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연작 소설 ‘총독의 소리’ 오마주(3) 국가 학술·보훈기관장에 뉴라이트 임명
<총독의 소리>는 작가 최인훈의 연작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가상한 신식민지 현실을 배경으로 패전 후 지하로 들어간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유령 방송을 통해 반도의 재점령을 노리고 있는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가상의 인물인 총독의 모습은 일련의 연설 속에 감춰져 있을 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의 행위가 없는 담화 상황만으로 짜인, 서사적 규범을 뛰어넘는 형태적 파격을 통해 새로운 문학적 인식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은 작가의 작품 형식과 그 일부 내용을 빌려 2024년의 한국, 그리고 한일 관계 등을 다룬 올해 두 번째의 글이다. 글 가운데 원작을 인용한 부분의 글자는 붉은 색깔로 표시하였다.
노변담화, 2024년 두 번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조선총독부 지하부가 보내드리는 유령 해적방송인 총독의 소리입니다. 총독 각하의 노변담화(爐邊談話) 시간입니다.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浪人) 여러분. 레이와(令和) 6년(2024)에는 올 3월에 이어 두 번째 안부를 전합니다. [관련 글 : 2024, 총독의 소리 - ‘패전으로 형성된 질서 부인’의 한길로]
충용한 제국 신민 여러분, 79년 전, 제국이 피눈물을 삼키고, 개화 이래 겨레의 슬기와 힘을 모아 가꾸어 오던 대제국 건설의 빛나는 걸음을 멈추고, 영용한 신민 장병의 거룩한 피와 꿈도 땅 밑에서 흐느끼는 모든 구령(舊領)과 싸움터에서 성전의 칼을 놓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이 노병의 가슴은 폐하에 대한 죄스러움이 어제같이 되살아납니다.
흘러간 영화의 터에서 다시 밝아올 그 언젠가 기쁨의 날을 위해 청사(靑史)만이 알아줄 싸움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총독부 예하의 모든 군관민 여러분. 오늘 본인은 제국의 번영과 나라의 체통에 크게 유익한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하게 되었음을 참말 기뻐하는 바입니다.
레이와 6년 8월, 79년 전의 패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패전일(8.15.)을 앞두고 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관련한 몇 가지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지난 담화에서 밝힌 대로 새 대통령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 때 악화한 ‘일한 관계’를 담대하게 ‘복원’해 주었습니다. 쇼와 40년(1965) 일한 수교 직후에 우리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되어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유학하여 박사 과정을 수료한 대학교수를 부친으로 둔 그는 정녕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은 반도 대법원의 ‘징용공 문제’(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피고인 일본 기업이 아닌 한국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금을 내는 일방적 양보안(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강행’하면서 극한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를 그야말로 담대하게 복원했습니다.
피해자들과 야권의 반발 등 ‘일방적 양보’에 대한 비판이 거셌지만, 그는 오불관언 ‘새로운 일한 관계’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관계 복원에 대한 그의 배짱과 맷집은 믿고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일본에 충성하냐”라는 야당의 비아냥을 감내하면서 대담하고 일관되게 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니 우리의 대응은 가벼워져도 좋았습니다. 굳이 제국이 징용공 피해자들이 원했던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기업이 사과나 배상을 위한 기금 참여를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하는 근거입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동의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비난 불사한 담대한 결단
하여, 내지(內地: 일본을 가리킴)에서 일본이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사죄할 숙명’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일한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반도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부르대는 ‘국익’이 아니라, 제국에 대한 배려인 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입니다.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일본 대통령’이라는 극언을 들으면서도 ‘가치 외교’를 수호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본인은 안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대신 한국 정부는 대통령의 의중을 좇아 “오염수 방류에 계획상의 과학적·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라는 원칙론만 되뇌면서 방류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대견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최근 반도는 올해 제국에서 유네스코에 거듭 신청한 사도 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관해 찬성함으로써 제국은 사도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했습니다. 반도에서는 사도 광산의 ‘강제동원’ 관련 전시물에 ‘강제’라는 표현을 명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반도에서 이에 동의해 준 것에 대해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의 비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반도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도 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일본 대표가 언급한 “모든 노동자”란 표현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전달한 것이 확인된 겁니다. 이는 반도의 이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제국의 이해를 고려한 조치로 이해할 만합니다. [관련 글 : 위치도, 내용도, 제목도 흉내만 낸 사도광산 ‘강제동원’ 전시관]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浪人) 여러분. 제국의 유덕(遺德)과 치적은 맥맥히 이 산하와 인심 속에 살아 있어서 이 노병(老兵)의 지난한 임무를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광산을 운영하면서 반도 노동자 1천5백여 명을 동원하여 이들을 노역에 투입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패전으로 형성된 질서 부인’이라는 우리 제국의 방침은 일관되고 명확합니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일한 국교 정상화 당시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글 : 한일기본조약 조인, 국교 재개되었으나 ‘문제’는 남았다]
