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 ④ ‘맨발 걷기’ 1년에 부쳐
지난 7월 29일로 맨발 걷기를 시작한 지 1년을 맞았다. 한겨울에도 바닥에 구멍을 낸 양말을 신고 걷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지난 1년은 가장 걷기에 심취해 보낸 시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득이한 볼일이 있거나 비가 오거나, 기온이 영하의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매일 한 차례 1시간씩 꾸준히 걸었다. [관련 글 : ‘맨발 걷기’, 혹은 ‘접지(earthing)’를 시작하다]
‘맨발 걷기’에 심취해 보낸 1년의 감회
맨발 걷기를 시작하고 일어난 변화는 초기에 말한 대로, 팔이 저린 증상이 없어지고, 연골이 닳아 시시때때로 아팠던 손가락 관절의 통증이 사라진 것 등이다. 먼저 손가락이 부은 듯 뻣뻣해지는, 이른바 ‘명현(瞑眩) 현상’이 나타났고 며칠쯤 지나자, 서서히 경직된 듯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관절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손가락 관절의 통증은 사라졌는데, 두어 달쯤 지나니 손목 관절과 엄지 쪽의 관절이 조금씩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말단에서 없어지면서 이렇게 옮겨 다니는 건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손가락 쪽 통증보다는 덜하지만, 잠깐씩 찾아오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통증이 사라졌다가 다시 이동해 돌아오는 상황을 확인하면서도 나는 맨발 걷기가 내게 준 이점만을 생각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과장되어 회자하는 ‘걷기의 효능’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실망하거나 회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앞서 첫 번째 글에서 썼듯, 맨발 걷기에 대해서 나는 얼마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는 이른바 맨발 걷기로 ‘만병’을 치유한 이들의 ‘간증’이 넘치는데, 나는 그게 다소의 과장이 있을지언정 사실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겪은 치유가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게 같은 병을 앓는 이들에게 똑같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지는 않는다. 즉 맨발 걷기의 효과는 개인차가 크고 그 효과도 천차만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걷기의 효능’에 일희일비하지 않은 이유
나는 기본적으로 지압 효과가 혈류의 개선을 가져온다는 건 확실하다고 여기지만, 접지, 이른바 ‘항산화 효과’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하는 편이다. 이론 자체는 이해하는 편이지만, 그게 치유에 이를 만한 정도의 현실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맨발 걷기의 효능으로 지적되는 숙면의 효과와는 인연이 없었다. 가끔 소화 기능을 돕고 있어서 배변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듯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 역시 모든 사람에게 두루 미치는 효능은 아닌 것 같다. 걷기를 함께 하는 이웃 가운데서 내가 느낀 효능을 경험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냥 몸에 좋다니까 열심히 매일 나와서 운동을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걷기를 시작한 지 서너 달이 지나면서 분기별로 해 보는 혈액검사로 전립선 특이항원(PSA)의 수치가 감소(허용 범위 0~4ng/ml, 4~10ng/ml이면 전립선암)하는 걸 확인했다. 나는 맨발 걷기가 전립선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유튜브에서 전립선암 환자의 위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게 과장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었다.
걷기 시작 직전이었던 23년 7월의 내 PSA 수치는 3.08, 석 달 후인 10월에 이 수치는 2.70으로 줄었다. 올 5월의 건강검진에서 그 수치는 3.08로 되돌아왔다. 겨울을 지내면서 영하의 날씨로 걷기를 빼먹는 날도 늘어났고, 언 땅을 걷느라 바닥을 구멍 낸 신발이나 양말을 신고 꾸준히 운동했지만, 대체로 운동의 질이 고르지 못해서였던 것 같았다.
그 기간에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전립선 쪽의 컨디션이 들쭉날쭉했었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급박뇨’라고 할 만한 증상이 꽤 오래 이어져서, 미리 용변을 보고 운동을 시작해도 중간에 갑작스러운 요의에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점이 PSA 수치의 증가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이다.
