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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기념관장 내정자,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를 찬양했다

by 낮달2018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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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내정 한희원 내정 철회 요구하는 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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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문을 연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2017년 경북독립운동기념관으로 확대 개관했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신임 관장 내정자의 이력을 두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대구·경북 28개 시민사회·노동·정치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내정자는 일본이 세계 강국이 된 원인을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인재를 길러낸 쇼카손주쿠 설립”과 “요시다 쇼인의 인재 양성”에서 찾고 우리도 그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전 검사 한희원이다.

 

독립운동기념관장에 요시다 쇼인을 기린 인물을?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은 일본 우익 사상의 창시자로 그가 연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사설 학당이다. 이들은 이런 기막힌 친일사관을 가진 내정자와 그를 내정한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측에 대해 “친일 부역한 그들보다 지금 행위는 더 나쁜 짓”이라며 내정 철회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친일사관 인사가 독립운동기념관장? 부역보다 더 나빠”

 

경북 안동시에는 지방자치단체로는 아주 드물게 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안동은 자신을 ‘독립운동의 성지’, ‘독립운동의 본향(本鄕)’이라고 매기는데, ‘성지’나 ‘본향’이란 표현은 그것을 떠받치는 만만찮은 역사와 인물을 갖지 않고는 쉽사리 하기 어려운 자부고 긍지다.

 

안동은 항일 의병의 효시랄 수 있는 갑오의병(1894)의 발상지요, 1905년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나라 전체에서 66분인데, 그중 10분이 안동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안동은 갑오년 이후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 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51년 동안 이어진 독립투쟁으로 단일 시군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 유공 포상자(310여 명, 포상받지 못한 이를 포함하면 1천여 명)를 배출했다.

▲ 안동은 걸출한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했다. 왼쪽부터 이상룡, 김동삼, 이육사, 권오설, 김재봉 선생

안동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일송 김동삼(1878~1937). 민족시인 이육사(1904~1944)의 고장이고, 6·10 만세 운동을 주도한 권오설(1899~1930)을 비롯하여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1890~1944) 등 일제하 사회주의 투쟁의 주요 인물들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 “공맹은 나라 되찾은 뒤 읽어도 늦지 않다”(이상룡)

· “나라 없는 몸… 무덤은 남겨 무엇하겠느냐” (김동삼)

· ‘광야’, 목 놓아 부를 수 없는 노래(이육사) 

· 권오설, 살인적 고문 견디고 ‘6·10만세’를 지켜냈다(권오설) 

· 조선공산당도 ‘일제 통치 타도·조선 독립’이 목표였다 (김재봉)

 

한희원 내정자가 찬양한 조선 침략의 원흉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

 

2007년에 국비와 시비를 받아 개관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2017년에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확대 개관했다. 그런데 이 기념관의 관장으로 독립운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검사 출신이며, 명백히 ‘친일사관’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인식을 공공연히 드러낸 한희원이 내정된 것이다. [관련 글 :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둘러보기]

 

“오늘의 일본이 세계 강국이 된 원인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인재를 길러낸 쇼카손주쿠 설립에서 찾을 수 있다”

“(요시다 쇼인)은 인재 100명을 길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그 인재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초석을 다졌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 2022년 3월 23일 ‘2022 통일지도자 특별 세미나’(주최 한반도통일지도자연합)에서

 

단 한 차례 강연에서 한 발언 때문에 ‘친일사관’이라는 오명을 쓰는 게 가혹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주워섬긴 쇼인은 “일본의 침략 구호를 발명한 자”이고, 이토 히로부미는 그 구호에 따라 “이 땅을 짓밟은 자”(이상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다. 더하거나 덜 게 따로 없는 조선 침략의 원흉이다.

▲ 일본 우익의 창시자 요시다 쇼인의 동상. 쇼카손주쿠 안 요시다 쇼인 신사에 있다.
▲요시다 쇼인이 연 사설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일본은 2015년 세계유산 안에 이를 슬그머니 끼워넣었다.

우파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정신적 지주로 섬긴 요시다 쇼인은 근·현대적 의미의 일본 우익 사상의 창시자이면서 현대 일본의 정·재계를 장악하고 있는 조슈벌(長州閥:야마구치현 일대 지역 출신 정치인, 군벌들을 의미하는 말)의 아버지다. 요시다 쇼인은 ‘천하는 천황이 지배하고, 그 아래 만민은 평등하다’라는, 천황 아래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일군만민론(一君萬民論)’을 주창한 존왕양이(尊王攘夷:왕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한다)론자였다.

 

쇼인이 운영한 사설학당 쇼카손주쿠는 ‘정한론(征韓論)’의 산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이면서 정한론(征韓論: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해 일본 제국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사설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배운 쇼인의 제자들은 메이지 유신에 이어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을 주도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일본 제국 육군 원수이자 내각총리대신을 두 번 지낸 인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그의 제자였다. [관련 글 : 아베 신조의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 그리고 요시다 쇼인

▲ 조슈의 인맥들. 왼쪽부터 3인은 조선 통감과 총독을 지냈고, 가쓰라 다로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이었다.

‘정한론(征韓論)’의 산실 노릇을 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2015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루어질 때, 뜬금없이 이 쇼카손주쿠를 세계유산으로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이다.[관련 글 :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과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한희원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로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 출신의 이토 히로부미를 든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망언이다. 이는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지지하는 망언”이라며 “약소국 침략을 미화하는 전형적 논리, 정한론자로 볼 수밖에 없”(위 기자회견)기 때문이다.

 

단순히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라며 둘러댄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일본 ‘근대 우익의 비조’인 요시다 쇼인이나 그의 제자들이 참여한 메이지유신으로 천황제 국가 이데올로기를 완성하고 마침내 일본 제국주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국민 눈높이와 상식을 거스르고 ‘검사 출신’이 임용되는 인사

▲ 박순찬 화백 만화 '잊지 말자 선택적으로'

그런 요시다 쇼인과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고, 그들처럼 해야 한다고 외친 인물을 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내정한 것은 이른바 ‘검찰공화국’의 일부일지는 몰라도, 이 나라를 피로 일구어낸 선열들에게 고개를 들지 못할 일이다. 그동안 독립운동기념관의 관장은 독립운동사 연구자 김희곤 안동대 교수가 두 차례, 같은 대학 사학과 교수 정진영 교수가 한 차례씩 맡았었다.

 

그런데 한희원 내정자는 독립운동은 물론, 독립운동 연구와도 무관한 검사 출신의 법학 교수로 살아온 이다. 그와 경쟁했던 안동 출신 의성김씨 독립운동가 집안 후손인 대학교수가 배제되고 한희원이 내정된 배경에 대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는 지방의 기관장 내정을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은 현 정부 들면서 시행되는 인사들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는 무관하게 ‘검사’ 출신의 진출이 두드러지는 현상과 궤를 같이한다. 정부가 일본과의 굴욕 외교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문제도 자국민의 보호보다 일본의 처지를 두둔하는 데 급급한데 지자체의 인사 문제마저 제국주의 식민사관으로 얼룩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3. 6.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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