1966) 상사의 희생을 노래한 ‘하늘에 핀 꽃’ 따위를 즐겨 불렀었다. [관련 글 : 38……, 그래도 우린 열심히 살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유튜브에서 노래를 찾아 들어보는데, 간신히 그 가락 몇 소절이 떠오르는 게 고작이다. 전역한 지 44년이 흘쩍 흘렀으니 나무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런데 ‘최후 전선 180리’는 가사도 곡조도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 '최후 전선 180리'는 영화의 주제가로 공수특전부대의 병사가 주인공이다.

그 노래는 1977년 특전사 공수 교육대에서의 수료식 때 교육대의 기간 장교와 하사관들이 전투복 왼쪽 호주머니 뚜껑에 철제 윙(wing)을 달아줄 때 특전사 군악대가 연주해 주었던 노래다. 고통의 극한을 오간 4주간의 교육 훈련이 힘들었던  만큼, 가슴에 달아주는 날개가 자랑스러웠던 시간이었는데, 이제 즐겨 불렀던 그 노래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최후 전선 180리’ , 가사도 가락도 잊어버린 노래

 
당시 노래를 부르면서도 왜 제목이 ‘최후 전선 180리’였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이 노래는 1966년에 개봉된 같은 이름의 영화의 주제가였다고 한다. 아, 그랬었구나……. 인터넷에서 찾은 영화 포스터에는 남궁원, 김석훈, 이대엽, 태현실, 독고성 등 출연 배우들의 모습이 젊었다.
 

▲ 영화주제가 '최후 전선 180리'가 들어 있는 백영호 작곡집

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영화 데이터베이스(KMDb)’의 해당 항목에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국전쟁 동란 중 적진 깊숙이 침투한 장 소령 등 아군 공수단 특전대 대원 9명은 화약고를 폭파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작전 임무를 완수하지만, 적군과의 치열한 교전 끝에 전 대원이 장렬하게 전사한다.”라고 소개한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의 이 곡은 노래한 이는 남성 4중창단 쟈니 브라더스다. 이름만 알았었는데, 쟈니브라더스는 ‘남성 4중창단’ 전성시대를 연 1960년대의 슈퍼스타였단다.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김준은 귀와 눈에 익은데, 이들은 ‘빨간 마후라’까지 불렀다고 한다.
 
최후 전선 180리는 영화와는 달리 그리 비장한 가락은 아니다. 4중창단의 맑고 낮은 목소리로 듣는 노래는 이내 사십몇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후렴구의 ‘나가자 최후 전선 검은 베레모’를 거듭 들으면서 나는 1977년 한여름 특전사령부 연병장에서 베풀어진 수료식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노래 유튜브로 듣기]

▲ 요즘은 부대 마크나 휘장도 예전에 비기면 훨씬 진보했다. 맨 오른쪽이 내가 근무한 9공수여단의 마크다.

내친김에 ‘육군 10대 군가’를 찾아보았더니 ‘진짜 사나이, 행군의 아침, 전우, 진군가, 최후의 5분, 전선을 간다, 용사의 다짐, 아리랑 겨레, 멋진 사나이, 팔도 사나이’ 등이다. 그중 아는 노래는 ‘진짜 사나이, 행군의 아침, 진군가’ 등이 고작이다. <서울의 봄>의 피날레를 장식해 준 군가  ‘전선을 간다’는 비장한 가락의 울림이 좋다.
 
1970년대의 끝자락에 ‘10·26’이 있었고, 18년간 절대권력을 누린 독재자의 죽음은 그 당시 7대 군가 중 ‘유신의 국군’을 빼면서 유신 독재는 종료되었다. 이듬해 2월 33개월 만기로 제대하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내 성년의 시간을 향해 나는 천천히 걸어나갔다. [관련 글 : 12·12 쿠데타, 그리고 30]
 
 

2024. 9.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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