지난 설날 연휴에 아이들과 함께 덕유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왼쪽 다리 쪽에 좀 무리가 있었다. 그냥 버티다가 4월에 정형외과에 가니 무릎 연골 주변이 연화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일주일 약 먹고 일상에서 조심해서 다리를 구부리지 말고 펴서 지내는 게 좋다고 했다.
아프다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무언가 불편해서 힘들었다. 다리를 쉬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걷기를 계속했는데, 오히려 운동을 이어갈수록 다리 상태가 좋아졌다. 무작정 쉬기보다는 꾸준히 무리하지 않은 걷기를 이어가는 게 다리에 좋았던 듯하다.
일과 중에는 초등학교를 이용할 수 없다는 학교 측 요청에 따라 지난 몇 달 동안 시에서 샛강생태공원에 마련한 황톳길을 걸었다. 길에 상주하는 공원녹지과 직원들이 하루에 몇 번씩 물을 뿌려놓은 게 도움이 되기보다 미끄러워 걷기에 방해가 되었다. 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편하게 걷기가 쉽지 않았다. 갈 때마다 일정 거리를 자동차로 가야 하는 점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나는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의 맨발 길로 돌아왔다. 단지 일과 중에만 피해달라는 것으로, 새벽이나 일과 후에는 얼마든지 운동장을 돌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굳이 가장 온도가 높은 오후 2~3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나는 샛강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새벽에 초등학교를 다니곤 했었다.
돌아온 초등학교, 하루 20바퀴 1시간 걷기
6월부터 시작된 초등학교 걷기는 순조롭다. 워낙 오래 다닌 곳이라, 편하기도 하고, 한 바퀴 도는 데 3분, 20바퀴 1시간 동안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은 지난해에는 가끔 황톳길을 관리해 주곤 해서 괜찮았는데, 올핸 교장이 바뀌면서 관리가 없어진 듯하다. 게다가 장마 때 외는 비도 거의 오지 않아서 길바닥이 너무 딱딱했다. 한 번씩 수도를 틀어 길을 조금 적시기도 하는 것만으로도 길에 적응하려 하고 있다.
최근 며칠 간은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처럼 오른손 뻣뻣해지는 경험을 새로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손목 쪽에 이동했던 통증이 완화된 걸 확실하게 느낀다. 걸으면서 손가락을 활짝 편 채로 걸은 게 좋았던 것일까. 나는 어차피 통증이 완화되는 메커니즘은 잘 모른다. 그게 걷기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주어진 일상대로 한 시간을 걸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지난해 처음 시작할 때 만난 이들은 요즘은 다른 시간에 걷는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같은 세대로 보이는 60대 말 70대 초의 남자 둘과 거의 매일 같이 운동장을 돌고 있다. 보면 인사를 나누는 게 고작이고 통성명조차 한 적이 없어도 우리는 어떤 동료의식 같은 걸로 맺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를 지나니 밤이 시나브로 길어지고 있다. 요즘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면 아직 여명이다. 해가 뜨려면 4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15분쯤 걸어서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 미명 속에서 부지런히 황톳길을 돌고 있는 이들과 아침을 함께하는 시간에 나는 만족한다.
치유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나는 걸을 것이다
비록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하지만, 맨발 걷기를 멈출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루 1시간의 새벽 시간에 트랙을 돌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완벽하게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 오가는 시간을 포함하여 걸음 수는 9천 보 내외로 그동안 내 다리는 매우 튼튼해졌다.
나는 내 맨발 걷기를 어떤 상황이라도 굳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굳이 운동이라고 이름하지 않아도 규칙적 일상으로, 서서 걷는 가볍고 편안한 명상의 시간으로 꾸려갈 것이니까. 단지 궁금한 것은 오는 9월쯤 검사로 PSA 수치가 어떻게 되는지다. 편안하게 그리고 꾸준히 열심히 걷는 만큼 긍정적인 결과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그게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는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
2024. 8.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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