‘위안부’는 일본 정부나 군의 강압 없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뛰어든 여성들이었다는 것이 제국의 공식 입장이고, 강제동원 문제도 “일한(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난 일”이라는 것이 제국 외무성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 논리적 근거는 제국이 반도를 지배할 당시엔 “조선인도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징용엔 문제가 없”으며, 해당 조선인들은 ‘자유의지로 일본에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인사는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 여러분에게 참으로 의미 있는 낭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초는 지난해 5월, 경상북도에서 세운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의 새 관장으로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가 임명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실용적 국가안보법 학자’라고 소개한 한희원은 검사 출신으로 조선의 이른바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삶과 인식으로 살아온 인물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대구·경북 28개 시민사회·노동·정치단체에서는 그를 이른바 ‘식민사관’에 깊숙이 물든 자로 폄훼하면서 독립운동기념관장 임명에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반도에서 말하는 ‘식민사관(植民史觀)’이란 “한반도의 식민지 통치를 위한 학문적 기반 확립이라는 목적 아래 일본의 관학자(官學者)들이 중심이 되어 구축한 한국사관”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기실 그 본뜻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륙과 조선으로 침략을 단행하고 이 지역을 식민지·반식민지로 통치 및 간섭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침략지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상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면 한희원이 식민사관을 가진 부적격자라고 규정하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일본이 세계 강국이 된 원인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인재를 길러낸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설립”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인재 양성”에서 찾고 우리도 그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전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는 또 요시다 쇼인이 “인재 100명을 길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며, “그 인재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초석을 다졌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요시다 쇼인 공과 이토 히로부미 공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당하며 공정한 평가입니다. 두 분의 헌신이 우리 일본을 위대한 제국을 우뚝 세워 놓은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련 글 : 독립운동기념관장 내정자,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를 찬양했다]
요시다 쇼인 공은 일본 우익 사상의 창시자로, 공이 연 쇼카손주쿠는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사설 학당입니다. 그런데 반도에서는 쇼인 공을 “일본의 침략 구호를 발명한 자”, 이토 공은 그 구호에 따라 “이 땅을 짓밟은 자”라면서 ‘조선 침략의 원흉’으로 규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한희원은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시민사회 따위에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이 인사는 올해 윤석열 대통령이 시행한 주요 인사로 확대 발전했습니다. 지방의 독립운동기념관 정도의 얘기가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근년의 인사에서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 계열의 인물들을 주요 보직에 임명하는 추세입니다. 한국의 뉴라이트, 즉 신우익(新右翼)은 1990년대 이후 주체사상파나 학생운동권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대한민국의 정치 분파로, 신자유주의, 식민지근대화론, 사회진화론 등의 이념을 표방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일본·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며 산업화 근대화를 옹호하는 보수 우익의 한 갈래지만, 아직은 주류 정파로 인식되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이배용,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김광동 등 뉴라이트 인사가 각각 임명되었습니다. 이배용은 박근혜 정부의 2015년 개정 교육과정 ‘역사과 교과용 도서 국정화’를 주도한 인물이며, 김광동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 보상은 심각한 부정의”이며 “전쟁 중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고 발언한 인물입니다.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학술·보훈기관 수장을 뉴라이트로 임명한 반도 대통령의 용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임명된 김낙년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문제 저서로 꼽히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입니다. 또,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으로는 뉴라이트 역사단체 ‘교과서 포럼’ 운영위원을 지낸 전 교원대 교수 이주성이 임명되었습니다. 한국 문화의 심층 연구와 교육 등으로 한국학을 진흥하고자 설립한 정부 기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두 수장을 뉴라이트로 배치한 것입니다.
이번 인사의 백미는 식민지근대화론자로 낙성대경제연구소장을 지낸 박이택을 이사로 보낸 독립기념관의 관장으로 제국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뉴라이트 성향의 김형석 전 재단법인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임명한 것입니다. 1982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고자 국민 모금으로 1987년 8월 15일 개관한 독립기념관을 뉴라이트 인사들이 ‘접수’한 셈이지요.
한국학중앙연구원과 독립기념관은 주권 국가 한국의 가장 중요한 학술·보훈기관입니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친일적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으나, 이는 우리에게는 호재일 뿐입니다. 마침내 패전 79년 만에 반도에 명실상부한 우호적 정부가 자리를 잡았으니, 이 또한 제국의 유덕(遺德)과 치적은 맥맥히 이 산하와 인심 속에 살아 있어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반도에 그날이 오기까지 충용한 나의 장병과 유지 여러분과 낭인 여러분, 자중자애하고 권토중래를 신념하십시오. 반도는 갈 데 없는 제국의 꿈, 제국의 비밀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반도의 전운(戰雲)이여. 때맞춰 일어나고, 때맞춰 스러지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산하 생령(生靈)을 맡고 있는 본인의 뜻을 어기지 말라. 나의 휘하 장병이여. 관민 여러분. 식민지의 모든 밀정, 낭인 여러분. 불발(不拔)의 믿음으로 매진하라. 제국(帝國)의 반도(半島) 만세.
이상으로 총독 각하의 노변담화를 마치겠습니다. 제국의 반도 만세. 여기는 조선총독부 지하부가 보내드리는 총독의 소리입니다.
2024. 8.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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