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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6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돋아난 열매가 조금씩 형상을 갖추어가더니 어느새 몰라보게 튼실해졌다. 앵두와 호두, 사과와 석류, 모과, 살구 등이 그렇고, 오디와 포도도 몸을 추슬러 그 물결을 뒤따랐다. 감은 이제 겨우 꽃이 피었다가 지고 있다.
2023년 여름, 익어가는 것들
해마다 무심히 지나쳤던 앵두 열매를 바라보며, 그걸 ‘단순호치(丹脣皓齒:붉은 입술과 하얀 이)’라고 비유한 선인들의 안목을 환기하게 된다. 간밤에 내린 빗물에 씻긴 앵두의 윤이 나는 붉은빛은 매우 고혹적이다. ‘앵두 같은 입술’이니, 그 나무가 선 우물가에 ‘동네 처녀’가 바람나서 ‘단봇짐’을 쌌다는 대중가요가 전하는 1950년대에 머리를 주억거리게 한다.
2018년 6월에 나는 ‘익어 가는 것들’에 관한 글을 썼다. ‘총알구멍의 침묵-평화도 익어간다’라고 하면서. 그해 4월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선언’을 했고, 6월에는 북미가 정상회담에서 ‘완전 비핵화·안보 보장’ 4개 항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관련 글 : 6월에 익어 가는 것들, 혹은 ‘화해’와 ‘평화’]
함께 익어가야 할 ‘평화’는 어디에
판문점선언 당시 논의된 ‘정전 선언’ 문제는 사실상 정치적 선언에 불과했지만, “일종의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정철 서울대 교수)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북한은 미국과의 싱가포르 회담(2018년 6월)을 전후한 때까지는 진정성을 갖고 임했던 것은 분명했”으나, 미국 측이 비핵화에 대한 검증을 종전 선언과 연계하며 교착 상태에 빠졌었다. [관련 기사 : 판문점선언 5주년…“남북미, 대화 복원 노력해야”, 이하 같음]
판문점선언은 남한과 북한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종전 선언을 포함하는 의의가 있었지만, 이후 국제 정세 변화로 말미암아 결국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에 남북 관계의 교착 상태는 이어졌고, 20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이 승리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2022년 6월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나 4년, 상황은 엄청나게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했고, 보수 정권 시대가 열렸다. 남북 간 교류는 얼어붙었고 대화에 대한 기대도 멀다. 정말 무슨 남북 관계에 대한 철학과 복안을 가진 건지 아니면, 전 정권의 정책과 상반되는 정책으로 일관해서 그런지 알쏭달쏭한 새 정권의 속내도 궁금하다. [관련 글 : 다시 6월, 지금 익어가는 것들]
과거로 회귀하는 ‘대북정책’, 한반도에 드리운 불안
올해 들어 북한의 핵 위협과 무인기 도발 등이 이어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은 급격히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 ‘강 대 강’ 기조는 급속도로 강화되면서 전 정부에서는 삼갔던 강경 발언도 이어졌다. 무인기 도발과 이후 윤 대통령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 발언, 김 위원장의 전술핵 위협, 윤 대통령의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시사 등이 맞물리며 남북 대결과 이에 따른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관련 기사 : ‘대결’ 작심한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 ‘과거 회귀’ 가속]
판문점선언과 9·19 군사합의 체결 뒤 4년여간 남북 간 접경 지역 일대에서는 군사적 긴장 상황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도균 전 남북군사회담 수석대표는 “지난해 후반기 이후부터는 9.19 군사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 접경 지역 일대 전선에서 군사적 대치 상황이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공동경비구역(JSA)이나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대북 심리전 재개나 대북 전단 살포 등 민감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군사적 충돌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라고 분석했다.(위 <KBS> 기사 참조)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이 국익보다 이념을 따지게 되면서 리스크도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며 한·미·일 공조에만 매달리고 있다. 외신이 ‘윤석열 정부 1년’을 “전략적 모호성 벗어나 가치 외교로 선회했다”로 분석하는 이유다. [관련 기사 : 이상우-김태효-윤석열, 국익보다 이념 따지는 위험한 외교]
‘평화’도 함께 익어가길
국민에게 선택된 정부가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수립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대전제는 그것이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과 집권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철학을 추구하되 그것이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에 위협이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이 헌법으로 위임받은 권한 밖의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오롯이 정부와 집권당의 몫이다. 대중은 정부의 위험한 외교가 ‘나의 안전’과 ‘우리의 평화’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대통령 지지도에서 긍정과 부정 모두 ‘외교’를 꼽는 이유가 거기 있다.
최근 북의 위협도 도를 넘고 있는데, 그 위협이 위협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대중들은 두려워한다. 그런 국민의 우려를 잊지 않고 그것을 믿음으로 바꾸어가야 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다. 얼어붙은 남북 관계와 무관하게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난 열매는 시방 넉넉하게 익어가고 있다. 정치가 ‘얼어붙고 있는 평화’를 못미더워하고 있는 국민의 염려와 불안을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2023. 5. 3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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