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 사도( 佐渡 ) 광산, ‘정부 동의’로 세계유산 등재 결정
결국,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에서 두 차례에 걸쳐 신청한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유산은 관례상 한·일 등 세계유산위원회 21개 위원국의 전원 동의 방식으로 결정되는데 그간 등재에 반대해 온 한국 정부에서는 일본과 합의로 등재에 동의했다. [관련 글 :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한국 정부의 동의는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선제적 조치’란 사도광산 조선인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전체 역사’를 보여줄 전시 시설과 내용 등에 합의한 것을 이른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입구에 만든 최신 전시 시설인 ‘키라리움 사도’가 아니라 현장에서 2km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안에 별도 장소를 마련했고, 여기서 오는 28일부터 전시가 공개된다. 전시는 향토박물관 한구석 여섯 평, 방 한 칸 규모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내용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전시장의 위치도, 내용도, 전시 제목도 흉내만 냈다
전시의 제목은 ‘강제동원’이 아니라,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의 생활’이다. 안내판에는 가혹한 노동조건과 한국인에 대한 차별, 그리고 ‘1944년부터 조선반도에 <징용>이 도입’됐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일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거기엔 단서가 달렸다.
“징용은 ‘법령’에 근거, 노동자에 업무를 ‘의무’로 하도록 만드는 것.”
이는 당시 징용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선인에게 요구한 ‘강제 노동’을 ‘의무’라는 표현으로 왜곡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5년,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조선인에 대한 ‘강제 노동’을 인정한 것에서 명백히 후퇴한 것이다. [관련 글 : 다시 불려 나온 군함도, 강제동원 역사 왜곡하는 일본]
일본은 이미 ‘역사 교과서 논란(2016)’ 때도 위안부를 ‘식민지에서 모집된 여성’으로, 끌려갔다는 표현 대신 ‘보내졌다’라고 기술하는 등 표현을 교묘하게 함으로써 역사를 축소 왜곡한 바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일본에 ‘강제 동원’을 명시하라는 요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강제 노동’이란 구체적 표현이 없어도 “전시 내용이 전체적인 역사를 알 수 있는 정도”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당정은 ‘진전된 한일 관계를 바탕으로 일본의 선제적 행동을 이끈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했다. 정작 상대인 일본 정부는 자국 언론을 통해 ‘강제 노동이 아니라는 입장’을 흘리고 있는데 말이다.
‘외교적 성과’와 ‘일본에 역사적 진실 양보한 외교 실패’ 사이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인정하고 있다니 국민을 기망하는 기괴한 외교 문법”(더불어민주당 논평)이라는 야당의 성토가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 문제는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놓쳤다기보다는 알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 문제와 관련해 여권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 힘 유승민 전 의원은 SNS에 쓴 글에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라는 일본의 숙원사업에 윤 정부가 찬성했는데, 문제는 조선인의 강제동원과 강제 노역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와 영토 주권이 걸린 문제라면 단호하고 분명하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사도광산 강제노역의 역사를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일본에 요구하거나 정부에서 반대 입장을 유지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윤 정권 들어 한일 관계는 최소한의 상호주의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강제징용 제3자 배상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사도광산 등에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얻은 것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 대표도 윤석열 정부가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강제노동 관련 전시물을 설치하겠다는 일본의 공수표만 믿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대통령이 일본에 충성하고 있는 거냐”고 되묻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낸 성명에서 ‘사도광산’ 관련 대일 협상의 결과는 “‘강제동원’이 아니라 일본이 ‘합법적’으로 동원한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고생했다는 것”이라 규정했다. 이를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대일 외교가 이른바 ‘한국만 채운 물 반 컵’에 그치며 ‘일본은 뭐하냐’는 여당의 한숨과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 성과’라고 자찬하는 정부의 평가와 무관하게 이번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과정의 외교협상은 실패라는 게 명백해 보인다. 굴종적이라고까지 표현되는 ‘대일 외교’에서의 자충수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절망도 임계점을 넘고 있는지 모른다. 아래 붙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성명은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2024. 8. 6. 낮달
참고
· 사도광산 ‘강제 동원’ 감춘 일본‥정부는 알고도 당했나? (2024.07.30./MBC 뉴스데스크)
· ‘강제동원’ 삭제하고 왜곡까지…日 언론도 비판, 우리 정부는 묵인?(2024.08.04./MBC뉴스 핫이슈PLAY)
·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노동(민족문제연구소, 한일시민공동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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