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이 증가한 현실 반영, ‘남성’만을 가리키는 단어 쓰지 않는다
올해부터 새로 만들어지는 육·해·공군, 해병대 군가에서는 ‘사나이’나 ‘남아’ ‘아들’과 같은 남성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쓰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물론 여군이 증가한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군가에 쓰인 ‘어휘’로 더는 군대가 남성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관련 기사]
보도에 따르면 현재 여군의 숫자는 9,253명(2014.8.3. 기준)인데 이는 전체 장교의 6.7%, 부사관의 4.5%에 이르는 숫자다. 국방부는 2015년까지 장교의 7%, 2017년까지 부사관의 5%를 여군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혀 조만간 ‘여군 1만 명 시대’가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군가 등에서 ‘성 차별적’ 언어를 쓰지 않기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 얘기가 있긴 하지만 유사 이래 군대나 전쟁이 남성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들이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게 기본인 이유다.
당연히 군가에는 이들의 특성인 강인함, 용감성, 희생성 따위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국가가 요구하는 세계관이 포함된다. 70년대의 막바지, 내 군대 생활 말년에 10·26으로 박정희가 죽자, 이튿날인가 이른바 ‘7대 군가’ 가운데 ‘유신의 국군’을 제외한다는 <육군회보>가 내려왔다.
찬란히 밝아오는 하늘 끝까지
천지를 진동하는 우렁찬 함성
필승의 신념과 강철 같은 투지로
젊음을 불태우는 호국의 방패
영광된 통일 조국 눈앞에 그리며
우리는 전진하는 유신의 국군
- ‘유신의 국군’ 1절
그때, <육군회보>를 읽으면서 나는 흔히 말하는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실감했다. 그리고 독재정권 시기의 ‘국가’란 흔히들 ‘권력’으로 분칠된다는 사실도 모호하게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박정희의 유신 정권 시절에 말하자면 우리는 ‘유신의 국군’, 곧 독재자의 군대였던 것이다.
적지 않은 군가를 배워 불렀지만 지금 기억나는 군가는 거의 없다. 그 시절에 군가로 유일하게 기억나는 게 ‘진군가’다. 무엇보다도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으로 시작하는 가사와 그 선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 노래에도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고 하여 어김없이 ‘사나이’가 등장하고 그걸 부르면서 우리는 다소는 ‘남성 우월’의 기분 따위에 젖었을 것이다.
높은 산 깊은 물을 박차고 나가는
사나이 진군에는 밤낮이 없다.
눌러쓴 철모 밑에 충성이 불타고
백두산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한 자루 총을 메고 굳세게 전진하는
우리의 등 뒤엔 조국이 있다.
폭풍우 몰아치고 어둠이 와도
거친들 험한 숲을 헤쳐나간다.
눌러쓴 철모 밑에 젊음이 불타고
압록강까지라도 밀고 나가자
한 자루 총을 메고 굳세게 전진하는
우리의 등 뒤엔 조국이 있다.
- ‘진군가’
그야말로 ‘국민 군가’의 자리에 오른 ‘진짜 사나이’도 마찬가지다. 거기선 노골적으로 ‘할 일도 많다만’ 오직 ‘나라 지키는 영광’으로 사는 ‘너와 나’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노래는 월드컵 때도 응원가 형식으로 널리 불리었고, 요즘은 인기 있는 공중파 방송 예능 프로그램 이름으로까지 쓰이고 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 ‘진짜 사나이’ 1절
국방부에 따르면 각 군의 군가나 각 군 사관학교의 교가 등에 ‘아들’, ‘사나이’와 같은 남성 지칭의 어휘들이 꽤 많다고 한다. 군 당국에선 애당초 기존 전통 군가는 물론 육·해·공군 사관학교 교가에 나오는 남성 위주 표현을 모두 남녀를 함께 상징할 수 있는 단어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어 새로 만드는 군가에만 성 차별적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각 군 의견을 수렴해 보니 뜻밖에 여군들이 전통 군가 노랫말 변경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단다. 특히 상당수 여군은 노래 가사보다 군내 여성 인력들에 대한 ‘성적 비하 근절책’ 등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전달했다고 한다. 연일 여군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소식이 지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그게 더 중요한 건 분명하다.
‘청춘의 피가 끓는 대한의 아들, 사나이 굳은 뜻을 가슴에 안고’
- 해군사관학교가
‘우리는 피 끓는 배달의 아들’
- 공군사관학교가
다문화사회 고려, ‘민족, 겨레’ 대신 ‘국가, 국민’
한편, 각종 서류와 장병 교육용 교재에 나오는 ‘민족’이나 ‘겨레’ 등과 같은 표현은 모두 ‘국가’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 접어들면서 군도 그 추세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군 당국은 ‘민족’이나 ‘겨레’라는 협소한 개념의 단어 대신 ‘국가’라는 공통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단어로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다문화 시대를 맞아 충성 대상을 ‘민족’에서 ‘국가’ 또는 ‘국민’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단일민족’ 신화의 해체도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민족’과 ‘겨레’에 기대어 온 우리의 오랜 관습 탓일 것이다.
충성의 대상을 ‘국가’로 바꾸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권력’과 동의어로 이해되던 지난 독재정권 시기의 현실 상황과 겹치면서 그게 썩 흔쾌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늘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그걸 과거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인터넷에서 받은 ‘진군가’를 들으면서 내 20대의 한 시기를 보낸 병영과 거기서 배우고 익힌 삶과 태도, 가슴에 패인 상처와 아픔을 곰곰이 떠올려 본다.
2015. 1.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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